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소꿉놀이> : 결혼생활의 민낯을 보다.

by 이봄





김수빈 감독의 다큐 <소꿉놀이>

100% 자전적인 이야기이다.



꽃다운 나이 스물셋.

한참 연애하고, 공부하고, 꿈을 키울

파릇파릇한 청춘의 도입부에서

그녀는 덜컥 혼전임신을 하게 된다.


이제 삶은 전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그녀가 미처 알 수 없었던 상황 속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갑자기 결혼을 하게 되고,

자기 집을 떠나 시댁살이를 하게 되고,

학교를 휴학하고, 출산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아이를 키우고,

아이를 키우고

....



학업을 포기할 수 없어

애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수업이 끝나면 찾아와서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졸린 눈을 비비며 과제를 하고,

이유식을 만들고,

생계를 위해 번역 아르바이트를 하고,

빨래도 개야하고, 청소도 해야 하는데

이걸 다 어떻게 해....



수빈은 눈물이 난다.

보는 나도 코끝이 찡해지고...

그렇게 화면을 사이에 두고

그녀와 나는 함께 울었다.




감독 겸 주연 김수빈




드레스 입고 결혼할 때만 해도 좋았지...

이렇게 예뻤지...







스물셋이나 서른셋이나 마흔셋이나

어쩜 육아는 여자의 모습을

이렇게나 획일적으로 똑같이 만들어버리는지

...

사진 속의 수빈의 옷차림, 민낯에 안경,

표정까지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나와 똑같다.



나는 엄마이고, 아내이고, 며느리이지만

그래도 내 꿈이 있는데

무엇보다 나, 김수빈이고 싶은데

그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 돼버리다니....



뮤지컬 배우인 남편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불안정한 프리랜서 직업 대신

안정적인 직업을 찾아야겠다며

일식 요리사가 되겠다고 한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요리를 새롭게 배우는

과정이 쉬울 리가 있는가.

게다가 자기 꿈을 버리고 시작한 일이니

그 마음은 또 오죽할까...



그런데 이 남자.

일식을 제대로 배우겠다며

일본 유학을 가겠단다.

그래, 그래, 무슨 뜻인지 잘 알겠고

그대에게도 쉽지 않은 길이라는 걸

너무나 이해하지만

남겨진 처자는 어쩌란 말인가?!







그 어떤 육아 예능보다 생생하고

리얼하며 정치적이다.

삶의 보편적 과정으로서의 육아가

남자와 여자의 삶을 어떤 식으로

바꾸어나가는지 객관적으로 보게 만들며

육아와 결혼생활의 메커니즘을

정확하게 포착해낸다.



부모 양쪽의 전적인 헌신을 요구하는

아이의 존재는

부부를 서로에게만 집중하던 로맨틱한

상황에서 거칠게 밀어낸다.

충격적인 것은 이런 과정이 닥치기 전까지는

상상이 어렵다는 것이다.

연애할 때는 서로의 꿈을 격려하고 응원했지만

이제는 대놓고 말할 수는 없지만

상대의 꿈이 부담스럽다.



남편은 생계부양자의 역할을 맡아

돈을 벌기 위해 꿈을 포기하고 직업을

바꾸었고, 살림과 육아에 치어

학업과 커리어를 병행하기가 벅찬 아내가

자기 자신이 사라지고 있다며 우는 걸

받아줄 여유가 없다.



애인이 아프면 걱정이 되지만

남편이나 아내가 아프면 걱정도 되지만

동시에 짜증이 난다.

비록 잠시일지라도 상대방을 돌봐야 하는

역할까지 감당할 힘이 없는 데다,

상대가 앓아누워있는 동안 그가 해야 하는

노동이 자기 몫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힘든데 말이다.

부부는 연인에서 육아공동체의 두 주체로

탈바꿈한다.



재밌게도 그녀는 2011년에 출산을 했는데

내가 딸을 출산한 해와 같아서

그녀의 딸과 내 딸은 동갑이다.

그녀와 내가 띠 동갑을 넘어선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같은 시기에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것에

나는 묘한 기분을 느낀다.



기성세대는 요즘 젊은이들이 유약하고

책임감이 없다는 식으로 말하곤 하는데

이 다큐 속에서 내가 만난 두 청년들은

자기 선택에 최선을 다하고

그 누구보다 책임감 있는 어른의 모습이었다.



취준생이라는 획일화된 모습으로 그려지는

이 또래 젊은이들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신선하다.



이 다큐에는 친정엄마와 시어머니의

인터뷰가 많이 등장하는데

두 분 모두 자기 자식 중심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부부가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하며,

적절한 도움만 주고

불필요한 간섭을 하지 않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결혼 한 자녀를 둔 부모들이 지향해야 할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임신부터 결혼과 출산을 거쳐

남편이 유학을 떠나고

아이와 둘이 남은 현재까지

4년의 기간을 97분의 러닝 타임에

짜임새 있게 담아냈다.



다큐로서의 완성도도 무척 높다.

감각적이고 센스 있는 편집으로

강도 높은 육아 전쟁의 현실을

신파조로 몰아가지 않는다.







적절한 애니메이션과 자료 화면을

곁들여서 인물들의 내적 상태에 대한

이해를 풍부하게 만든다.

젊은 감독의 위트와 재치가 돋보인다.



그 긴 시간 동안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자 영상으로 기록하고,

마침내는 한 편의 다큐로 완성해 낸

김수빈 감독의 강한 의지에

마음에서 우러나온 찬사와 큰 박수를 보낸다.



어쨌거나 김수빈 감독은 복 받은 사람이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었지만

이해심 많은 가족들의 지지와 응원 속에서

무엇보다 사랑 속에서

이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매우 예민하고 사적인 순간에 조차

(예를 들어 격렬한 부부싸움의 순간)

잊지 않고 카메라를 돌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역시 예술가란 이런 존재인가 싶다.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아이 키우는 부부에게 강력히 추천한다.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와 연인들은

반드시 봐야 한다.

나이 드신 분들은 젊은 부부를

이해하기 위해 보면 좋다.

김수빈 감독의 차기작을 기대하며

적극 추천한다.




by 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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