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왜 일하는가
회사의 대표로서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는 기업문화를 만들어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기업의 문화는 엉겁결에, 혹은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분명한 방향과 전략, 그리고 반복되는 선택과 노력이 쌓여 만들어진다.
기업문화는 구성원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흔히 말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만 생각하지 않는다.
구성원들의 노력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보다 앞서 기업의 문화를 어떤 방향으로 설계할 것인지는 대표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본질은 이윤 추구에 닿아 있다.
조금 더 들어가면, 더 큰 이윤을 지속적으로 창출하기 위해 ‘일을 잘하는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문제에 이른다. 무엇이 일을 잘하는 것인지는 또 다른 큰 담론이 될 수 있기에 여기서는 일단 차치하자.
다만 분명한 것은 조직의 구성원들이 한 팀이 되어
같은 방향으로 정렬된 상태에서 일을 잘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기업문화의 목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일을 하는 주체는 사람이다.
결국 기업문화를 설계하는 출발점에서 깊이 고민해야 할 질문은 여기에 닿는다.
'나는 인간을 어떤 존재로 바라보고 있는가.'
더 깊이 들어가면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가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일과 조직의 맥락 안에서는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어떻게 전제하는지가 중요하다.
만약 인간을 보상이 있어야만 움직이는 존재로 전제한다면, 기업문화 역시 보상 설계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기업문화에 대한 고민의 출발점은 인간관이었다.
인간에 대한 관점은 문화가 되고, 문화는 시스템이 되며, 그 시스템은 결국 성과로 귀결된다.
심리학에서는 인간을 두 갈래로 설명한다.
환경 자극에 반응하며 행동이 결정되는 존재,
그리고 스스로 선택하고 성장하려는 자유 의지를 지닌 존재.
대표가 어떤 관점을 택하느냐에 따라 회사의 모습은 전혀 달라진다.
나는 본래 후자의 관점에 가깝다.
사람은 일을 하기 싫어하는 존재가 아니라, 잘하고 싶어 하는 존재라는 믿음에 닿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의지가 아니라 환경이다.
감시와 통제가 강해질수록 사람은 최소한으로 움직이고, 신뢰와 자율이 주어질수록 예상보다 훨씬 멀리 나아간다는 것을 경험으로 배웠다.
그래서 성악설보다는 성선설에 가까운 인간관을 선택했다. 성과를 내지 못하는 개인을 의심하기보다, 성과를 낼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하는 쪽을 택했다. 세세한 지시보다 방향을 공유하고, 통제보다 책임을 부여하는 방식이 조직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는 사실도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알게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 믿음에는 분명한 전제가 따른다.
사람은 자유 의지를 지닌 존재이지만, 미혹되기 쉬운 환경 앞에서는 놀라울 만큼 쉽게 흔들리는 존재이기도 하다. 의도가 나쁘지 않아도, 구조가 허술하면 사람은 본성보다 환경에 더 크게 반응한다.
그래서 자율을 믿는 것과 아무런 장치도 두지 않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나는 이를 종종 가드레일에 비유한다.
가드레일은 운전자를 불신해서 세우는 장치가 아니라, 사고를 막기 위해 마련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가드레일이 있다고 해서 길의 방향이 제한되지는 않는다. 다만 치명적인 이탈을 막아줄 뿐이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자율을 전제하되, 유혹과 오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과 규칙은 반드시 필요하다.
통제가 아니라 보호의 관점에서 설계된 시스템,
사람을 의심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사람이 잘할 수 있도록 돕는 구조.
대표의 역할은 자율과 신뢰 위에 보이지 않게 놓인 가드레일을 설계하는 일에 가깝다.
또 하나 분명한 사실은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점이다.
특히 초기 스타트업일수록 당장의 완성도보다 중요한 것은 배우는 속도와 태도다.
시장은 빠르게 변하고, 어제의 정답은 쉽게 무효가 된다. 그래서 기술보다 변화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개인의 성취보다 방향에 대한 공감을 더 중요하게 보게 되었다.
대표의 역할은 정답을 제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패해도 다시 시도할 수 있는 심리적으로 안전한 공간을 만드는 일에 가깝다.
비난 대신 회고가 쌓이고, 침묵 대신 질문이 오가는 조직에서 사람은 비로소 자신의 역량을 드러낸다.
이 모든 것의 바탕에는 투명성과 진정성이 있다.
좋은 소식만이 아니라 불편한 현실까지 함께 공유할 때, 조직은 비로소 ‘일하는 곳’이 아니라 ‘함께 책임지는 공간’이 된다.
말과 행동이 어긋나는 순간 문화는 무너지고, 신뢰는 회복하기 어려워진다.
마지막으로,
사람을 비용으로 대놓고 취급하기 시작하는 순간 회사는 질적 성장을 멈춘다.
사람은 지출 항목이 아니라 가장 높은 수익률을 가진 투자 항목이다.
좋은 사람 한 명이 만들어내는 가치는 숫자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크다.
돌아보면 기업문화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대표가 인간을 어떤 존재로 믿고, 어디까지 맡기고, 어디에 가드레일을 세웠는지에 대한 매일의 선택이 축적된 결과였다.
그리고 그 선택의 책임은
언제나 대표의 몫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