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리도 사랑일까?> : 권태의 이유

by 이봄




권태롭다는 것 빼고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결혼생활을 하는

주인공 마고

착하고 다정한 남편 와 매력적인 이웃 남자

대니얼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낸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

'관계가 오래되었다는 것이 정말로

권태의 근본적인 원인일까?'

질문하게 만든다.




남편 루 (세스 로건)과 마고 (미셸 윌리엄스)




‘권태’는 사랑을 의심하게 한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지만

진짜 내게 어울리는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관계를 개선시키려는 의지를 갖기보단

밖에서 새로운 자극이 찾아오길

무의식적으로 기대한다.



주인공 마고는 딱 이와 같은

권태의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28살에 결혼 5년 차인 마고는

매일 사랑을 고백하는 장난기 많은 남편과

잘 지내고 있지만 설렘을 느끼진 못한다.

예쁜 집에 살면서 경제적 어려움도 없는 그녀는

시댁 식구들과도 사이가 좋고

특히 손위 시누이랑은 친구처럼 지낸다.

그런데 이처럼 안정된 생활이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것이다.



그녀는 남편에게 이 아이러니한 불안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자신을 불안하게 하는 그 안정됨이

남편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으며

따라서 이해할 리가 없어 보이고

또 이야기한들 그래서 뭘 어쩌고 싶은 건지

자기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이웃집 남자 대니얼이 다가온다.

아주 매력적으로.

남편의 눈을 피해 대니얼과 썸을 타는 마고.

......




마고 (미셸 윌리엄스)




내게 이 영화는 ‘권태’에 관한 것이었지만

나보다 더 젊은 사람들,

주인공 마고와 같은 20대들에겐

‘변화’에 관한 것으로 읽히지 않을까 싶다.

‘사랑은 어째서 변하는 걸까?’,

같은 질문을 떠올리게 하면서.



20대에게 권태는 견디기 힘든 감정이다.

현재의 상황이 어떻든지 간에

아직은 저 앞에 인생의 많은 창들이

나를 향해 열려 있을 거 같고,

어떤 모험을 감행해야 할 것만 같고,

운명적인 사건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막연하지만 충동하는 느낌...

그게 젊음의 느낌 아닌가.


돌이켜보니 나도 그랬던 거 같다.

항상 뭔지 모를 어떤 기대가 있었고,

날마다 어제와는 다른 날이 펼쳐지길 소망하며,

하루하루 다른 색을 입히려 노력했던

그런 나날들....



이런 생각을 하면

20대의 끝에 선 마고가

뚜렷한 방향도 없이 똑같은 모양으로

반복되는 일상에 불안을 느끼는 걸

이해할 수 있다.



다만, 그 같은 변화에 대한 열망과

모험에 대한 갈망을

왜 꼭 '연애'를 통해 채우려고 하는지

안타까웠다.




마고와 대니얼 (루크 커비)




마고는 남편 루에게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계속해서 대니얼을 만난다.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기획하고,

자신이 아니라 대니얼이 자기를

유혹하고 있는 것처럼 포장하지만

그가 자기 주변을 맴돌 수밖에 없도록

미끼를 던지는 건 마고 자신이다.



연애 초반에만 느낄 수 있는 밀당의 짜릿함,

비밀스러운 만남에서 비롯되는 스릴,

단조로운 일상에 펼쳐지는 숨 막히는

삼각관계의 드라마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즐긴다.



마고는 대니얼을 자신과 남편 사이에 끼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만들고

그걸 의식하고 견디기 힘들어진 대니얼은

마침내 이사를 간다.

그제야 마고는 대니얼을 선택한다.



유감스럽게도 영화는

대니얼과 함께 하는 마고의 삶이

전 남편 루와 살았을 때와 별 다를 바 없이

권태로워진 상황을 보여준다.

.....


마고는 다시 새로운 연애를 해야 할까?







마고가 결혼생활에 권태를 느끼고

새 남자 친구를 만나 떠나게 되는 동안

남편인 루는 한결 같이 그녀를 사랑한다.

똑같은 결혼생활에

한 사람은 권태를 느끼는데

상대방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저 성격차이일까?



마고는 프리랜서 작가로

관광지 홍보 기사 같은 청탁받은 글을

쓰고 있지만

그 일에 흥미나 자부심을 갖고 있지 않다.

그녀는 이미 작가인데도

글 쓰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글을 쓰고 싶다는 뜻인데

정작 쓰지는 않는다.



그런데 마고가 대니얼을 만나고 다니는 동안

남편 루는 닭 요리 레시피를 개발한다.

닭이라는 한 가지 재료로

얼마나 다양한 요리를 만들 수 있는지

끊임없이 실험하고

마침내 그것을 요리책으로 펴낸다.



루가 여러 재료를 활용한 다양한 요리의

레시피를 개발하지 않고

닭이라는 한 가지 재료로만 여러 요리를

만들었다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넘길 일이 아니다.

5년 동안 마고라는 한 여자랑 살면서

그는 날마다 그녀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새로운 시선을 찾을 수 있었고

그래서 그 사랑에 최선을 다했다.



마고에게 불안을 느끼게 한 안정된 결혼생활이

루에겐 자기가 좋아하는 일,

즉 레시피 개발에 집중할 수 있는

든든한 기반이 되어준 것이다.



아직 아이도 없고,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할 필요도 없는,

최상의 여건 속에서도

마고는 자신이 원하는 글쓰기를

전혀 시도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 눈에는 글쓰기를 미룰

아무런 핑계가 없는 상황이

그녀를 불안하게 하는 걸로 보였다.








시선을 대니얼 쪽으로 옮겨봐도

마찬가지다.



마고가 이웃에 사는 대니얼의 집에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

그녀는 집안 곳곳에 걸려있는 그림을 보고

대니얼이 화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인력거를 끄는 일로 생계를 꾸리는 그는

아직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은 없지만

자기만족을 위해 즐겁게 그림을 그린다고

이야기한다.

영화에 나오지는 않지만

그는 마고랑 같이 살게 된 후에도

꾸준히 그림을 그렸을 게 분명하다.



남편 루와의 결별 후

대니얼과의 관계도 시들해졌을 즈음

마고는 서점 진열대에서

루의 요리책을 발견한다.

그녀는 진심으로 기뻐하고 축하하지만

난 씁쓸함을 느꼈다.







영화의 도입부에 나왔던 위 사진 속

마고의 모습이 후반부에 반복된다.

옆에 선 흐릿한 뒷모습의 남자가

남편 루인 줄 알았는데

대니얼이더라...




날마다 같은 모양인 익숙해진

하루하루가 나쁜 것만은 아니며,

사실 우리들은 그러한 안정된 일상을 기반으로

새로운 미래를 모색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

마고는 분명 시행착오가 필요했는데

이러한 시행착오는 결혼 전에 겪었으면

더 좋았을 뻔했다.




23살의 나이에 결혼을 결심했을 때엔

그게 또 얼마나 대단한 모험이었을까

싶기도 하고...



아! 아!... 불꽃같은 20대는 지나갔고,

각양각색의 감정이

롤러코스터처럼 파노라마 치는

연애 초입의 감정 따윈

더 이상 겪고 싶지도 않고,

‘권태’를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는 나에게

주인공 마고는 딱한 여동생쯤으로 느껴지더라.

곁에 있었으면 오지랖 좀 떨어가며 충고했겠지만

그러한 충고는 20대에게 절대 먹히지 않는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어떤 것들은 유감스럽게도 반드시 직접 겪어봐야

알게 된다는 인생의 진리.







마지막 장면에서 마고는 혼자서

스크램블러를 타고 있다.

신나는 음악에 맞춰 빙빙 원을 그리며

빨리 돌아가는 자극적인 놀이기구.

대니얼과 몰래 데이트를 하던 때에

함께 즐겼던 그 스크램블러.



남자들이 자신의 일상을 좀 더 로맨틱하고

재미있게 만들어주길 바라는,

그렇게 자극과 변화를 자기 밖에서 찾는

마고의 무의식적 욕망을

너무나 이해하지만,

진정으로 인생을 즐기기 위해선

그러한 것들을 타자와의 관계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먼저 자기 내면의 부름에

응답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마고는 그것을 깨달은 것일까?



마고는 자신이 그토록 원하는

‘글쓰기’를 시작해야 한다.

권태는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

자신만의 숙제이다.




by 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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