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가 파킨스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우리는 일본의 2등 국민이었을지도
세계사를 바꾼 21인의 위험한 뇌 : 히틀러가 파킨스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일본의 2등 국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역사를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는 장점 두가지는 역사에 대한 재미를 누구나 느낄 수 있게 되는 점과 일반적인 통사에서 다루지 않는 면을 살펴볼 기회를 갖는 부분이다.
학교교육은 통사 위주의 전체적인 흐름을 가르치게 되는데 역사의 틀을 잡기 위해 정치 사회적인 면이 부각되다 보니 재미가 없다.
하지만 그 때 받은 전체적인 틀이 있어야 성인이 되어 다양한 관점의 역사를 읽을 때 방향을 제대로 이끌어줄 수 있다.
역사를 제대로 교육하지 않고 아전인수식으로 써 내려가는 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나 우리 입장에서 일본은 좀 지나치지 않은가 라는 생각을 하는데, 한편으로는 장난질을 치기 위해서는 그만큼 해박한 지식과 다양한 관점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거짓말을 하려면 배경지식이 있어야 완벽해지는 법이다.
지속적으로 출판되고 있는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는 생각도 못한 관점에서 세계사의 흐름을 재미있게 짚어주고 있다.
특히 37가지 물고기 이야기는 꽤나 인상적이었고 개인적으로 손에 꼽는 역사서이기도 하다.
일본 출판계가 역사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도서를 출판하는 원인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쳐다보게 된다는 부작용도 생기는 점도 있다.
특히 의학적인 성과의 깊이가 불온한 사건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보니 역사를 뇌 의학적인 관점으로 바라본 책이 재미있고 흥미로운 전개를 하더라도 약간은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21명의 역사적 인물들이 세계사를 바꾼 행동을 하는 현장의 모습을 질병과 연결시키는 흥미로운 페이지 넘기기를 시작해보자.
잔다르크와 도스토옙스키가 종교적 경이로움에 도달한 이유를 측두엽외전증으로 의심하면서 강력한 첫 챕터가 시작된다.
프랑스를 구하라는 신의 음성을 (정확히 가브리엘 천사) 듣고 전쟁터의 영웅이 된 한 소녀의 이야기는 밀라 요보비치의 영화 "메신저"로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 짧게 머리를 깎고 갑옷을 입고 주변의 비웃음거리는 무시한 채 과감히 적진에 돌입, 많은 병사들은 무모해 보이는 소녀 리더의 모습에 불타오르며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결국 그녀에게 주어진 결론은 화형. - 정작 사형의 이유는 신성모독이나 적의 영웅이라서가 아니라 여성이 바지를 착용하고 단발을 했다는 금기의 파괴였다고 하니 시대의 표준이라는 규칙과 규율의 무모함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모함을 받고 사형대까지 끌려갔던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옙스키가 세계적 명작을 써 내려가며 의지했던 종교적 신념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두 위인들의 공통점인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주장을 질병학적인 측면에서 진단하는 방식은 꽤나 쇼킹한 접근법이다.
특히 두 사람의 소견을 당시보다 발전된 의학적 지식으로 판단해 내린 결론이라면 세계사와 문학사를 바꾼 결정적 동기가 종교적이나 개인적인 영웅력이 아닌 질병이라는 허망한 결과에 이른다. 이 또한 사실이라 해도 도도한 역사의 물줄기는 위대하게 흘러가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편두통은 꽤나 흔한 질병이라 감고 걸렸을 때 두통같이 머리 아픈 수준으로 생각했다.
주변 사람들이 편두통이라며 연차를 쓰거나 조퇴를 하면 약간 이해 안되네 - 나의 반응이었다.
남북전쟁이라는 치명적인 내전이 발발하고 같은 국가가 두 패로 나누어져 살육을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두가지의 상황에서 편두통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리라는 추정은 다소 오버스럽기도 하지만, 사람의 심리가 얼마나 약한 존재인가를 떠올려 보면 과장이라고 쓴 웃음 짓고 말 상황은 아닌 듯싶다.
특히 "부쳐-살육자"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남군 입장에서는 지옥에서 돌아온 저주 같던 그랜트 장군이 항복을 한 남군 군인들에게 관대한 처분을 내린 장면은 편두통이 사라지고 인생의 밝은 면을 본 이의 마음상태 변화가 느껴진다.
"전쟁은 끝났소. 반란군이 다시 우리 국민으로 돌아왔소." - 고통에서 벗어나 평온함을 찾은 이에게서 나올 수 있는 따뜻함이 아니라면 무자비한 전쟁에 서로에게 총질을 해대던 적국에게 내릴 처분은 아니다.
-이 챕터에 나오는 뇌는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의학적 사실도 꽤나 흥미로웠다. 두통은 실제 뇌가 아픈 것이 아니라 뇌를 머리에 고정하기 위해 붙어있는 근육과 힘줄들이 수축해서 나타날 때 발현된다고 한다. 스트레스 받으면 어깨 결림이 나타나는 증상과 유사한 원인이다. 스트레스가 얼마나 사람의 건강에 치명적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다양한 패러디가 만들어진 독일 영화 "다운 폴 (Der Untergang)"에서 히틀러는 패전 소식에 화를 내면 떨리는 손으로 안경을 쓰는 모습을 연출한다.
인류의 비극 중 하나인 2차 세계대전의 주범이며, 현대의 역사 방향을 바꾸어 놓았던 그 역시 뇌 질병이라는 프레임에서 보면 환자에 지나지 않았다.
발병율이 꽤 높은 파킨스병은 뇌간의 흑질 이상으로 도파민이 제대로 생성이 되지 않아 생기는 질병이라고 한다. 신경전달물질의 역할을 해야 하는 도파민이 제대로 생성이 안되다 보니 제대로 보행을 하지 못하고 몸이 덜덜 떨리며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도 없게 된다.
전쟁의 시작 전 연설현장에서 독일인들의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풀어주며 하일 히틀러를 외치게 만들던 카리스마의 모습이 전쟁기간 동안 보이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파킨스병으로 인해 외견상 수척해지고 제대로 연설도 못하게 된 상황이라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다른 질병들에 비해 외견상의 특징이 확실한 질병이다 보니 각종 영상물과 기록물만 가지고도 히틀러의 병세는 진단이 가능하다고 한다.
서유럽의 전장을 그대로 둔 채 무리하게 러시아로 전선을 이원화시킨 히틀러의 전략적 판단미스가 어쩌면 그가 가진 질병과 연관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의심이 든다.
정상적인 리더라면 내리지 않을 전장의 분리는 그의 뇌가 아픈 상태면 이해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뇌 질환으로 세계사의 변곡점이 나타났다는 주장을 있는 그대로 100% 믿을 독자들도 아니고 저자도 이게 진실이야 주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항상 상의에 오른손을 꽂던 나폴레옹의 포즈가 사실은 위장병 떼문이라는 황당한 진실과 마주했을 때, 인간은 역사를 이끌어가지만 아주 간단한 습관과 태도가 방향을 바꾸고 뜻밖의 결과지로 우리를 인도하게 하는구나 쓴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병원에 가야지라는 우스개 소리처럼 아무리 중대한 의사결정 상황에 맞부딪치더라도 고통과 질병은 의사결정을 원래의 방향과 다르게 내릴 수 있는 개연성을 제공하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이것 역시 역사가 가진 불완전성과 우연성이라는 여러가지 속성 중 하나일 뿐이다.
역사는 그렇게 새로운 전설이 되었고 미래는 다른 종착역을 향해 열심히 달리기 시작한다.
역사의 장면과 인물들을 다양한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사고전환을 하게 해준 것만으로 이 책의 즐거움과 유익함은 환영받아 마땅하다.
역사의 숨어있던 진실 또는 의혹과 연계된 의학적 지식들을 다소 가벼운 마음으로 읽다 보면 늦게나마 금연을 한 게 그나마 다행이라는 안도감도 들게 만든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