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의 종착지, 빨래방

20190920

by 셩혜

빨래방에 갔다. 투숙 중인 에어비앤비에는 세탁기가 없다. 원하면 호스트에게 별도로 요청해야 한다길래 이래나 저래나 유료라 아침 산책길 쌓여 있는 빨랫감과 책 한 권을 챙겨 움직였다.

일어나 세수도 하지 않고 집히는 대로 툭 챙겨 입고 가볍게 나가다가 손에 가방을 하나 들려니 얼마나 무겁다고 그것도 짐짝처럼 느껴진다.

셀프 빨래방에서 세탁은 한 번에 6유로, 30분가량 돌아간다. 세탁기를 돌리고 주변을 걸을까 하다 어제 16km라는 강행군을 한 탓에 옆 가게에 있는 카페로 갔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키고 야외 테이블에 앉아 남의 아침 풍경을 구경한다. 장사를 준비하는 과일 가게 사장님은 새 떼가 아침부터 귀찮게 하는 바람에 성가신 눈치다. 러닝에 나선 운동파는 달리기 좋은 이 길이 편하고 철야 후 귀가하는 노동자의 길은 아침이지만 무겁하다. 가리발디 거리의 아침은 참 다양한 걸음으로 채워진다.

숙소부터 들고 온 책을 펴내지 않아도 시간은 흐른다. 에스프레소를 주문했으면 잠이라도 깼을까? 아메리카노는 무척 연하다. 몸이 피곤해서 그런가, 손이 자꾸 설탕을 찾는다. 얼마나 넣었는지 반은 설탕물 같다. 스톡홀름에서 돌쟁이를 데리고 여행 온 가족이 옆 테이블에 앉았다. 오트밀을 먹던 파란 눈의 돌쟁이 아이는 동양에서 온 검정 눈의 내가 신기한 모양이다. 자꾸만 관심을 보인다.

오전 8:00 아침 산책 대신 선택한 커피 한 잔에 시간이 흐른다. 다시 짐짝 같은 빨래 가방을 들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밀린 빨래를 해치운 개운함때문인지 산책을 하지 않았는데 마치 한 것처럼 뿌듯하다. 아르세날레 바포레토 정류장 앞에 둥지를 튼 몇몇 앤틱 노상이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


숙소 창문 너머로 어서 오라며 손 흔들어대는 남편을 보니 오늘 산책도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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