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 이 비극은 끝나야 한다.

by 이봄




늦은 밤, 혼자 이 영화를 보고

잠자리에 누웠으나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순진무구한 얼굴로 깊은 잠에 빠져있는

아이를 바라보는데

가슴이 찡 해지며 절로 기도가 흘러나왔다.

아이를 잃고 고통에 빠져있는

세상의 모든 여자들을 위한 기도

....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는 보모에게 유괴된

아이를 찾는 엄마의 피 말리는 추적기를 다룬

미스터리 장르물이다.

그러나 이야기가 착한 주인공이

여러 난제를 해결하며

마침내 범죄자의 손에서 딸을 구해낸다는

장르적 컨벤션에 머무르지 않고

딸을 찾는 과정이 납치범인 보모의 뼈아픈 사연을

드러내는 과정이 되게 함으로써

관객이 미워해야 할 가해자에게

감정 이입하게 만들며

가해자를 피해자와 동일선상에 두고 보게 만든다.

그렇게 하여 관객의 시선을 두 여자가 놓여있는

외적 환경으로 옮겨놓는데, 이게 마치

'이 모든 비극의 진짜 가해자는 누구인가?'

하고 묻는 것만 같았다.





보모 한매 (공효진)와 지선 (엄지원)




생각할수록 희한한 일이다.

여자가 남편과 살고 있을 때에는

애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고 하면서

왜 이혼을 하려고 하면 친권과 양육권은

아버지가 갖는 게 맞다고 하는 걸까?



전 남편과 양육권 소송 중에 있는 지선의 삶은

너무나 고달프다.

이제 막 돌 지난, 아직 걷지도 못하는 딸을

보모 한매에게 맡겨두고,

애 엄마라 일을 제대로 못한다는 욕을 처먹으며

돈을 벌어 소송비와 보모 급여, 생활비를

감당해야 한다.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는데 법은 쉽사리

지선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

야근을 밥먹듯이 해야 하는 드라마 제작사에서

일하는 탓에 어린 딸을 제대로 볼 시간도 없이

그녀는 숨 가쁘고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 이 가엾은 여자가 믿고 의지하던 보모에게

아이를 납치당한 것이다.



이 일이 양육권 소송 때문에 벌인

자작극으로 의심받자 지선은 직접

보모 한매와 딸을 찾아 나선다.





지선 (엄지원)




그런데 사라진 한매에게 다가갈수록

지선과 관객이 알게 되는 건

외국인 아내로서, 한 아이의 엄마로서

한매가 겪은 끔찍한 고통의 실체이다.

지선이 겪고 있는 고통을 압도해버리는

한매의 비극 앞에서 그저 같이

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더라...



외국인 아내로 한국살이를 시작한 한매

시어머니와 남편에게 심한 학대를 당했고

그런 중에 딸아이를 출산했는데

아이가 난치병에 걸린 것이다.

비정한 시모와 남편은 아이가 여아라는 이유로

치료를 거부하고, 자식을 살리고 싶었던 한매는

딸을 데리고 야반도주를 한다.

그런데 아이를 입원시키고 보니

한국의 법은 그녀가 엄마 노릇을 할 수 없게 한다.

한국인 친부의 동의 없이는 수술도 입원도

불가능한 것이다.

아이의 치료비를 마련코자 몸을 팔아 모은 돈을

애 아빠에게 쥐어주며 어렵게 수술 동의를

받고 나서 치료비가 다급해진 한매는

자신의 장기를 판다.

그러나 장기를 판 대금을 받기로 한 날,

돈을 갖다 주기로 한 사람은 늦고,

병원 측은 조금도 기다려주지 않고

가차 없이 한매와 어린 딸을 내쫓아버린다.

결국 한매는 차가운 길바닥에서

딸의 죽음을 맞이한다.



한매가 아이를 잃고 울부짖는 장면이

떠올라 절로 눈물이 난다.

이 영화는 한매와 지선을 통해

살아서 지옥을 경험한다는 것이

정말 어떤 건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한매 (공효진)




한매와 그녀의 딸이 매몰차게 쫓겨난

그 자리에 지선의 딸이 입원한다.

지선의 전 남편이 같은 병원 의사인데

딸이 아픈 줄도 모르고 내연녀랑 뒹굴다가

뒤늦게 나타나 급하게 병실을 마련하느라

무리해서 한매와 그녀의 딸을 쫓아낸 것이다.

한매와 지선의 악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마침내 지선은 한매를 찾아낸다.

한매는 지선의 딸을 자기 딸로 키우려고 했나 보다.

아이를 데리고 중국으로 가는 배에 올랐다가

지선과 경찰 일행에게 붙잡힌다.

한매는 지선의 딸과 바다에 투신하려고 하지만

자신이 친딸처럼 키운 아이를

차마 죽음으로 끌고 갈 수는 없다.

아이를 돌려주고 더 이상 살 희망이 없어진

그녀는 바다로 투신한다.









놀랍게도 지선은 그런 한매를 살리고자

바다로 뛰어드는데

딸을 찾는 과정에서 알게 된 한매의 아픔과

절망에 깊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누가 한매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지선이 내민 손을 뿌리치고

더 깊은 바닷속으로 빠져드는 한매

....



지선은 드디어 딸을 만난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걷지 못했던 아이가

일어서서 엄마에게 걸어온다.

감격스러운 장면이다.



그런데 지선은 양육권을 지킬 수 있을까?

영화는 지선과 딸의 감동적인 만남의 순간에

막을 내리지만 앞으로 지선이 맞닥뜨릴 현실은

전혀 녹록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신분도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보모를 고용해서 아이를 위험에 빠뜨린 데다

양육권을 갖는다고 해도

일하느라 바빠서 아이를 하루 종일 남의 손에

맡겨야 하는 현실은 달라지지 않을 테니까.

아버지도 바쁘긴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누가 그러더라,

"그러니까 여자는 남자를 잘 만나야 한다고."

지선과 한매가 자식을 지키기 위해 겪은 고난이

남자 보는 눈이 없는 그들이 자초한 것이라는

말로 들린다면 내가 과민한 걸까?

그게 아니라 결혼운이 나빴다는 걸 뜻한다 해도

이게 그저 팔자 탓으로만 돌릴 수 있는 일일까?



지선과 한매가 겪은 비극은

그들 개인의 어리석음과 불운 탓이 아니다.

지선이 유급 육아휴직을 쓸 수만 있었어도,

법이 아버지가 양육권을 갖는 게 유리하도록

되어있지 않았다면,

그녀는 그렇게 어린 딸을 보모에게 맡기고

일터로 나가진 않았을 것이다.

법이 외국인 엄마를 아이의 보호자로

당연히 인정해주었다면,

또 병원이 돈 없는 사람들도 인도적인 차원에서

먼저 치료부터 해주는 사회제도적 여건만

갖춰져 있었어도 한매는 그렇게

비참한 방식으로 아이를 잃지 않았을 것이다.



언제까지 여자와 자식의 운명이

남편이자 아버지인 남자 개인의 도덕성과 양심에

좌우되어야 하나?



영화는 끝났지만

영화가 묘사한 현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오늘도 이곳저곳에서

다른 이름의 지선과 한매가 같은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이 여자들의 이야기는 이제 정말로

막을 내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우리가

무력한 관객으로 남아서는 안될 것이다.




<미씽: 사라진 여인>

강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무엇보다 재미있다.

시작부터 끝까지 눈을 뗄 수가 없다.

지선과 한매 역을 맡은 엄지원, 공효진,

두 배우의 연기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이 보다 더 잘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완벽하다.




by 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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