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턴>은
30대 여성 CEO와 70대 할아버지 인턴의
세대와 지위와 젠더를 초월한
소통과 우정을 보여주는
아름답고 훈훈한 작품이다.
참으로 이상적인 인간관계를 그린
이 착한 영화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대리만족을 느끼고
각박한 현실의 고단함을 달랜 거 같던데
어째서 나는 영화를 재밌게 봤으면서도
혼자 이렇게 씁쓸한 건지...?
현실과 이상의 간극이 너무 크게
느껴진 탓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거 같다.
평범한 전업주부였던 주인공 줄스는
자기 집 부엌에서 시작한 인터넷 의류 쇼핑몰을
일 년 반 만에 200명이 넘는 직원을 둔
회사로 키워냈다.
스타트업 기업의 성공신화를 만들며
주목받는 여성 CEO가 된 줄스의 하루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간다.
이 영화에서 줄스의 가정은 일반 가정과
성역할이 완전히 뒤바뀐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그 점이 흥미롭다.
일 때문에 바빠서 가정에 소홀하게 되는 아내.
아내를 위해 기꺼이 전업주부의 역할을
맡았지만 가사와 독박 육아에 치어
점점 자신을 잃어가는 남편.
줄스의 남편 맷은 아내를 사랑하지만
바쁜 아내와는 대화다운 대화를 나눌
기회조차 만들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자신과 처지가 같은
딸의 유치원 친구 엄마와 바람이 난다.
한편 회사가 커지자 투자자들은
줄스를 대신할 전문 경영인을 영입하고자 하고
줄스는 자신이 어렵게 키운 회사를
뺏기는 게 아닌가 심란해진다.
남편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자신이 바빠서 남편이 그렇게 된 거란 생각에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CEO 자리를 포기해야 하나 고민한다.
섬세하고 세련된 감각을 지닌
유능한 사업가이지만
아직 인생 경험이 풍부하지 않은 줄스에게
이런 문제는 어렵기만 하다.
이때 70세 인턴사원인 벤이 멘토가 되어
회사를 운영했던 자신의 경험과 연륜으로
줄스를 도와주어 그녀가 회사도 지키고,
가정도 지키게 된다는 이야기다.
영화니까 이렇게 해피앤딩이다.
줄스에 따르면 남편 맷은
마케팅 분야의 떠오르는 스타였단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부부 둘 중 하나가
일을 내려놔야 하는 상황에 놓이자
그는 아내를 위해 자기가 집에 남기로 했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일을 내려놨지만 그렇다고 힘들지
않은 건 아니다.
많은 여자들이 전업주부로서 경험하는
자아상실의 고통을 여기선 남편이 느낀다.
가사와 육아가 보람되고 소중한 일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툭 까놓고 말해서
그 일의 구체적 실체는 3D 업종에 다름없다.
세탁, 설거지, 똥 기저귀 갈기, 청소...
그것의 무한반복...
어떤 부모도 자기 자식에게 자라서
가사도우미나 청소부가 되라고 독려하지
않다는 걸 생각할 때
같은 일이 내 집에서 여성인 주부가 한다는
이유로 미화되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으리라.
나와 우리 가족이 먹고 사느라
발생하는 일이 살림이니까
온 가족이 힘을 모아 함께 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고 바람직하겠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이 영화에서도 사업하느라 바쁜 줄스는
집안일을 거의 하지 않는다.
우리가 잘 아는 '그 바쁜 남편들'과 똑같이.
맷의 탈선은 분명 잘못된 일이고
전혀 두둔할 마음도 없지만
가사가 가정 내에서 그 일을 전담하는 사람의
자아에 상처를 입히는 면이 있다는 걸 증명한다.
여자 전업맘들이 맘충이라 집에서 '놀면서'
우울하네 어쩌네 앓는 소리나 하는 게
아니란 걸 보여주는 사례란 말이다.
줄스는 남편의 바람을
성공한 아내 곁에서 남성성에 위협을 느낀
남자들의 전형적인 반발로 이해하는데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맷은 다른 남자들보다 깨어있는 남자라
아내를 위해 기꺼이 자기 일을 내려놓았다.
남성성이 위협받는 게 두려웠다면
애초에 그런 결정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둘 중 더 잘 나가는 사람을
먼저 밀어주자는 차원에서 우선권을
아내에게 주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의 차례는 과연 돌아올까?
사업이 잘되면 잘 되기 때문에
어려우면 어렵기 때문에
줄스는 계속 더 바빠질 텐데?
영화는 70대 인턴사원 벤과 줄스의
환상적인 케미를 보여주는데 주력한다.
왕년에 전화번호부 회사의 부사장이었던 벤은
사업하는 줄스의 어려움을 뼛속까지
이해하는 것처럼 보인다.
줄스의 재능과 성공에 감동한 벤은
철저하게 그녀의 편에서 생각하고
그녀를 위한 조언을 하며 도움을 주는데
그게 이 영화가 갖는 미덕의 핵심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나는 벤에게 섭섭하다.
내가 같은 여자인 줄스에게 감정이입을
하지 못하고, 남편인 맷에게 동화된 탓이다.
배우자와 아이를 위해 자기 일을 내려놓은
그 사람 말이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벤은 줄스의 회사에
취업하기 위해 자기소개 동영상을 찍는다.
그는 자신이 은퇴 후에
멋진 곳으로 여행도 많이 다녔고,
온갖 취미생활을 다 해봤다고 한다.
그런데도 만족을 느끼지 못한 그는 이렇게 말한다.
" 난 그저 내 삶에 난 구멍을 채우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구멍'을 뭘로 채웠나?
'일'로 채운다.
줄스의 회사에서 자기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그는 삶의 활력을 회복한다.
내가 보기에 이 영화에서
정말로 삶에 구멍이 난 사람은
줄스의 남편 맷이다.
줄스는 맷이 원래 자기보다 잘 나갔었다고 말했다.
그런 사람이 자신이 배운 전문 지식이나 기술이
아무 쓸모없는 가사만 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엔 분명 보람과 기쁨도 있지만
자기 인생을 생각할 때 느껴지는 공허함은
어떻게 메워야 할까?
벤은 줄스에게 남편이 바람피우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에 CEO를 포기해선 안 된다며
회사를 지키고 성공적인 커리어를 누리라고
따뜻하게 충고하는데
그건 곧 남편 맷에게 계속 더 희생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만약 줄스가 여자가 아닌 남자였다면?
그리고 집에 있는 남편 맷이 여자라면?
즉 우리에게 익숙한 보편적인 가정 모델이라면
벤의 충고는
사업하는 남편을 위해서 아내인 네가 희생하고
참고 살으라는 뜻이 된다.
벤은 왜 줄스의 입장만 이해하는 걸까?
마음의 구멍을 느껴본 사람이
어째서 맷의 구멍엔 공감하지 못하는 걸까?
배우자 한쪽의 희생을 담보로 유지되는
결혼생활은 결코 원만하게 지속될 수 없다.
여자가 유리천정을 깨고
사회적 성공을 거두는 모습은 멋지고, 부럽고,
나도 그렇게 하고 싶지만
줄스와 맷처럼 사는 것이
곧 남녀평등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 역사 속에서 수많은 여자들을
고통스럽게 했던 희생자의 자리에
남자가 앉는다고 해서
성평등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나?
나는 줄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맷이 바람피우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이 아니라
그의 인생을 존중하기 위해서
당신도 내려놓아야 할 것이 있다고.
더 늦기 전에 남편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고.
그가 당신을 위해 희생했으니
당신도 더 늦기 전에 그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맷의 경력단절 기간이 길어질수록
그의 재취업은 요원 해질 테니까...
조금 느리게 가더라도
맷과 함께 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하라고...
영화에서 맷은 CEO를 영입하려는
줄스에게 울며 사과하고,
자기 때문에 회사를 포기하지 말라고 하지만
그야말로 영화다운 결론이다.
그는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까?
스스로는 알까?
남편 맷이 계속 집에 남아서 내조하는 걸로
미봉된 결론은 나를 불편하게 한다.
전업주부인 여자들 중 많은 수가
맷과 같이 자기 일을 포기하고
가정에 남으니까.
일전에 유치원 학부모 모임에서 만난
한 엄마의 씁쓸한 읊조림이 떠오른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공부는 왜 했나 몰라...'
공대 출신이라고 자기를 소개한 그녀는
아이 뒤만 쫓아다니는 자신의 삶이
조금 답답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남편이 돈을 잘 벌어와서
힘들게 일하지 않고 편하게 쓰면서 살면
좋지 않냐고 하더라.
그런데
사업에 성공한 줄스가 돈을 많이 벌어와서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가고,
해마다 고급 휴양지로 휴가를 떠나고,
휴양지에서 조차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계속 통화를 해야 하는 아내를 쳐다보며
살아야 하는 게 유감이긴 하지만
줄스가 벌어온 돈으로 명품을 휘감고 다니고
딸아이를 명문 사립학교에 입학시키고
아이비리그 대학에 들여보내면
그는 그것으로 자신의 일을 포기한 게
다 보상이 될까?
....
영화는 벤을 통해
이상적인 노인의 모습을 제시하며
세대간의 소통에 대한 바람직한 본보기를
제시하는데 성공하지만
그 과정에서 뜻밖에 결혼생활의 딜레마를
건드리고 말았다.
이 영화의 해피앤딩이 주인공인
CEO 줄스와 인턴인 벤에 의해 완성되지 않고
남편 맷의 뉘우침과
앞으로도 계속될 희생에 대한 약속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그런 맥락에서 난 이 영화가
몹시 가부장적이라고 느낀다.
BY 이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