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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러시아의 시민들

사람사는 이야기와 사진들이 행복한 책 페이지를 수놓다.

by 까막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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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가보고 싶은 나라가 어디냐고 물으면 주저 없어 선택하는 나라가 "러시아"다.

보통 여행지로 가고 싶은 나라는 국가명을 들으면 이유 없는 울림이 마음 속에서 쿵 하고 다가오는 법.


학생시절 즐겨 들었던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생각이 나고, "전람회의 그림"으로 유명한 무소르그스키의 흔적들을 보고 싶은 마음.

제대로 아직도 못 읽은 러시아 대문호들의 찬란한 유산을 쫓아 여행을 떠나고 싶다.

동토의 왕국이던 대국의 독특한 문화와 사람들 그리고 사는 모습들을 한번은 꼭 보리라 마음먹고 있다.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었지만 체르노빌의 끔찍한 재앙으로 나락으로 떨어진 강대국의 이면에는 사실 과거를 추억하고 새롭게 힘을 얻고자 하는 노력도 많이 있지만, 말이 쉽지 잘 안되는 모습이다. 새로운 "짜르"의 권력을 가지고 있는 푸틴의 영향력이 어쩌면 나라의 발전을 막고 있는 장애물일지도 모르겠고.

어둡고 습습한 공기가 묻어나던 체르노빌의 재앙을 그린 HBO 드라마 "체르노빌"에 그려진 러시아 사람들의 순진함과 비극, 그리고 그 이후의 삶은 여행지로서의 동경과는 또다른 느낌으로 목도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작가는 여행자와 관광객의 차이를 여정을 바라보는 입장의 차이로 설명하고 있다.

고뇌를 안고 생각을 하는 일정과 한 순간을 즐기는 여정의 차이.

여행은 좋은 것이고 관광을 그렇지 않다라고 흑백논리로 나눌 필요는 없다.

모든 것은 길을 떠나는 이의 질문과 바라보고자 하는 대상이 정답이고 진리이다.

여행이던 관광이던 주체는 나이고, 내가 바라보는 새로운 세계와의 교감도 내가 하는 작용이다.


대국이자 오래된 나라인 러시아의 장면들을 포토에세이로 담아낸 책의 각 페이지에는 저자의 따뜻한 세상을 바라보는 눈길과 그만의 고민과 사색이 담겨 나온다는 사실을 서두에 여행의 정의를 이야기해준 덕에 이해하기 쉬웠다.

평범한 일상의 한 장면이지만 작가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감동을 느끼는지 지켜보는 관찰자로 내 자신도 즐거운 동행을 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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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초반기에 만난 신부의 활짝 웃는 모습이나 낯선 외국인이지만 교회에서 말을 거는 노인을 바라보는 시각은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있기에 가능한 장면들이 아닐까?


박물관을 지키는 허름한 병정이 철의 시대를 알기는 할 까라는 말에 이 글의 서두에 이야기한 제국의 몰락과 부활의 노력들이 일상의 장면에서 교차되는 느낌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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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후반 모스크바에서는 록 페스트벌이 자주 개최되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급진적인 음악이기는 하나 미국과 영국의 대중음악이 수많은 팬들을 거느린다는 사실이 무척 의아스러웠다.

저자 역시 버스킹 문화의 발달이나 도시의 음반가게에서 차이코프스키만큼이나 유리이어 힙이나 블랙 사바스의 음반이 진열된 상황에 의아함을 느꼈다. 그리고 후반기의 소비에트는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꽉 막힌 사회도 아니었고, 의미가 있고 예술성이 있는 문화적 요소는 위화감 없이 받아들였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중국과 북한의 공산주의와는 사뭇 다른 풍경. 특히나 복잡하고 대중적인 요소와 다소의 거리를 두고 있는 아트록과 하드록의 인기는 수많은 록 뮤지션들의 모스크바행 비행기표를 발권할 만한 충분한 동기였겠다는 생각이다.


음악에 비해 미술적인 융성은 철저히 아웃사이더로 자리매김한 사실은 의아하다. 미술 매니아들은 그래서 러시아의 미술관들은 미지의 창고를 뒤지는 쾌감을 느낀다고 하지만, 학창 시절 배웠던 수많은 미술가들 이름 중에 ~스키가 없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칸딘스키 하나 머리 속에 안녕`하고 손을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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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항상 적국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다는 저자의 이야기는 새로운 시각이라는 느낌이 들면서 그랬구나 라는 동의를 이끌어낸다.

007 영화에서 계속 악당들을 만들어냈고, 톰 크루즈는 크레믈린 궁을 적의 심장으로 표현한다. 섹시한 러시아 스파이들은 서방의 남성 주요 인물들을 노리는 적이지고 이는 이데올로기의 적대적 관계를 성대결로 판을 바꾸는 할리우드에 절묘한 설정의 변화다. 한 나라가 적으로 묘사될 때 영화를 보게 되는 해당 국민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월드 워Z에서 한국이 바이러스의 원산지로 표현되는 장면에서 여러분은 분통을 터뜨리지는 않았는지?


책에는 수많은 사진들이 컬러풀하게 담겨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사람들이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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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아뜰리에나 길거리 버스킹 공연, 소년과 수녀는 수돗가에 때로는 성당의 근엄한 그늘 안에.

땅 크고 세상을 호령했던 그리고 때로는 우리의 적국이었던 러시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친절한 웃음은 국가와 민족을 떠나 우리 개인들의 소박한 하루는 얼마나 친근한가를 느낄 수 있는 에세이기도 하고, 몰랐던 러시아의 숨겨진 비밀들을 하나씩 캐 먹는 즐거운 책 여행이기도 하다.


책꽂이에 하루에 한 컷씩 책을 펴 놓아 하루의 사진으로 진열해도 좋은 즐거운 경험, 그리고 러시아에 대한 여행동경을 up시키고 말았다.

사진과 곁들인 에세이로 최근 본 책 중에 제일 따끈하고 풍성하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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