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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퀘테레에는 닮은 듯 다르고, 다른 듯 닮은 것이 있다

by 셩혜

애초 계획은 피렌체 6박 후 친퀘테레를 가는 것이다. 하지만 12월 친퀘테레를 추천하는 이는 드물었다. 게다가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그 다섯 마을의 계단과 오르막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결국 피렌체에서 2박을 더하고 친퀘테레는 당일로 다녀오기로 했다. 숙소 예약을 해놓지 않아 다행이었고 또 한편으로는 일정을 변경하는 바람에 눈여겨본 에어비앤비에서 숙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피렌체 첫 숙소의 ‘추위’라는 악몽을 잊을 만큼 호텔은 따뜻했고, 마지막 에어비앤비는 포근하게 우릴 감싸 안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피렌체는 어디에 숙소를 정하건 두오모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숙소 침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볕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찬다. 마당으로 나오면 두오모가 보이는데, 마치 거기 태양열 집열판이라도 달린 듯 주변을 환하게 충전시키는 기분이다. 숙소가 마음에 드니 기분도 덩달아 싱글벙글한다.

친퀘테레는 피렌체 산타마리아 노벨라 역에서 기차로 두 시간 소요된다. 이어폰을 통해 에피톤 프로젝트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우리 부부는 두 명의 수녀와 마주 앉았다. 한 수녀는 우리가 탑승하기 전 이미 어딘가에서부터 탑승해 온 상태였고, 또 한 명의 수녀는 마지막으로 탑승해 자리를 채웠다. 가톨릭의 나라답게 어렵지 않게 성직자를 만날 수 있다. 시칠리아에서부터 시작된 여행부터 줄곧 그랬다. 신부, 수녀, 수사 등등.

두 수녀는 똑같은 수녀복을 입었고 똑같이 안경을 썼다. 두 수녀는 통성명만 한 채 침묵을 지켰다. 나는 보지 않는 척을 하며 두 수녀를 관찰했다. 수녀가 관찰의 대상은 아니지만 두 수녀는 눈길을 끌었다. 메사 역을 지나자 거대한 돌산이 나타났는데 처음 보는 그 생김새가 신기해 호들갑을 떨었더니 뭐라며 설명을 해줬지만, 이탈리아어를 이해하긴 내 실력은 형편없다. 라틴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등 몇 개 국어쯤 기본으로 구사하는 그들이지만 영어는 사용하지 않았다. 그들의 종착지는 제네바였다. 언어가 통하진 않았지만, 그건 알아들을 수 있었다. 피부색만 달랐던 두 수녀의 연령대는 비슷해 보였다. 생김새뿐만 아니라 행동 패턴도 닮아있다. 창문 밖을 바라보는 타이밍, 안경을 코 위로 찡긋하고 올리는 타이밍, 성호를 긋는 타이밍, 우리를 바라보는 타이밍, 눈을 감는 타이밍 등 기가 막혔다. 참 신기하다. 하느님을 따르는 수도자라 그런가! 하여튼 그들의 행동 패턴은 내게 돌산보다 더 놀라움이었다. 라 스페치아 역(La Spezia)에 내리기 전 가방에 있던 초콜릿 두 개를 건넸다. 그들 종착지인 제네바까지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입이 심심할 때 간식으로 먹으면 좋을 것 같았고 사실 나의 이모도 수녀인지라 남 같지 않은 마음이 들었다.

이제 진짜 친퀘테레 마을 여행을 시작한다. 5개의 마을이라는 뜻의 친퀘테레(Cinque Terre). 리오마조레, 마나롤라, 크르닐니아, 베르나차, 몬테로쏘 비슷비슷한 이 작은 어촌마을에 어떤 보석이 숨겨져 있을 진 알 수 없다. 마을이 뽐내는 해안 절경을 만끽하기 위해 트레일을 해야 하는 데 겨울이라 제한된 곳이 많고, 바다를 누릴 수 있는 액티비티 역시 겨울이라 영업하는 곳이 없다. 바다 절벽 위 터전을 형성한 이들의 집을 따라 마을을 걷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비탈길을 따라 포도나무 올리브나무가 자라고 있지만, 이미 이번 여행 중 너무 많이 봐버렸다. 마을을 걸으며 험준한 이 절벽 위에서 어찌 이리 삶을 꾸려나가는가 싶기도 했지만, 벼랑 끝 아슬하게 포개져 있는 파스텔톤의 집이 결국 이곳을 더 반짝이게 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이라는 명예보다 이렇게 이뤄온 이들의 삶이 더 빛나 보인다. 마을 사람들은 땅거미가 내려앉자 자신의 존재를 증명이라도 하는 듯 집에 불을 밝혔다. 하나둘, 집마다 불이 켜지니 마을은 알록달록한 색의 옷을 걸쳐 입었다. 사람에게 ‘옷태’가 있는 것처럼 닮은 듯 다른 집들도 조명이라는 옷을 입으니 그 태가 더 선명해졌다.

지중해의 햇살은 언제나 눈부시다. 하지만 지중해 위치한 친퀘테레에는 햇살보다 더 눈부신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자연 속에서 순응하는 닮은 듯 다르고, 다른 듯 닮은 그들 삶이 만들어 낸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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