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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밤 Feb 27. 2022

혼자노는기록 #32 템플스테이 다녀오기



혼자노는기록 #32 템플스테이 다녀오기



덜컹덜컹 전철 소음, 웅성거리는 대화소리.

경의중앙선에 몸을 싣고 운길산역을 지나자

금요일 2시의 햇빛이 창 밖으로 보이는 북한강에 부서져 반짝이고 있었다.


용문사로 템플스테이를 위해 떠나는 중이었다.


날선 신경에 내가 다 베일 것만 같은 상태였다.

쉬는 시간조차 쉼을 누리지 못하고 쉬는 시간이 줄어드는 걸

카운트다운하며 안절부절 못해 하고 있었다.


근래에 물에 씻은 솜사탕 같은 월급에 새삼스레 초조해져

요즘 대세인 n잡러에합류하고 싶어 몸부림쳤다.

그 과정에서 한 달 가까이 주말없이 일을 하게 되었고 곧바로 번아웃에 빠지고 말았다.

도대체 여유로워지는 날이 오긴 할까?


정신적 요양이 필요해 템플스테이를 하러 떠났다.


용문역에 내려 버스를 기다릴까하다 2시간에 달하는 긴 전철 여행길 여파로

급격하게 기운이 떨어져 택시를 잡았다.

용문산 매표소에 내려 5분 정도만 걸으면 용문사 일주문이 나온다.

(매표소에 템플스테이 예약시 사찰에서 보내준 문자를 보여주면 무료통과다.)


일주문은 속세와 불계의 경계 역할을 하는 문으로

그곳을 지나면 좋든싫든 부처님의 세계에 발을 딛게 된다.

입국심사도 없이 다른 세계로 떠날 수 있다니, 정말 멋진 의식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초조하게 만드는 속세를 뒤로하고 일주문을 지났다.


일주문을 지나고 템플스테이숙소까지는 또 20여분의 오르막길을 걸어야 한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체력이 방전되어 짐을 풀지도 않고 대자로 뻗었지만

따끈한 방바닥에 어느새 노곤노곤 눈이감겼다.


저녁에는 공양을 먹고 난생처음 예불에도 참여해

익숙치 않은 세계의 규칙들을 몸에 새기며 나를 지치게 하는 것들을 조금씩 내 안에서 밀어냈다.


그 후 7시즈음에는 스님께서 직접 모닥불을 피워 고구마를 구워주셨다.

따끈한 차와 함께 고구마가 구워질때까지 불멍을 하며 가벼운 담소시간을 가졌다.


"한곳을 바라보고 잡념을 없애는 것은 수행입니다. 그런 점에서 불멍은 수행과 비슷합니다"


<과연...>


스님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며

모닥불이 내는 타닥타닥 소리에 더욱 집중했다.

산 속을 덮은 어둠이 이불같이 아늑했고 머릿속을 항상 채우고 있는 모든것들이

고구마가 구워질 때까지만이라도 차단되길 바라며 멍을 때렸다.





다음 날 새벽, 도량석 의식을 행하시는 스님의 목탁소리가

사찰 안에 맑게 울려 퍼지며 하루가 시작됐다.

새벽예불에 참여하려고 3시50분에 일어나 숙소 밖 깜깜한 하늘과 고요함에 귀기울이다가

들은 그 소리는 특별하다는 말로 부족하다.


새벽 예불을 마치고 용문사 내의 천년의 세월을 간직한 거대한 은행나무를 오래토록 쳐다보았다.

다른 세계에라도 온 듯 신비로운 기분이 들었다.


아침공양을 먹고는 스님께서 일출을 볼수 있다고 알려주신 정지국사부도쪽으로 올라갔다.

구름이 많이 꼈지만 붉은 기운을 감추진 못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마음에 작은 불씨를 피웠다.


머문 자리를 정리하고 숙소를 나섰다.

체험후기를 쓰고 작년에 스님께서 거두셨다는 은행열매가 담긴 복주머니를 받았다.

부적처럼 품고 어제와는 다른 방향으로 활짝 펴진 어깨를 들썩이며 일주문을 지났다.


버스를 타러 정류장에 가는데 1인 식사도 된다는 식당 사장님의 반가운 호객멘트가 귀에 꽂혔다.


냉큼 몸을 맡기고 맥주 1병과 해물파전을 시켰다.

시원한 맥주 한 모금 크게 입에 담고 목구멍을 넘기자 익숙한 속세의 맛에 감탄이 나왔다.


<속세도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아!>


다시 속세 속에서 살아갈 의지를 다지며 야무지게 배를 가득 채웠다.




TIP]

- 용문사 템플스테이 1인 1박 : 7만원

- 용문역 -> 용문사 매표소 입구 : 12,000원

- 용문산 첫 번째 식당 : 해물파전-15,000원 / 맥주 1병 - 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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