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영화라고 할 만한 영화를 만났다.
단 한 장면도 놓칠 수 없어
눈알이 빠질 듯이 쳐다보았고,
보는 내내 미친 듯이 공감했으며,
영화가 끝나고 나서는 얼이 빠진 듯 전율하였다.
결혼한 사람들이라면
대체로 공감할만한 내용이지만
여자 주인공인 에이프릴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엇갈리는 듯하다.
이 영화는 '부부'가 주인공이지만
갈등의 원인 제공자인 아내 에이프릴에
초점을 맞출 때
보다 폭넓은 이해가 가능하지 않나 생각한다.
아무 문제가 없는데 문제가 있는 삶.
이렇게 표현하면 어떤 사람은 크게 공감할 것이고,
다른 사람은 이게 다 무슨 헛소리냐고 할 것이다.
프랭크와 에이프릴 부부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문제가 있는 삶을 살고 있다.
도시 중산층으로서 자신과 같은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깨끗하고 예쁜 동네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도 가장 좋은 집에
살고 있다.
토끼같이 사랑스러운 두 아이.
맨해튼에 직장을 가지고
평범하고 안정된 일상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 바로 이 '평범함'이 문제인 것이다.
결혼 전 이들은 서로의 특별함에 빠져들었다.
배우를 꿈꾸며 연기수업을 받던 에이프릴에게선
또래의 다른 여자들에게서 보기 힘든 자유로움과
개성이 넘쳤고,
또 그런 타입의 여자에게 매력을 느끼고
'인생의 매 순간을 제대로 느끼며 살고 싶다는' 남자 프랭크는
에이프릴에게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였다.
첫눈에 반해서 결혼을 하고 7년 뒤,
그들은 가장 평범한 도시 중산층의 삶을
살게 된 것이다.
남자는 아버지가 다녔던 직장에 다니고 있다.
자신은 아버지처럼 살지 않을 거라 했지만
결국 그렇게 되었다.
여자는 배우를 꿈꿨지만 재능의 부족인지,
여건이 안 받쳐준 건지
공연의 실패를 거듭하며 깊은 좌절을 맛본다.
동네에서는 나름 멋진 부부로 인정받고 있긴
하지만 그래 봤자 그 틀을 벗어날 수는 없다.
최근에 막을 내린 공연에서 또다시 실패를 맛보고
불만족 상태에 빠진 에이프릴은
그로 인해 남편과도 갈등을 빚는다.
그녀는 자구책으로 남편에게 파리로 이사 갈 것을 제안한다.
당신은 원래 특별한 사람이었다.
지금 너도 네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게
아니라 우리를 먹여 살리려고 하는 일이잖냐.
너는 원래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다.
내가 파리에 가서 국제기구에서 일자리를 얻어서
너를 서포트할 테니
너는 진정한 너의 꿈을 찾아라.
처음에는 비현실적인 소리라며 만류하던 프랭크도
그녀의 뽐뿌질에 탄력을 받아 동의하고
그들은 예술과 낭만의 도시 파리로 이사 갈
준비를 한다.
그의 내면에 숨어있던 '야망'이 그녀의 부추김에
빛을 받은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데
이 영화에 나타나는 주인공들의 '특별하고 싶다'는
욕망을 단순히 '뽐내고 싶다', '잘나고 싶다'로
이해하면
이들의 열망과 갈등, 그리고 좌절은 모두
'먹고살만하니까 지랄한다!'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주인공들의 주변 지인들의 내면에는
바로 이 같은 질책이 내재되어 있다.
그들이 꾸는 꿈과 선택에 대해 주변인들의 보이는
친절한 냉소와 이중적 태도는
우리가 날마다의 삶에서 경험하는
매우 익숙한 것들이다.
'그게 가능하겠어?' '그런 무모한 짓을!'
'뭐하러 그런 일을 해?' '철이 없군...'
순탄할 것 같았던 이들의 파리행은
프랭크가 직장에서 크게 승진할 기회를 얻고
에이프릴이 기대에 없던 세 번째 아이를
임신하면서 위기를 맞는다.
세상에...
남편이 초고속 승진을 하게 생겼는데
기뻐하지 않는 여자라니...
아이가 생겼는데 기뻐하지 않는 엄마라니...
누가 그녀를 쉽게 이해하겠는가.
프랭크는 승진의 기회 앞에서 파리로 가려던
결심을 거둔다.
애초에 그가 지녔던 꿈과 야망의 정체는 모호했고,
아버지가 말단 직원으로 정년을 마친 직장에서
중역의 자리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될 수 있는 것이었으며,
사람들의 존경과 부러움을 받는 자리로
올라감으로써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아버지처럼 살지 않는 인생'을 살게 된 것이다.
그로써 그는 자아실현을 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에이프릴이다.
그녀에게 모든 것을 다 갖춘 안락한 삶이란
공장에서 찍어낸 듯 똑같은 복제품의 다름 아니다.
그것은 결정적인 무언가가 결여된 삶이며,
어딘가 이상한 삶이다.
어떻게 이토록 다른 우리가
이렇게 똑같은 모양으로 살 수 있단 말인가.
이 같은 환경 속에서 '나'의 '나다움'과 '개성'은
무엇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
그냥 이렇게 정해진 시스템 속에서
주어진 대로 살아가는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이러한 에이프릴의 '특별함에 대한 갈망'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누구에게서도 제대로
이해받지 못한다.
그녀는 외로웠고, 믿었던 남편마저
그녀의 편이 되어주진 못했던 것이다.
이런 에이프릴을 보면서
나는 예전에 자주 하곤 했던 나만의 상상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난 가끔 지구 밖을 돌고 있는 위성의 눈으로
지구를 보는 상상을 하곤 했다.
지구는 구슬처럼 작고 푸르다.
거기엔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중 한 사람.
도화지에 연필로 콕 찍어놓은 점 하나 정도나 될까.
그렇게 생각하면 인생이란
얼마나 덧없고 무의미한 것인지....
파리행을 둘러싸고 12주간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 부부를 보면서
이것이 한편으론 남녀의 차이를 다룬
부부관계를 묘사한 것처럼도 읽히고
또 이상주의자와 현실주의자의 대립으로도 읽히며
나아가 한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안주하고 싶은 욕망과 모험하고 싶은 욕망의
갈등으로도 읽혀서 몹시 흥미로웠고,
무엇보다 남의 이야기 같지가 않아서
절절히 다가왔다.
에이프릴에 대해 '가정을 파탄 낸 미친 여자'라는
평이 많은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
그녀가 배우로서 성공했더라면
이 커플의 삶은 정말 달랐을 것이다.
그녀는 '파리'라는 이상향을 설정하고
거기로 가는 것을 통해
'특별함'에 대한 욕망을 실현하려고 했지만
물리적 장소를 바꾸는 것만으로
이룰 수 없는 욕망임은 자명하다.
파리에서 남편을 공부시키겠다는 포부는
자신을 향해야 할 꿈이 과녁을 빗나간 것이다.
그녀에게 필요했던 건 '자아실현'이라고 생각한다.
배우로서 실패했을지라도
다른 가능성을 찾아야 하지 않았을까.
영화의 배경이 1950년대라는 것을 감안할 때
비록 거기가 뉴욕일지라도 아이를 둘이나 키우면서
여자가 뭔가를 자발적으로 해내기가
얼마나 어려웠을지 상상이 간다.
자기를 위해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것은
내조와 양육의 의무를 팽개치는 것이기에
그녀는 남편을 공부시키겠다는 미명 하에
변화를 감행하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1950년대의 꿈꾸는 여인의 고통은
반세기도 넘어 여기 한국에서 똑같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그토록 '실현'되어야 할 '자아'란 대체 무엇인가?
인류가 계몽주의 시대를 거쳐 어렵게 민주주의와
여권 신장을 이루는 지난한 과정 속에서
철학은 개인의 '개성'과 '자아'에 너무나 큰 의미를 부여했다.
그 결과 20세기의 인간은 이전 시대의
인류 대다수가 생각할 필요가 없었을
'자아'에 지나치게 몰두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
'실현' 해야 할 '자아'는 자유로운 인간에게 주어지는 특권이기에.
그런데 정작 '자아실현'의 구체적인 내용으로
들어가 보면 그것만큼 모호한 것이 없다.
그것은 때로 '신기루'처럼 보이기도 한다.
흔히 예술가가 되고 싶은 열망,
특별한 직업을 갖고 싶다는 꿈이
곧 자아실현으로 여겨지는데 과연 그러한가.
이 같은 '자아실현'은 그것을 이루지 못했을 때
그것을 '삶의 실패'로 규정해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주인공 에이프릴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가 약 60년 전인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출근시간에 맨해튼의 펜 스테이션으로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넥타이 부대들의 모습은
중절모를 썼을 뿐,
여의도나 삼성동으로 아침마다 쏟아지는
출근 인파와 똑같다.
산업화와 자본주의, 지금 한참 진행 중인
신자유주의와 글로벌라이제이션의 섬뜩한 결과물...
그것과 선명히 대비되는
에이프릴의 '특별함'에 대한 열망.
레볼루셔너리 로드. 혁명의 거리.
그러나 아무 혁명도 일어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가
나에게 선명하게 남긴 메시지는
내 욕망을 배우자에게 투사할 때
부부관계는 비극이 된다는 사실이다.
부부는 일심동체가 아니다.
우리는 개체로서 전혀 다른 인간이다.
나의 자아는 내가 실현해야 하지,
배우자가 실현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내가 나로서 온전할 때 우리가 같이 손잡고
나란히 걸어갈 수 있다는 것....
케이트 윈슬렛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어찌나 연기를 실감 나게 잘하는지
정말 둘 다 최고의 연기를 선보였다고 생각한다.
작품의 후반부로 갈수록 절정의 연기를 보여주는데
영화를 보는 게 아니라 소설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소설이라면 길게 묘사되었을 인물의 내면을
얼굴과 온몸으로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었다.
정말 잊히지 않는 명장면을 선사하였다.
세상에는 남들과 똑같이 살려고 애쓰는 다수와
남들과 다르게 살려고 애쓰는 소수가 있다.
이전 시대의 여자들이
모두 똑같이 살려고만 했다면
버지니아 울프 같은 작가는 나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처럼 되려고 노력했지만
그러지 못하고 좌절한 수많은 여자들....
그 속에 에이프릴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녀를 단순히 멀쩡한 가정을 파탄 낸 미친 여자로
단죄할 수는 없을 것이다.
by 이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