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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의 첫인상은 듣던 것과 달랐다

사랑과 낭만의 도시라고? 그것만 있는 건 아니잖아!

by 셩혜
L2540702.JPG 시에나 캄포 광장과 만자의 탑

시에나는 중세 시대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토스카나 소도시 중 꽤 큰 편에 속하는 도시라지만 고요하고도 좁은 골목은 힐링과 여유 그 자체였다. 시에나를 거쳐 피렌체 도착했다. 고작 고속도로 몇 시간 달렸을 뿐인데 분위기가 심상찮다. 렌터카를 이끌고 도시로 진입했다. 그 진입로가 외곽 어디쯤인 줄 알았는데 그게 피렌체 도심의 시작이었다. 지금까지 거쳐 온 도시와는 사뭇 다르다. 공장처럼 보이는 삭막한 건물, 주유소, 폐차장 등등 마치 도시 외곽에 있을법한 것들이 반듯하게 우릴 반겼다. 그러다 회전교차로에 당도했는데 차량이 엄청나다. 이탈리아 여행의 첫 도시였던 시칠리아부터 회전교차로를 수도 없이 만났는데 꼬리에 꼬리를 문 차량 행렬에 진입하는 게 쉽지 않은 건 또 처음이다. 우리뿐만 아니라 여러 자동차가 꼼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앞에 신호등이 있는 건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위대한 역사와 경이로운 예술이 꽃피었다는 피렌체의 사랑과 낭만은 잘 모르겠고, 자동차 소음과 교통 체증만이 피렌체를 대신하고 있다.


구글맵은 걱정했던 교통제한구역(zona traffico limitato, ZTL)을 요리조리 잘 피해 렌터카 영업소까지 우릴 안내했다. 차량을 반납하고 꾸역꾸역 캐리어를 밀고 두오모 근처 숙소로 오는 길 인도는 두 사람이 한 번에 지나기 좁고, 곳곳에서는 공사 중이다. 그래도 로마처럼 돌바닥만 있는 것이 아니니 캐리어를 밀며 이동하는 것이 수월했다. 한국은 물론 중국, 일본, 유럽 각지에서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기 위해 온 이들이 많다. 거기 현지인도 거든다. ‘이 도시 참 사람도 많고 번잡하구나!’ 하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는다.

DSC02227.JPG 숙소에서 바라본 두오모

에어비앤비로 찾은 피렌체의 숙소는 5층 건물 중 4층에 자리했다. 숙소를 선택할 때 뷰를 중요하게 여기는 남편은 예약하기 전부터 뷰만 좋으면 엘리베이터 따위 없어도 괜찮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래서 주저 않고 이곳을 선택했다. 추운 12월이라 베란다에 고상하게 앉아 브런치나 와인을 먹을 일이 없지만, 침실 창문에서 보이는 두오모가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하지만 캐리어 세 개를 계단으로 낑낑 올리느라 힘을 뺀 남편은 그대로 소파에 쓰러졌다. “괜찮아? 저기 멋진 두오모가 기다리고 있는데 한번 볼래?”라고 위로했지만, 몇 걸음조차 걸을 힘이 없다며 두오모 같은 얼굴색을 하며 소파와 한 몸처럼 붙어있다. 그대로 두는 게 나을 것 같아 혼자 숙소 감상에 빠졌다. 방, 거실, 부엌, 화장실 공간이 모두 분리되어 있고 크기도 두 명이 쓰기에 적지 않다. 방에서는 두오모가 보이고 거실에서 골목길을 내려다볼 수 있으니 답답함도 덜하다. 4층만 아니라면 더 좋았을 테지만, 4층이라 가능한 풍경이기도 하다.

DSC02234.JPG 숙소 거실에서 내려다본 al del corso 골목

숙소가 있는 ‘al del corso’ 골목 사이로 지나는 인파들의 소리가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를 이기며 ‘이 공간이 피렌체야’라고 말하는 것 같다. 좁기 때문에 도보로도 모든 것이 가능한 피렌체이지만, 관광객 밀집도만 본다면, 음, 단연코 서울과 같다. 피렌체에는 한식당도 많았다. 저녁은 한식으로 먹자며 힘들어하는 남편을 달랬다. 이탈리아 음식도 꽤 잘 맞았지만, 여행을 떠나온 지 20일쯤 지나니 한식이 그리울 만도 할 시점이다. 짬뽕을 한국보다 잘한다는 분식점에 가 뜨끈한 국물로 몸을 충전했다. 날이 저물어 특별히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비까지 내렸지만, 숙소로 돌아오는 길 그 자체만으로도 좋았다. 몇몇 사람들이 비를 피해 노상 중고서점에서 책을 보고 있다. 누군가 추억이 젖은 책은 다시 누군가의 마음을 적혔다. 중고 책의 진한 향기가 비와 함께 골목길에 퍼졌고, 우산 하나로 비를 피하느라 남편과 밀착한 몸 사이에선 온기가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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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마음으로 돌아온 숙소는 기다렸다는 듯 냉랭했고 차디찬 공기는 마음의 기운마저 빼앗아 갔다. 마치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 속 준세를 대하는 아오이의 마음 같다. 가져온 옷을 주섬주섬 꺼내 입고 이불속에 들어가는 것이 따뜻함을 유지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었다. 너무 추워서 잘 수 있을까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 아침 온몸이 뻐-근했다. 따뜻한 차 한 잔으로 이겨내고 싶지만, 그것도 역부족이다. 근데 앞으로 이곳에서 나흘이나 더 머물러야 한다. 날씨 때문에 이 도시가 차갑게 다가오고 밤이 무서워진다. 피렌체 여행이 끝날 때쯤이면 다른 감정을 담아갈 수 있을까. 피렌체야 잘 부탁해! 그나저나. 남편을 깨워서 얼른 준비하고 나가야겠다. 집보다 밖이 더 따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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