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죽어가는 도시를 부활시키는 관점의 발견, 사람...
공간은 사람과 함께 생활하고 살아 숨쉬고 있다.
갓 태어난 명소는 주말이면 사람이 넘쳐나고 숨가쁜 하루 일정을 소화한 뒤, 하늘이 어두워지고 밤이 되면 휴식을 취한다. 왕성한 활동을 하게 된 공간은 낮이고 밤이고 북적거리는 흥행기를 맞이하나, 거대한 시간의 흐름에 노쇠해지고 죽음을 앞둔 노인의 두려움처럼 여기저기 몸이 아프기 시작하고 죽음 이후를 두려워하며 소멸해간다.
역사의 시간 축을 길게 잡는다면 대도시의 일생은 인간의 일생보다 더 큰 굴곡과 역사를 가진 채 역시 몰락과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하지만 부활이라는 절대카드를 한 장 가지고 있다는 점은 인간과 다른 점이다. 공간은 결정에 따라 죽음의 론도로 생을 마감할 수 있지만 화려한 부활 프로젝트로 새롭게 재생될 수도 있다.
근대 이후 최고의 순간을 경험한 런던은 산업혁명시대의 역동에 가득 찬 시대를 보냈고, 세계의 정치, 경제 중심지로서의 부귀영화를 누렸다. 하지만, 영국의 쇠퇴는 공간의 몰락과 함께 찾아왔고 새롭게 생명을 불러 넣어야 하는 운명의 기로에 서게 된다. 버릴 수는 없으니까.
저자는 런던에서 재생도시의 과정을 건축학자의 입장에서 바라보았고 성공의 광경을 목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영국은 부활에 성공한 것이 아니고 살아남기 위한 대수술에 들어가 있는 상태로 진단한다. 어떤 시도들은 참혹한 실패를 맞이하였지만 희망을 갖게 해주는 작은 성공을 이루기도 했다. 10개의 사례를 통해 런던이라는 도시의 부활투쟁기를 엿볼 수 있게 되었고, 같은 운명을 가진 공간과 도시들에게는 참고서 역할을 할 것이다.
흥망과 쇠퇴는 모든 만물의 숙명이다. 하지만 인간의 힘은 도시의 재생이라는 새로운 창조활동을 가능하게 만드는 기적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인상 깊었던 사례 중 첫번째는 처음으로 소개되는 사우스뱅크이다. 사우스뱅크는 템즈강 남쪽에 위치해 있다. 영국이 2차 세계대전의 상흔을 치료하고 무너진 영국인들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그들의 전성기에 열렸던 만국박람회 100주년을 기념하여 영국 페스티벌을 개최하기로 했다. 바로 중심에 사우스뱅크 지역이 선정되었다. 문화예술이 어우러진 새로운 공간으로 재구성하기 위해 런던시는 자신있는 청사진을 제시하였고 로열 페스티벌홀, 퀸 엘리자베스 홀 등 여러 문화시설이 세워졌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페스티벌 이후 지역은 답보상태에 빠졌는데, 런던 강남지역의 새로운 업무/문화 공간이 아닌 강북지역의 보조역할 수준으로 생각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새로운 공간의 개발이 아닌 보조적 역할에 제한되다 보니 투자도 많이 이루어지지 못한 채, 30년 이상 의미 없는 시간만 흘려보내게 된 것이다.
이에 불만을 품은 주민들을 주축으로 "코인 스트리트 커뮤니티 빌더스"라는 단체가 구성되며 "공동체 중심 재생"이 등장하게 된다. 개발업체-주민-시가 협력관계를 통해 도시재생사업을 하는 개념으로 진행될수록 장점이 확대되며 활성화 사업이 탄력을 받게 된다. 사우스뱅크 일대를 개선하기 위한 마스터플랜은 "릭 매더 아키텍츠"가 맡게 되었는데 보행로를 확장하고 연계성을 강화하면서 공공공간을 확충하는 특징이 있다. 걸으면서 즐길 수 있는 복합 문화예술지구로의 변신이다.
각 콘서트홀들은 테라스를 개방하고 연결하여 사람들이 쉬고, 즐기고, 예술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되었고 도보다리와 푸드마켓도 연계되면서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는 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서울의 한강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탈바꿈했지만 문화의 향기는 없고 술냄새가 진동하는 저녁풍경을 보여주는 아쉬움도 있다. 서울시의 노력으로 문화적인 공간을 배치하고, 편의점 오징어가 아닌 정제된 푸드트럭들의 집합소로 운영되고, 정해진 곳에서만 음주가무가 가능하도록 개선해 나간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샤드 템스는 과거 런던 무역전성기 시절을 구가하던 창고지역이다. 영국의 전성기 시절 수많은 배가 화물을 싣고 들락날락한 공간이지만, 해상무역이 쇠퇴하고 영국의 영광도 해가 지면서 몰락에 몰락을 거듭한다. 산업시설들을 한번 침묵에 빠지면 회복하기 어려운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가 바로 샤드 템즈를 배경으로 한 것이라 하니, 썩은 내가 진동하고 더러운 도시의 뒷골목의 바로 그 그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기회가 생겼으니 지금은 보편화된 방식이기도 한 예술가들의 군집이다.
도심과 상대적으로 가까우면서도 임대료는 저렴하고, 정방형의 공간은 전시나 작업용도로도 딱이었다. 150명 넘는 예술가들이 모여들며 거리는 다시 활력을 띄기 시작했고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1979년 8월 일어난 화재로 한여름 밤의 꿈같이 공간의 부활은 생명력을 잃고 만다. 애초에 창고였고 안전상의 문제들에 대해서는 망각하고 있었던 탓이다.
다시 무너진 공간은 사업가이자 디자이너인 테렌스 코렌이라는 사람의 "창고 중심 복합개발"안으로 기회를 갖게 된다. 예술가와 사업가 양쪽에 능수능란했던 코렌은 기존의 창고의 유산을 간직한 채, 새로운 예술과 업무의 공간으로 샤드 템스 지역을 재개발하는 안을 제안한 것이다. 우연히도 이 지역이 역사적 보존건물 구역으로 지정되며 사유지가 임의로 난개발 될 위험에서도 벗어날 수도 있었다.
가장 번영하던 시기의 150년전의 거리가 생생히 살아 숨쉬는 모습은 책에 소개된 사진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도시의 모습을 구현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인쇄소 건물을 카페로 활용한 성수동 거리가 있고, 과거 일제시대의 아픔을 관광지로 변모시킨 군산 사례도 있지만 보다 체계적으로 가치가 있는 건물들을 보호하고 오히려 관광산업과 연계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도시개발의 모멘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사례이다.
가장 뜨거운 주제인 재래시장 활성화 사례도 등장한다.
저자도 지적하듯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이나 미국 등 전세계적으로 마트나 백화점 등 대형 유통사에 대항하기 위한 재래시장 활성화 프로젝트는 끊임없이 시도되어 왔다. 하지만 중간에 상인연합회나 컨설팅 업체만 배 불렸다는 자조 섞인 탄식이 나올 정도로 성공한 유례를 찾기 힘들다. 단순한 지역적 보존이나 전통시장의 고유한 장점을 확보 해야함은 물론이고 대형 유통사와의 비교해도 어느 정도 유사한 경쟁력이 나와야 하기에 실질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엎친데 덮친다고 온라인 시장의 대두는 전통시장은 더이상 존재할 수 없는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간다고 할 수 있다.
예외적을 성공한 사례는 런던의 "올드 스피탈필즈 마켓"이다. 런던의 33개 자치구 중 가장 빈곤한 세 개 자치구 중 하나인 타워 햄리츠에 자리하고 있다. 여왕이 재개관식에 참석할 정도로 런던의 식료품 공급에 역할을 했던 스피탈필즈 마켓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쇠퇴를 시작하고 주변은 쓰레기 등으로 더러워졌다. 하지만 다행히도 런던 특별 자치구가 이 지역부지를 인수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스피탈필즈 마켓과 주변 지역 활성화는 세가지 의미가 있었다, 1) 스피탈필즈 마켓은 350년 넘게 유지된 시장으로 역사성과 지역성이 있고 2) 런던에서 낙후지역의 개발이라는 균형발전 측면 3) 런던 금융중심부는 물론 이민자들의 다문화 지역과도 인접한 지리적 위치로 다양한 발전 가능성을 가졌다는 것이다.
건축가 노먼 포스터의 기획으로 시장은 21세기형 모습을 갖춘 현대식 재래시장으로 변화한다. 기능적인 측면과 미적 측면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방식이었다. 사진을 통해 보면 샵들은 철재와 나무로 구성된 모듈형 구조를 지니는데 현대적이면서도 전통시장의 상점 별 특징을 잘 표현할 수 있는 형태로 제작되었다. 필요에 따라 상인들이 자신의 아이덴티티에 맞게 구조변경도 쉬운 형태였다. 그리고 지붕에는 채광이 가능한 구조로 마켓 전체가 자연광만으로도 밝은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었다. 물론 오래된 건축물들은 깨끗이 단장하여 시장만의 정체성을 유지했고, 공사 도중 발견한 14세기의 납골당을 명소로 활요하고 새로 건축한 업무공간과 상업시설과도 연계되어 하나의 Area를 만들었다.
사진을 보더라도 우리나라나 일본의 재래시장들이 현대화작업으로 단순히 지방만 덮고 변했다고 외치는 것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정말 즐거운 시장 분위기와 다양한 상품들을 지역민은 물론 관광객도 즐길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심지어 음식들조차 맛있어 보인다.
소프트웨어 적인 노력도 많이 기울였다, 오후 6시 이후 상점 폐점 이후에는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고 각 종 공연들이 열리며, 정해진 스케줄에 맞게 특별한 마켓행사도 열리고 홈페이지도 제대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몰락의 기로에 선 우리나라 전통시장들이 한번쯤 방문하여 그들이 생각하는 미래의 재래시장을 공유하길 바란다. 중요한 것은 이 작업은 30년 동안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단기적인 상인보조금이나 지역발전기부금에 부화뇌동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이기도 하다.
이 밖에도 소개되는 7군데의 장소도 너무 매력적이었고 각 자 뜻하는 바가 있었다.
저자가 70개의 사례에서 압축한 10개의 장소라는 데 공감이 된다.
저자가 집필을 마친 후 본문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가 공공공간, 보행 중심, 시민이라고 했다. 이는 단기적인 지역개발이 아닌 중장기적 비전과 도시의 재생에 철학이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무분별하고 즉흥적인 개발은 결국 도시를 파괴하고 그 안에 살고 있는 우리 사람들에게 해가 될 수 있다는 충고일 수도 있다.
이런 멋진 공간과 도시의 재개발이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획기적인 기획으로 성공리에 안착되어가고 있다는 일은 보기만해도 즐거운 일이고, 도시의 새로운 생산성도 가져올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동력들은 힘을 잃고 비틀댈지도 모르겠다. 오프라인 상점들은 문을 닫고 있고 공연장들은 온라인으로 무대를 옮겼으며, 음식점과 주점은 창궐의 공간이 되고 말았다.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들이 바이러스로 인해 물거품이 되고 새로운 신음 속에 고통받는 시기로 이행되고 있는 것은 아닐지. 하지만, 오래된 도시가 되어버린 런던이 새로운 꽃이 피어나는 공간으로 탈바꿈하듯, 우리의 세상도 다시 과거와는 다른 모습으로 부활할 것이라 믿고 싶다.
그것이 "희망"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