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노는기록 #39 , 자몽청 만들기
6월이다. 해가 눈에 띄게 길어졌다.
옷장정리를 아무리 미뤄도 여름이 왔다는 걸 더는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올해의 여름맞이 준비는 탄산수를 냉장고에 가득 채우고
자몽청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했다.
뜨거운 습도가 만들어내는 특유의 후덥지근함은 맹물의 부드러운 목넘김으론 어림도없기 때문이다.
자몽 4개를 속껍질까지 모두 까 알맹이만 남긴 채 같은 무게의 설탕과 충분히 섞은 다음
유리병에 담는다. 반나절만 그대로 상온에 두면 자몽청 완성이다.
이토록 간단한 자몽청 만들기에도 보람을 느끼는 건 소소하지만 가까운 미래를 스스로 챙겨서다.
어릴땐 먼 미래는 따분한 오늘을 벗어날 터널 밖의 햇빛같은 존재였는데
요즈음의 먼 미래는 조금은 무섭고 회피하고 싶은 대상이 되었다.
저절로 찾아올 거라 기대했던 것들 중 많은 부분은 오늘의 나에게 달려있다는 걸 알기에,
그 무거운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짐작해본다.
대신 가까운 미래를 챙기며 제법 빠르게 돌아오는 보상에 뿌듯함을 쌓아가는 재미를 알게 됐으니
또 마냥 손해만은 아니다.
확실한 준비와 확실한 보상..
시간이 지날수록 둘 중 어느 것 하나 확신을 품지 못한채 어영부영 하루를 보내는 날이 많다.
퇴근 후 달궈진 아스팔트를 뚫고 헐레벌떡 들어와 자몽청을 한 스푼 섞은 차가운 탄산수를 들이키면
나의 작은 준비가 확실했다는 점에서 으쓱해지고 보상 또한 완벽하다는 점에서 자신감을 얻는다.
6월 초치고 제법 더웠던 저녁 ,
자몽에이드 한 잔에 한시름 크게 놓고 다시 내일을 준비한다.
Tip)
1.자몽 4개 : 7,000원
2.백설탕 1kg : 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