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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여행을 한다는 것, 바티칸을 간다는 뜻과 같다

by 셩혜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 바티칸은 결코 작은 곳이 아니다. 타이틀이 무색하게 넓었다. 비교 대상이 어떤 나라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성당, 광장, 미술관, 정원, 쿠폴라(돔) 등 이 나라를 이루고 있는 요소는 무척이나 다양하고, 다양성만큼 놓치지 말아야 할 감상 포인트도 천지다. 목이 빠져라 <천장화>도 봐야 하고, 성 베드로 성당 끝까지 올라 쿠폴라(돔)에서 열쇠 모양의 광장을 내려 보며 성경도 되새겨야 하고 미켈란젤로가 유일하게 서명을 남긴, 세계 3대 조각으로 손꼽히는 피에타도 감상해야 하고 이 곳의 수장인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도 만나야 한다. 뿐만 아니라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예술가들의 남긴 작품 앞에서 감탄하는 일도 빼놓아서는 안 된다. 누군가 ‘이렇게 해야 해’라고 알려준 건 아니지만, ‘이런 것을 놓치면 안 될 것 같다.’라는 강박관념이 들었던 건 사실이다. 바티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할까.

성 베드로 대성당 쿠폴라에서 바라본 바티칸 광장

여행 전 로마와 바티칸에 대해 살펴보다 혼자서는 도저히 답이 나올 것 같지 않아 투어를 신청했다. 로마와 바티칸의 오랜 역사를 이해해서 남편에게 설명하기엔 역부족인 듯하고, 효율적인 동선으로 계획을 세우기도 나보다 전문가의 힘을 빌리는 것이 훨씬 효과적 이리라.

정원을 상징하는 솔방울

바티칸 투어를 위해 오전 7시 20분쯤 숙소에서 나섰다. 산책 삼아 걸어서 미팅 장소인 치프로(cipro) 역에 도착하니 이미 투어를 신청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였다. 투어를 신청하면 업체에서 입장권을 미리 예약하는 데 이 덕분에 긴 줄을 서지 않고 빠르게 입장했다(예약을 하지 않으면 아침부터 줄을 서더라도 오후 2-3시가 넘어야 입장할 수 있다고 한다). 8시 30-40분쯤 바티칸 미술관 내부로 입장해 바닥에 철퍼덕하고 앉아 미켈란젤로의 <천장화> 설명만 두 시간가량 듣고, 점심 먹고, 화장실 가는 등 약간의 자유 시간을 갖고 나니 시계는 어느새 오후 한 시. 아직 무엇 하나 제대로 보지 않았는데 한 시라니! 미술관에서 주요 작품 설명을 들으며 이동하고, 바티칸 박물관에 들러 솔방울 정원, 라파엘로 방 등을 보고, 시스티나 소성당에 입장해 침묵으로 <천장화>를 감상하고,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소매치기 위험 따위는 하느님이 지켜줄 것이라 믿으며(‘이 성전 안에서 소매치기하는 사람도 대단한 양심이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함) 그 장엄하고도 드넓은, ‘대성당’의 ‘대’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이 곳을 ‘십자가의 길(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며 묵상하는 것)’을 하는 심정으로 거닌다.

성 베드로 대성당 쿠폴라에서 일몰을 바라보던 연인

쿠폴라에 오르니 어느새 일몰이 펼쳐진다. 붉은 일몰 아래로 펼쳐진 로마와 바티칸 전경을 보니 하느님이 제자들과 나눴던 최후의 만찬에서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계약의 피다”(마르 14,22-26)이라 하며 빵과 포도주를 나눠주는 장면이 뇌리를 스친다. 아마도 하늘을 차츰 물들이는 붉은 물결이 마치 포도주가 숙성되며 보이는 색과 비슷해서 그랬던 게 아닐까 싶다. 쿠폴라에서 내려오니 바티칸에는 이미 땅거미가 내려앉았다. 투어를 마칠 때쯤 미술관 작품을 절반 채 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남았지만, ‘이렇게라도 봐서 다행이다’라며 남편과 투어에 대한 만족감을 나타냈다.

로마 도착한 날은 비를 핑계로 숙소에서 나보나 광장에 취했고, 이튿날은 바티칸에 쏟고, 3일째 되는 날은 일요일이라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를 알현하기 위해 시간 맞춰 다시 바티칸을 방문했다. 이후 콜로세움, 대전차 경기장, 포로 로마나, 베네치아 광장, 카피돌리오 광장, 트레비 분수, 스페인 광장 같은 주요 관광지를 걸으며, 오래전 이곳을 거닐던 로마인들을 떠올렸다. 로마를 떠나던 날은 숙소 인근에 위치한 판테온에 심취해 있다 점심 즈음 예약해둔 렌터카를 찾았다.


결국 로마에 머무는 사흘, 그 절반을 바티칸에서 보낸 셈이다. 로마에서 보낸 4일은 바티칸에서 시작해서 바티칸에서 끝난 느낌이다. 로마를 속 시원하게 돌아보지 못했지만, 파파를 만난 것이 어디냐며 자기 위안을 한다. 평소에 오 분 가량 강론을 한다는데, 이날은 크리스마스 구유 축복을 이유로 십오 분이나 강론했다. 오랜 시간 파파를 볼 수 있는 건 좋았지만,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한 점은 함정이다.

일요일 정오, 바티칸 광장에서 이렇게 파파를 만날 수 있다

이탈리아 수도인 로마가 바티칸에 밀린 듯한 일정이었지만, 다음번 다시 만날 기회가 온다면 그땐 바티칸이 아닌 로마에 관심을 좀 가져봐야겠다. 로마는 그 자체로도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가졌으니 그저 쉽게 넘길 곳은 아닌 듯하다. 어쨌든 로마에 와서 기운도 차리고 기분도 회복되었으니 내게 로마는 조금 특별하게 다가오는 건 사실이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라는 말처럼 어쩌면 나의 이탈리아 여행은 이제 시작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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