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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공간이 가지는 힘

아시시의 고백

by 셩혜

판테온 근처에 로마를 대표하는 카페 두 곳이 있다고 해 조식 신청 시 커피 대신 오렌지 주스를 주문했다. 잘 차려진 조식, 아니 남의 차려준 조식은 참 맛있다. 체크아웃 후 수하물은 잠시 숙소에 맡겨두고 판테온으로 향한다. 듣던 대로 판테온이 가진 힘은 굉장했다. 천장에 빛이 들어오도록 뚫린 원형 창도 창이지만 도대체 어찌 이런 건축물을 생각할 수 있었을까! 서양미술사 책에서만 보던 라파엘로의 무덤 앞에 앉아 있는 나 자신이 신기할 따름이다. 경탄하며 카페로 발걸음을 옮긴다.

산 에우스타키오 일 카페(Sant' Eustachio Il Caffè)

판테온 근처에는 로마 3대 커피로 불리는 타짜 도로(Tazza d'Oro Cafe)와 산 에우스타키오 일 카페(Sant' Eustachio Il Caffè)가 있다. 먼저 타짜 도로를 방문했는데 널찍한 분위기가 딱히 편해 보이지 않는다. 커피가 제아무리 맛있다 한들 공간이 가진 이끌림도 중요한 법이니! “커피는 산 에우스타키오에 가서 마시자.”며 나왔다. 산 에우스타키오는 달랐다. ‘아니 로마 3대 커피라고 하지 않았어!’ 소박해도 너무 소박한 것 아닌가. 골목길에 몇몇 테라스 자리도 있지만 많지 않다. 스탠딩 해서 마실 수 있는 매장 실내도 그리 넓지 않다. 그 아담한 공간 속에 담긴 분위기는 남달랐다. 온통 노란 노랑 한 패키지에 담긴 로마 기념품은 누군가의 주머니 속으로 계속해서 들어갔고, 각기 다른 이들이 주문한 커피 향은 우리의 코를 즐겁게 했다. 달콤 쌉싸름한 커피의 기운을 몸 안에 가득 채우고 경쾌한 발걸음으로 로마를 떠난다.

이탈리아 지도에서 가장 중심에 있는 곳, 중부에는 유독 소도시가 많다. 순례자의 도시인 아시시를 지나 피엔차 그리고 시에나까지. 중부를 지나 피렌체로 들어가기로 했다. 번거롭지만 하루씩 숙소를 옮겨가며 소도시를 즐겨보기로 했다. 로마에서 렌터카를 빌려 자동차 여행에 나섰다. 이탈리아 움브리아 지방의 작은 도시 ‘아시시(Assisi)’는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이탈리아 여행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스치게 되는 곳이다. 비수기인 12월, 문 연 곳보다 문 닫는 곳이 더 많았지만, 마을의 대부분은 성물 가게다. 성인 프란체스코가 나고 자라 다시 묻힌 아시시. 아시시가 그에게, 혹은 그가 아시시에게 어떤 존재인지 마을에 걸음을 내디디면 디딜수록 더 깊게 느껴진다.

일몰이 마을을 뒤덮자 은은하게 밝히는 수도회 불빛이 큰 울림처럼 다가온다. 성 프란체스코 수도회와 마을을 바라볼 수 있는 어귀에 숙소를 얻었다. 숙소에 앉아 창 너머 어둠 속을 고요하게 밝히는 수도회를 바라본다. 빛과 침묵이 빚어낸 공간은 한없이 평화롭다. 작은 방에 감도는 적막 또한 싫지 않다. 침묵이 주는 충만함이 오히려 더 좋다. 얼마나 지났을까, 속삭이는 듯한 남편의 음성이 이 공간에 나 혼자가 아니라는 걸 다시 깨닫게 한다.

밤이 되자 성 프란체스코 수도회가 더 빛난다

“나는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것 같아.”라며 “이번 여행을 통해 깨닫게 되었어. 그래서 스스로 반성 중이야.”라고 덧붙이며 나지막하게 말문을 열었다. 자신이 정말 좋아하고 그토록 원하던 장소(팔라쪼 아드리아노)에 왔지만, 그 좋은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 싫었단다. 평소 남편의 행동 패턴을 알고 있는 내 입장에선 작은 행동 하나도 달라 보였지만, 정작 자신은 “감정을 내색하지 못하는 병을 가진 것 같아.”라며 고해성사하듯 말했다.


생각해보면 맞다. 힘들면 힘들다고 한 번쯤 표현할 만한데 남편의 내색은 좀처럼 드물다. 좋은 것도 마찬가지다. ‘남자’가 미주알고주알 이것저것 다 말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가장’은 힘들어도, 아파서도 안된다고 생각하는 관념이 감정의 발목을 붙잡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 앞에서 표현을 못 하는 스스로가 불쌍한 것 같다고 여긴 남편은 조용히 그리고 진지하게 고백을 이어갔다.

나는 화가 나면 화가 나는 대로 ‘욱’하고 좋으면 좋은 대로 ‘흥’을 낸다. 때론 감정에 너무 솔직한 게 탈이 될 수 있지만, 최소한 남편 앞에서는 가장 솔직한 편이다. 남편도 내게 그럴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화가 나면 ‘욱’하고, 좋으면 좋은 대로 표현할 수 있는. 아시시에서 남편은 감정 표현에 솔직한 사람이 되어 보겠다고 성 프란체스코 수도회를 보며 약속했다. 나는 그런 남편을 위해 매일 감정에 대해 질문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다 보면 점점 가장의 무게를 내려놓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할 수 있는 인간이 될 수 있겠지?’하고 기대도 해본다.

공간이 가진 힘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상당하다. 여행에서 마주하는 공간도 예외는 아니다. 아시시는 다른 어떤 곳보다 따스하고 자상한 품으로 오롯이 자신을 마주할 수 있게 해 줬고, 또 그런 자신을 품을 수 있게 해주는 곳이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남편은 자신만의 치유 공간을 만났다.


성 프란체스코가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라고 말한 것처럼 그를 담은 아시시는 남편에게 마음의 평화를 주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평화가 깃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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