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발로 잇는 생명선
달리기를 좋아한다.
왜 좋아했을까. 아마도 달리는 그 순간이 좋았던 것 같다.
내게 달리기는 세상을 가장 잘 느끼는 방법이었다.
풍경의 장면과 순간을 하나하나,
오롯이 몸으로 맞부딪히며 지나치는 일.
같은 길을 매일 뛰어도
하늘의 색과 구름의 모양은 하루도 같지 않았다.
지루할 틈이 없었다.
코로나로 해외여행이 막히고
국내 곳곳을 여행하던 시절,
운동화 한 켤레만 있으면 어디서든 달릴 수 있었다.
그래서 여행을 하며 달리고 또 달렸다.
어느 도시로 떠나더라도
동네를 구석구석 걷고 달리는 일만큼
그곳과 빠르게 친해지는 방법도 없었다.
동생이 멀리 떠난 뒤엔 몸에 동생을 새기고 뛰었다.
곁에서 함께 달리는 것 같아 마음이 덜 아팠다.
오로지 내 두 발로, 내 힘으로
지탱해야 할 무게를
세상의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선으로 이어가는 일,
그 단순한 행위가
묘하게 뿌듯하고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몇 해를 달렸고,
여러 대회에 나가
나처럼 뛰는 사람들 틈에서
넘치는 에너지를 나누며 또 뛰었다.
러닝 인구가 급격히 늘어난 요즘,
기쁘면서도 어딘가 아쉬운 마음이 든다.
애초에 한 번도 나만의 것이 아니었건만
‘나의 달리기’가 ‘모두의 달리기’가 되어버린 듯한
옹졸한 마음.
두 다리가 멀쩡하다면
나는 아마 평생을 달릴 것이다.
달리며 사계절의 공기를
온몸으로 통과시키는 일,
그보다 생의 감각을
온전히 만끽할 수 있는 행위가 또 있을까.
아무튼, 달리기가 좋다.
“매일 달린다는 것은 나에게 생명선과 같은 것으로, 바쁘다는 핑계로 인해 건너뛰거나 그만둘 수는 없다. 만약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달리는 연습을 중지한다면 틀림없이 평생 동안 달릴 수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