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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밤 Oct 06. 2021

혼자노는기록 #20 집에서 나홀로 칵테일 한 잔



# 칵테일 로망


칵테일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멋진 사람들이 엘레강스한 분위기 속에서 그렇게 예쁠수가 없는 색을 가진,  나는 먹어보지 못한 무언가를 마시고 있었다. 누구든 무슨 맛일지 궁금하지 않았을까?


이런 단순히 색깔 예쁜 저건 어떤 맛일까 하는 호기심은 첫 번째 직장 퇴사기념으로 팀원들과 난생처음 바에 가서 칵테일을 마시고나자 좀더 구체적으로 궁금해졌다. 


<내가 좋아하는 칵테일은 뭘까?>


팀원들도 바에 가본 건 처음이라 사장님에게 기본적인 걸로 5잔을 부탁했었는데 내가 집은 잔은 <으억!> 소리가 나왔던 극한의 단맛으로만 이름도 모른채 지금까지 기억에 새겨져있다. 

그래서인지 내가 집지 못한 다른 4가지 잔의 맛에 대한 집착 같은 궁금즘이 두고두고 남아있는 거 같다.


바에 다시 한번 가보는 도전을 해볼까 말까 했는데 슬프게도 혼놀 레벨이 아직 거기에 까진 다다르진 못했다. 아쉬움이 남은채로 꽤 시간이 흘렀고 개천절 대체휴무가 주말에 붙어 시간의 여유와 함께 마음의 여유가 공간을 비집고 찾아왔다. 그런 김에 온라인클래스를 뒤적거리던 중 홈텐딩 수업을 찾아냈다.


내가 제일 편한 장소에서  내가 좋아하는 칵테일을 찾을 수 있는 딱 알맞은 시간이 되어 줄 수 있을 거 같았다.





# 홈텐딩 클래스


수업을 결재하면 칵테일을 만드는데 필요한 기초적인 도구와 기본 잔들도 추가 주문을 할 수 있는데 난 칵테일과 관련한 건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모르니 풀세트로 주문했다.

일단 대체휴무가 껴있는 주말엔 내가 만든 칵테일을 즐겨야하니 그 전까지 강의를 독파하고 재료들을 사야한다고 생각했는데 강의가 무려 40개나 되었다. ㅎㄷㄷ 


1강의당 10~15분 남짓 짧았지만 짧은 동영상은 짧은 동영상대로 문제가 있다. 다음 강의로 바뀔때마다 새로운 집중력을 필요로하기 때문이다.


40개를 다 보는 건 고통이라고 판단했고 도구사용법 기초 부분과 제일 베이스로 많이 쓰인다는 보드카 베이스 칵테일 파트만 들었다.


평소 술을 많이 먹는 편은 아니라 주말에 한 잔 정도만 먹을 건데 보드카는 베이스니 필수라 쳐도 단순 섞는 용도로 쓰이는 한병에 거의 2만원가까이 하는 리큐어들을 종류별로 구입하기는 부담스러웠다. 강의와 블로그 검색을 통해 느낌적인 느낌으로 내가 좋아할 거 같은 보드카베이스 칵테일을 몇 개 골랐고 거기에 맞는 재료들만 일단 구입하기로 했다.





# 술 사기


술은 대형마트에 판다고 하는데 내가 사는 곳은 대형마트랑 거리가 있어 귀찮다고 느껴질 무렵 와인앤모어라는 캐쥬얼 주류판매점이 퇴근길에 있는 걸 알게 되었다.

홈텐딩 수업을 듣기 전엔 있는 줄도 몰랐던 가게가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와인을 주로 판매한다니까 무슨 고급식당처럼 정장입은 사람들이 드나드는곳 아닌가 걱정하며 괜히 혼자 쭈뼛쭈뼛 들어갔는데 내가 사야할 보드카나 리큐르들이 있는 위스키 판매대 근처에는 학생처럼 보이는 젊은이들이 바글바글 모여있었다.

구경도 좀 해보려고 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사기로 한 술들만 빠르게 찾고 뛰쳐나왔다.


내가 구입한 술은 <스미노프 레드 보드카>, <디카이퍼 트리플섹>, 커피리큐르 <깔루아> 이렇게 3병을 샀다.


보드카 베이스 칵테일을 만들거니까 보드카는 당연 필수! 디카이퍼 트리플섹은 <코스모폴리탄>을 만드는데 필요했고 깔루아는 <블랙러시안>을 만드는데 필요했다.


술 외에는 라임쥬스,자몽쥬스,크랜베리쥬스,오렌지쥬스, 탄산수, 진저에일을 추가적으로 더 샀다. 다행히 배민 비마트에 대부분 있어서 발품 팔아 편의점들을 돌아다닐 필요는 없었다. 라임쥬스랑 온더락 얼음틀만 쿠팡으로 배송시켰다. 


재료를 다 모으고 대망의 주말이 왔다.




# 개천절을 술의 날로 보내며...


강의도 듣고(일부만) 필요한 재료도 다 구입했다.

대망의 개천절이 왔고 칵테일을 하나씩 만들어 마셔보았다.



◼ 블랙러시안


온더락잔에 큰 얼음을 넣고 보드카 45ml에 깔루아 30ml를 넣고 한번저어준다.

비쥬얼이 그럴듯하다. 부푼 꿈을 안고 한모금! 


<으억!>


찾았다! 4년전에 퇴사기념으로 찾았던 바에서 경험한 짜릿한 극한의 단맛!

내가 그때 먹었던 건 블랙러시안이었던 거 같다.


‘이건 나랑 안맞아...’


하지만 이미 27000원 짜리 커피리큐르인 깔루아를 한병 샀다.

오직 블랙러시안을 만들기 위해서 산 거란 말이다.

다시 한번 시도 해 본다.


<으억!#@!>


보드카 때문에 그럴수도 있어. 깔루아만 따로 마셔볼까? 


<응.. 안돼..> 


미각을 지키려는 나와 합리적 소비를 추구하는 내가 치열하게 내적갈등하며 어떻게든 깔루아를 처리할 방법을 고민했지만 답이 없었다.


이미 깐 술이라 누구에게 중고로 팔지도 못한, 딱 30ml 사용한 이 깔루아는 이미 혼잡도 MAX인 내 방의 또다른 인테리어 장식으로 직행했다.





◼ 코스모폴리탄


코스모폴리탄은 쉐이킹이 필요하다. 나도 이제 집에서 쉐이킹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쉐이커에 얼음을 가득 담고 보드카 45ml+ 트리플섹 15ml + 라임쥬스 15ml + 크랜베리쥬스 20ml를 넣고 강의에서 가르쳐준대로 쉐이킹을 한다. 

그 담엔 마티니글라스에 따르면 되는데 딱 한 잔이 나온다. 거기에 레몬슬라이스를 띄우면 좋지만 레몬을 자르는 건 너무 귀찮기 때문에 일단 패스.

잔에 담으니 영롱한 분홍빛이 너무 예쁘다.

맛도 괜찮다. 아마 직전에 먹었던 블랙러시안 반대 효과 때문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내가 칵테일이라 하면 떠오르는 맛이랑 꽤나 비슷하다. 음~ 만족스럽다♡




◼ 보드카 + 쥬스나 음료 조합 칵테일

이번에 사온 리큐르로는 블랙러시안이랑 코스모폴리탄 밖에 못 만들기 때문에 다음으로는 보드카와 주스 조합으로 만들 수 있는 칵테일들을 만들어 보았다.



1. 모스크뮬

하이볼 잔에 얼음 가득 + 보드카 45ml + 라임쥬스 15ml + 진저에일 가득 채우기

진저에일은 캐나다드라이를 샀는데 난생처음 들어봤다. 진저에일 자체도 마셔본적이 없어서 맛이 상상도 안갔는데 이것만 마셔도 꽤 괜찮았다. 

모스크뮬은 깔끔하고 적절한 닷맛과 탄산이 잘 어울려져서 피자나 치킨이랑 같이 먹으면 좋을 것 같았다.


2. 스크루 드라이버

하이볼잔에 얼음을 가득채우고 보드카 45ml에 오렌지쥬스를 가득 채우면 끝!

넘 간단한데 넘 맛있다. 시원한 오렌지쥬스맛이라 꿀꺽꿀꺽 한잔 다 먹고 나니 조금 뒤에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했고 곧 어금니에서 심장이 뛰는 게 느껴졌다. ㅎㄷㄷ

밖에서 먹을 땐 정신 똑바로 차리고 먹어야할거같다.


3. 케이프코드

스크루 드라이버에서 오렌지주스를 크랜베리 주스로 바꾸면 케이프 코드다.

이것도 맛있다 ♡


4. 시브리즈 

하이볼 잔에 얼음가득 + 크랜베리주스 90ml + 자몽주스 15ml

자몽주스 맛이 생각보다 새콤한 자아가 강했다.


5. 마드라스

하이볼 잔에 얼음가득 + 보드카 45ml + 오렌지주스 60ml + 크랜베리주스 60ml

맛잇다 맛있어!! ♡♡♡




# 일요일을 술의 날로 보내고...

7잔의 칵테일을 만들고 나니 스미노프레드 보드카 병이 반으로 줄었다. 심장 뛰는 소리가 가만히 있어도 귀를 쿵쿵 울리고 거울 속의 나는 색 보정을 잘못한 사진처럼 현실감없게 시뻘겋지만 재밌고 뿌듯했다. 소주 반 병정도 주량의 알·쓰가 보드카 반 병을 먹은 것이다!


nn년 만에 알게 된 내 칵테일 취향은 오렌지 주스였다. 크랜베리까지는 통과!

하지만 라임, 자몽이 들어간 건 좀 시큼하다. 블랙러시안은 최대 불호!!!

가끔씩 스스로랑 연애라도 하는 것처럼 취향을 하나씩 알아나가는 게 신기하고 재미나다. 이런 게 혼자 노는 묘미인듯 싶다.


다음에 또 술의 날을 보낼 때는 깔루아 사느라 못 샀던 복숭아맛이 난다는 피치트리 리큐르를 구입해서 그 유명한 <섹스온더비치>도 도전해 보려한다. 


하지만 내 머릿속 경제컨트롤타워가 2만7천원 짜리 깔루아와 2만2천원 짜리 트리플섹이 각각 30ml만 사용되고 침대 위에 무용하게 인테리어 되고 있음에 경고신호를 보내고 있다.


피치트리 리큐르 구입은 이번 달은 패스하고 다음달 보복소비 리스트에 살포시 적어놓기로 했다.




tip)

1. 홈텐딩 온라인 클래스 : 21만원

2. 클래스 조주기능사 세트 6종(쉐이커, 바스푼, 지거, 스트레이너, 믹싱틴, 믹싱 글라스) : 3만원

3. 클래스 칵테일 잔 3개 : 22,000원 ( 하이볼글라스 6,600원+ 온더락 글라스6,300원+마티니 글라스 9,100원 )

4. 왕얼음틀(5cm*5cm*5cm) 8구 : 8,300원

5. 술 : 

보드카 (스미노프 레드) : 24,900원

디카이퍼 트리플섹 : 22,000원

깔루아 : 27,800원

6. 음료 : 

랭거스 크랜베리 449ml : 2,890원

아침에쥬스 오렌지 950ml : 3,390원

오션스프레이 자몽주스 1.5l : 6,590원

캐나다 드라이 진저에일 250ml : 990원

레이지 라임주스 200ml : 26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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