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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막새 May 31. 2021

[서평] 팀 하포드의 세상을 바꾼 51가지 물건

새로운 물건들이 세상을 뒤집어 놓은 현장을 들여다보다.

팀 하포드의 세상을 바꾼 51가지 물건 : 새로운 물건들이 세상을 뒤집어 놓은 현장을 들여다보다.


연필로 51가지 인류의 역사를 바꾸는 흥미진지한 입담이 시작된다.

경제학 콘서트와 어뎁트, 메시 같이 흥미로운 주제들을 일반인들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경제서로 출간했던 팀 하포트는 세상을 바꾼 51가지 제품들을 소개하며 역사와 시대적 배경, 과학적/사회적 파장, 그리고 인류가 한단계 진보할 수 있는 동기들을 살펴보고 있다.

그의 전작인 “팀 하포드의 경제학 팟캐스트”가 아이디어와 생각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이 책은 그로 인해 탄생한 여러가지 발명품들에 대한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보통 이런 스타일의 책들을 누구나 이름만 들어도 그래 세상을 바꾼 물건이 맞네. 라는 공감을 이끌어내는 상품들을 위주로 선정한다. 예를 들어 TV, 냉장고, 에어컨, 컴퓨터, 자전거, 인공호흡기, 스페이스 엑스… 뭐 이런 것들.

그런데 이 책에는 연필같이 흔하고 보 잘 것 없는 취급을 받는 상품에서 각종 금융상품이나 기계류, 댐이나 태양광 같은 설비들을 소개하고 있다. 

매력적이지 못한 물건들 이야기라고 무시하면 곤란하다.

연필에 대한 내용만 들쳐봐도 작가가 사물의 역사와 효용성, 그리고 우리의 삶에 대한 냉정하고 날카로운 시선을 종이 위에 옮겨 놓은 진지한 작업임을 눈치챌 수 있다.

연필 Pencil이 페니스 Penis라는 라틴어에서 나왔다는 걸 알고 있었는지?

"잉크는 아이디어가 세상에 나갈 때 바르는 화장품이며, 흑연은 그 아이디어들의 지저분한 진실"이라는 말에 내포된 연필이 우리를 어떻게 빛나게 만들어주는지에 대해 분석과 통찰을 배워볼 시간이다.

발명품 하나 하나 놀라운 팩트들이 가득 차 있는 흥미로운 세계를 추천한다.

덕분에 산타클로스가 코카콜라 광고 모델이란 말은 더 이상 믿지 않게 되었고, 크리스마스 세일이 결국은 한 해를 마감하는 재고 떨이라는 새로운 관점도 갖게 되었다.


_스위프트/SWIFT


국가 간의 거래에 있어 데이터의 표준화는 가장 기본적인 상호간의 협력사항이다.

오래전에 쓰던 플로피디스크에 로또 1등 번호가 기록되어 있다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을 번호를 얻는데 실패할 수밖에 없다. 표준전송방식에 맞는 장치를 보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제간의 금융거래는 로또 번호보다 훨씬 방대하고 중요도 높은 정보가 교환된다.


정확성 / 신뢰성 / 속도, 모든 요소가 결점이 있으면 곤란한 거래정보다.

과거에는 종이로 쓴 문서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금융산업이 돌아갔지만 정보통신의 발달은 금융거래의 혜택을 위해 국가 간의 협력을 자연스럽게 이끌어 낸다.

텔렉스라는 단문 형태의 통신이 한계에 부딪히며 새로운 포맷에 대한 요구가 늘어났을 때, 미국은 자신들의 은행에서 쓰이는 표준규약으로 통일시키려고 시도하지만 유럽은 산업의 종속을 우려하여 이에 반대하고 스위프트라는 새로운 제도를 통해 표준화를 완성시킬 수 있었다.

문제는 정보의 교환은 데이터가 왔다갔다하는 내용일 뿐이고 산업 전체의 헤게모니를 미국이 쥐고 있다 보니 결국은 시스템의 장악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달러를 통해 국가 간 통화가 전환되기 때문이다.

유럽의 결사적인 몸부림도 헤게모니 앞에서는 힘이 없었고, 중국이 호시탐탐 기축화폐에 이름을 얹으려고 노력하는 이유기도 하다.

_CCTV


최근 한강에서 일어난 죽음에 사회가 비정상적으로 흥분하고 언론과 일부 유튜버들이 섣불리 사건을 추정하는 한쪽 방향으로 몰아가는 모습을 전국민이 지켜봐야 했다.

여러가지 정황을 제시해도 음모론자들은 끝없는 부정과 의심으로 사건을 왜곡하려는 의도마저 보이면서 공분을 자아내기도 한다.

모두 이렇게 이야기한다.

"CCTV만 있었어도."

만약 죽음의 장소가 한강공원처럼 CCTV가 드문 드문 설치된 장소가 아니었더라면 사건은 단 하루면 결론 났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 청년의 죽음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은 CCTV가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CCTV는 빅브라더인가, 사회의 건전한 감시망인가.


개인의 자유와 프라이버시는 문제는 여러 차례 등장했지만 이젠 우리의 행동하는 모든 곳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에 익숙해진 느낌이다.

사람은 통제를 당한다고 생각하기만해도 그에 맞게 행동한다는 이론이 있듯, 우리는 무심코 자신을 신처럼 굽어보고 있는 CCTV를 발견하고 놀란다. 코를 파고 있었거나 길가던 예쁜 여성에 음흉한 눈빛을 쳐다보거나 그냥 멍 때리고 있더라도 뭔가 내가 실수를 하지 않았나 누군가에게 들키면 창피한데. 각종 망상이 머리속에 밀려 들어오게 되며 옷 매무시를 정돈한다.


로켓 발사 실험을 현장에서 떨어진 장소에서 안전하게 지켜보고 싶었던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은 텔레비전 엔지니어인 발터 브루흐를 초빙해 폐쇄회로를 통한 TV수신방식을 만들었다. 그리고 현재 2억 5천만대가 세상에 설치된 초히트 대박 상품으로 탄생된다. 30명당 1대 꼴로 설치되어 있다고 하니 그 숫자는 놀랍기만 하다.

중국은 국가적으로 전국망을 구축하려고 하니, 이 숫자는 더욱 증가할 운명이다.

여기에 얼굴인식 기술까지 장착이 되고 있으니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누군가가 사고 치기 전 체포하는 경찰이 어느 날 우리 동네를 서성일 날이 않았을지도.

당신의 집에 설치된 아마존 에코나 구글 홈, 또는 인터넷 사업자의 인공지능 스피커가 카메라가 아닌 오디오로 당신의 소리를 녹음하고 염탐할지도 모른다. – 물론 기업들은 이 사실을 끝까지 부인할 듯-


_고무경화법


최근 벨기에 대사 부인의 부적절한 폭력이 도마 위에 올랐고, 벨기에 정보는 뒤늦게 사과와 대응방안을 공개했다.

대사는 자리를 잃었고 대사부인은 외교관에 부여된 면책특권을 포기한다는 내용이었다.

결국 잘못을 인정하는 건가 많은 사람들은 늦었지만 적절한 대책을 내놓은 벨기에 정부에 대해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몰랐다. 벨기에가 과거 식민지 시대에 어떤 행동들을 하였고, 현재 유럽에서 가장 인종차별이 심한 나라 중 하나라는 사실을.


고무가 산업계에 숨겨진 진주로 알려지며 다양한 영역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결정적 원인은 실패자라고 낙인 찍혔던 찰스 굿이어라는 사람이 고무경화법을 발명하면서 부터라고 볼 수 있다. 더운 날씨에 악취나는 점액질로 변해버리는 고무를 탄탄하게 유지시켜주는 비법이 확인되면서 다양한 용도로 고무를 활용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세상에 편리함과 안전을 주게 된 고무의 변신에 인생을 송두리채 빼앗기는 사람들도 생겨났으니, 바로 콩고 주민들이다. 콩고를 식민지로 지배하던 벨기에의 레오폴드 국왕은 수요를 못 따라가는 고무를 재배하고 수확하기 위해 가혹하게 노예들을 부렸고, 조금이라도 수확이 늦어지면 부녀자들과 아이들의 손목을 잘라버려 수확꾼들의 노동을 재촉했다. 눈 하나 깜짝 않고 잔혹한 행위를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흑인들은 인간이 아니라는 자기 최면적 인종차별이라는 편견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아시아 관광객들을 마주치면 눈을 찢는 행동으로 인종차별을 몸소 실천하는 어린이 학생들이 즐비한 벨기에라는 나라가 동양인들에게 쉽게 사과를 할 수 있을까? 가까운 일본의 파렴치한 잔영이 투사되는 느낌이다.


_태양광 발전


우리 아파트 경비실 지붕에는 커다란 태양패널이 설치되어 있다.

여름에는 에어콘의 전력이 공급되고, 겨울에는 난방기 전력이 공급된다.

소크라테스가 이야기했다고 한다. 

"모름지기 집의 구조는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해야 한다."

역시 대철학자 다운 면모가 여실히 드러나는 말이다.

일본 요도바시 카메라에 벤치마킹으로 방문했을 때 꽤 커다란 면적을 할애하여 가정용 태양광 부스가 마련되어 있었다.

우리나라 도시는 아파트 주거가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어 제한적인 설치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주택 위주의 일본은 도시는 물론 지방까지도 많은 가구들이 태양광 발전으로 전기를 대체하고 있다.

물론 초기 설치 비용이 높기 때문에 지자체별로 금액이나 금융 지원이 보조되고 있다. 

1930년대 T.P.라이트라는 미국 항공공학자가 정의한 학습곡선에서도 태양광 발전은 꽤나 가파른 곡선을 보일만큼 단위 비용이 보급에 따라 현격히 낮아지는 설비다. 전기차의 대중화와 함께 태양광 설비의 보급도 기대되는 분야 중 하나다.

학습곡선은 누적 생산량이 2배 될 때 마다 단위 비용이 15%씩 줄어든다는 가설인데 태양광은 더 큰 비율로 생산비용을 낮출 수 있다는 설명이다. 많이 보급될수록 단위 설치비용은 지속적으로 하락한다. 전기차 시대로 접어들며 배터리 효율이 급속히 좋아지고 있는 만큼 태양광 사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이다.


잡학사전 개념으로 책을 훑어봐도 좋다.

숨겨져 있던 역사의 전환점을 만들었던 발명/발견으로 탐독해도 좋다.

물건에 대한 숨겨진 역사와 뒷이야기를 보고 싶다면 그렇게 보면 된다.


이 책의 장점은 물건 테마별로 짧은 페이지에 방대한 정보를 간결하게 압축해 놓았고, 독자가 어렵지 않게 술술 읽어 나갈 수 있는 쉬운 설명으로 채워졌다는 점이다. 중간에 등장하는 위트 있는 대사나 의견들도 작은 웃음을 던져준다.

책을 한 권 읽으며 잡다한 상식으로 채워 넣는 재미는 느껴본 사람만 알 수 있는 작은 희열의 반복이다.

연필에 숨겨진 역사 따위를 누가 알고 싶겠는가?

하지만, 우리가 위대한 아이디어를 만들어낼 때 긁적이는 스케치를 통해 머리 속 생각을 구현시키는 매개체가 바로 연필이다.

위대한 발명과 혁신의 밑바닥에는 연필로 구체화되는 과정이 녹아 있다는 점을 알아채야 한다. 잉크로 스케치를 할 수 있겠지만, 과연 원하는 데로 자유로운 상상이 가능할까?


세상을 바꾼 혁신적인 제품은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사회의 모습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하찮아 보이는 작은 존재들이 인류의 방향성을 미래지향적으로 바꾼 사레도 많다.

우리가 관심을 갖고 그들의 고마움을 알아준다면 인간의 도구들도 기꺼이 우리의 일을 도와줄 것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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