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과 다른 리알토의 아침

20190918

by 셩혜

베네치아가 아직 어둡다.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일어난 탓도 있지만 비 예보가 있어 그런지 암-울하다. 남편도 뒤척이는 듯 해 깨웠다. 새벽녘에 리알토 다리를 가보지 않겠냐고 꼬신다. “리알토 마켓이 열리는 데 준비하는 것도 보고 싶고 낮엔 늘 사람이 많으니깐~”라고 말해보지만, 그냥 나가고 싶다. 산책을 고민한다는 건 사치니깐!

마지못해 따라나선 남편과 바포레토를 탔다. 새벽녘이라 여행자보다 출근길에 나선 현지인이 더 많다. 비 예보도 있고 바람도 불어서 그런지 바포레토 직원들도 긴 셔츠를 입었다(낮 시간엔 항상 폴로 스타일의 반팔 셔츠차림이다)

예정대로 리알토 다리에 내렸다. 한산하다. 이제 막 볕이 떠오를 시간이지만 구름에 가렸다. 출장 전부터 텅 빈 리알토 다리를 사진에 담고 싶었지만 막상 보고 나니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 나이가 들었는지 사진 속에 사람이 있는 풍경과 그렇지 않은 풍경이 마음에 다르게 들어온다.

베네치아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성당 광장도 휑하고 리알토 마켓도 분주함보다는 심심함에 가깝다(너무 일찍 왔나 보다). 몇몇 상인만 생선 손질을 하며 영업할 준비에 나설 뿐, 비어 있는 매대가 너무 많다. 내가 그린 그림은 이게 아닌데!

바람이 쌀쌀하니 커피 한 잔이 절로 생각난다. 새벽부터 날 따라나선 남편을 위해 커피 타임을 가진다. 마켓에서 고작 몇 걸음 옮겼을 뿐인 데 빵 굽는 냄새가 리알토 마켓의 생선 냄새를 이긴다. 크로와상과 퍼프 크림이 들어간 도넛 그리고 에스프레소와 카푸치노 한 잔. 5.5 유로의 조식이 입 안을 풍부하게,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산 마르코 광장을 거쳐 숙소가 있는 아르세날레까지 걸어서 돌아가자는 마음이 일치했다. 남편 손잡고 하는 산책이 싫지 않다. 산 마르코 광장엔 어김없이 스냅 촬영에 나선 커플이 두 팀 정도있다. 산 마르코 성당을 배경으로 웨딩 촬영에 나선 커플 키스신이 하나도 부럽지 않다. 우리도 저럴 때가 있었지. 되뇌어본다.

시간이 두 시간이나 흘렀다. 유달리 긴-산책이었지만, 숙제 하나를 마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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