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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인문학으로 맛보다 - 와인 치즈 빵

읽으면 입에 침이 고이는 고약한 나쁜 책

by 까막새

인문학으로 맛보다 - 와인 치즈 빵 : 읽으면 입에 침이 고이는 고약한 나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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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딱 어울리는 식탁의 조건.

진한 적색의 보글보글한 거품이 일고

노랗거나 때로는 과일이 섞인 말랑함

퍼석거려도 좋고 말랑거려도 좋은 따듯한 온기 가득한

크리스마스의 눈 내리는 창가가 배경이라면 한층 분위기는 무르익고,

Adrianne Lenker의 음악이 살짝 배경음악으로 들어간다면 2020년을 마무리하기에는 적당한 조합.


음식에 대한 역사 이야기도 좋고, 에세이, 그리고 돋보기를 들고 찾아 나서는 식탐 여행기도 좋다.

우리를 풍요롭게 하고 하루를 알차게 지내는 에너지원으로서 음식은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움이 배가 되기 마련이라.


세가지 음식이 대한 이야기는 잘 짜여진 책의 편집만큼이나 마음 속에 자기 자리를 명확히 잡고 있는 식도락의 즐거움을 톡톡 터트린다.

각 음식의 종류와 얽힌 이야기들 역사이야기. 마치 식탁에 친구들이 둘러앉아 오붓한 저녁과 술 한잔 걸치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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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먹지 말라는 의사들의 조언에도 유일한 예외가 와인인데 때로는 그나마 낫다는거지 안 먹는게 제일 좋다는 의견도 있지만 와인으로 건강한 삶을 사는 지중해 사람들의 식습관을 들여다본다면 유일하게 칭찬받는 알콜의 축복일지도.

책에 등장하는 크리소스무스의 "와인을 위한 시" 시구에도 이 점은 확실하게 나와있다.

-취하니까 와인이 없어야 한다면/도둑이 있어 밤이 없어야 하고/염탐꾼이 있어 나이 없어야 한다 말인가!


기독교에서 예수의 피가 어떻게 포도주가 되었는지는 잘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일상에 포도주가 오랫동안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고, 우리나라 카톨릭에서 쓰는 와인에 축복을 내라는 행사가 있으며 오래된 국산 브랜드인 "마주앙"이 쓰인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물론 시중에 판매되는 상품과는 다르지만. 제대로 한 잔 먹고 싶은 충동.

샴페인의 톡쏘는 즐거움을 일깨워준 피에르 페리뇽의 일화는 우연의 우연이 만나 우리가 즐기는 새로운 술이 탄생한다는 즐거움을 안겨준다.

봄이 되어 발효가 시작되어 부글부글 끓다가 병이 터지는데서 톡쏘는 새로운 음료가 발견될 수 있던 것은 천부의 재능을 미각으로 올인한 수도사 덕분이라는 사실을 매번 샴페인을 터뜨릴 때마다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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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의 다양함이야 요즘 대형마트만 가보아도 화려하다.

와인 열풍이 불기 시작한 때부터일까? 꽤나 큰 공간을 차지하는 치즈 코너에는 코스트코에나 가야 볼 수 있었던 고가의 라인 업도 갖춰지기 시작했고 과일이 들어간 변형된 상품들도 많이 보인다. 하지만 유럽의 시장에서 파는 큼지막한 치즈 덩어리의 군침나는 광경은 볼 수 없어 아쉽다는 생각도 든다.

와인만큼이나 오래된 역사를 지닌 식품이다 보니 전쟁에도 휘둘리는데, 산양을 데리고 다니다가 젖도 짜 먹고 치즈나 요거트도 만들어 먹던 움직이는 보급 기지라는 이야기에 빵 터진다. QR코드로 모양새를 보면 순한 모습은 아니다.

산양분유가 왜 고가인지도 잘 설명해준다. (산양분유, 한번 맛을 보았는데 못 먹겠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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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나 이집트 역사에 등장하는 오래된 빵의 역사는 "오병이어"의 기적까지도 연관되는 어쩌면 서양인들의 가장 중요한 음식사일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마들렌에 대한 이야기에 시선을 강탈당한다.

아직 읽어보지 않았지만 너무나도 유명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가장 큰 업적이 프랑스 사람들만 먹던 마들렌을 세계인이 즐기는 디저트로 만든 쾌거를 이루었다는 점이 웃음을 자아낸다. 보들보들하면서도 향기로운 냄새가 부엌을 진동하게 만드는 마들렌, 바로 어제 집사람이 부엌에서 구웠으나 딸아이 먹을 양만 있다고 매몰차게 먹지 말라고 했던 바로 그 망할 마들렌! 부글부글 치사해서 내 돈 주고 사 먹겠다는 의욕이 불타오르는 이런 현상이 바로 "프루스트 효과"가 된다. 마들렌하면 돈 내고 사 먹어야 하는 개인적인 악몽이 떠오르게 되어버린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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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때인만큼 한 챕터를 배정한 크리스마스 케이크 편에서는 "부쉬 드 노엘"이 눈에 번쩍 들어왔다. KB카드 매일 퀴즈 릴레이에 등장했던 바로 그 케이크이기 때문.

"프랑스에서 크리스마스때 먹는 독특한 모양의 부쉬 드 노엘은 무슨 모양일까요?"가 문제였고 정답은 "장작"이다.

전통적으로 크리스마스 이브부터 삼일 밤낮 불을 피우는 전통에서 유래한 케이크는 초콜릿 롤 케이크와 비슷한 분위기인데 매번 생크림 PB 케이크만 먹던 우리 집의 전통을 한번 깨 볼만한 도전이라는 욕심이 생긴다.

챕터 말미에는 토막 상식을 알려주는 장이 있는데, 빵을 왜 냉동해서 보관해야 하는지 이유를 설명해준다. 호빵같이 유통기한 짧은 양산빵은 냉동실에 보관해서 여유 있게 드세요라고 외치던 마트의 판매원 아주머니의 힌트가 거짓이 아니었다.


인용되는 구절이 조금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3가지 신의 선물을 찬양하는 이야기나 시구도 많고 에피소드도 많긴 하지만 오래된 문장들은 책 전체를 약간 올드한 느낌, 또는 형식적인 구성으로 느끼게 만드는 게 조금 아쉽다. 현대의 식품발전 이야기를 더 집어넣었어도 재미있었겠다는 느낌.


한 쪽씩 글을 읽다 보면 등장하는 음식과 여러 사물에 대한 이미지가 연상되는 부분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부분도 많이 보인다. 책 판형이나 스타일로는 페이지마다 컬러 사진이 이런 아쉬움을 대체해주면 좋을 텐데 불만이 꿈틀거리지만 다행히 QR코드로 이미지를 대체했다. (QR코드 자리에 사진을 넣었다면 더 좋았을까?)

유난히도 이 책은 향기까지 맡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독서 내내 머릿속을 괴롭히는 망상과 유혹.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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