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자기 극복 프로젝트

by 이봄





리즈 길버트의 동명 에세이를 바탕으로 한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이혼과 실연의 상처로 삶이 피폐해진

주인공 리즈가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감행한

1년간의 여행을 기록한 기행 영화다.




리즈 (줄리아 로버츠)




아름답게 촬영된 로마의 관광명소와

발리의 자연풍경이 여행에 대한

낭만적 환상을 한껏 충족시켜주는

볼거리가 풍부한 영화지만

무엇보다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리즈가 자신의 문제를 직시하고

정면 돌파하기로 마음을 먹은 다음

그것을 곧장 실행에 옮겼다는 사실이다.



리즈를 보면서 니체의

‘인간은 극복되어야 하는 존재다’

말이 떠올랐는데

내겐 이 여정이 리즈가 참으로 자신을

극복해가는 과정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리즈는 글을 써서 번 돈으로 뉴욕에

집을 장만할 만큼 작가로서 성공했지만

결혼생활에는 완전히 실패했다고 느낀다.

그녀는 8년째 함께 살고 있는

남편 스티븐 때문에 괴롭다.

스티븐은 한 가지 일에 매진하지 못하고

리즈가 벌어온 돈으로

사업을 벌였다가 접기를 반복해왔는데,

이제는 또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단다.

리즈는 스티븐의 엄마라도 된 것처럼

아직까지 적성 찾기에 매진 중인

그의 뒷바라지를 하다가 완전히 지쳤고,

한밤중에 일어나

욕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흐느끼며

평소에 믿지도 않던 신에게 제발 도와달라며

기도하는 지경에 이른다.

마침내 그녀는 이혼을 결심한다.



리즈는 이혼소송 중에

자기 쓴 희곡으로 제작된 연극에 출연하는

배우 데이빗과 사랑에 빠지는데

안타깝게도 이 연애 또한 오래가지 못한다.

자기중심적인 데이빗은 자주 리즈를 외롭게 하고

연이은 관계의 실패는 그녀를

깊은 우울의 나락으로 빠트린다.





리즈와 데이빗 (제임스 프랭코)




리즈에게 남자는 벗어나기 힘든 덫 같다.

그걸 알기에 그녀는 자신의 희곡에

이런 대사를 썼다.


나는 사랑하면 나를 버리거든,

하나도 안 빼놓고 모든 걸 주지.

돈, 시간, 몸, 애완견...

남자의 빚도 다 갚아주고

자기도 몰랐던 멋진 남자로 만들어주지,

그러다 공허해지고,

그걸 채우려고 딴 남자를 만나.



15살 이후로 연애하다가 시간 다 갔다고,

정작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없었다고

말하는 그녀는

자기가 누군지도 모른 채로

삶에 어떤 의욕도 느끼지 못하면서 사는 건

숨을 쉴 뿐 죽은 것과 다를 바 없기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아를 찾아 나설 용기를 낸다.








이태리에선 먹고, 인도에선 기도하며

발리에선 사랑을 하는 리즈의 여정은

상처 입은 마음을 치유하는

가장 바람직한 코스처럼 보인다.

그녀가 여행지를 다니며 보고 먹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장면을 따라가다 보면

그 여행에 동참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아지고, 내레이션을 통해

직설적으로 전달되는 그녀의 깨달음에

자연스럽게 수긍하게 된다.



이 여행의 참된 의미는

'만남'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리즈가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친구가 되어 그들의 도움으로

자신의 참모습을 찾아가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상처를 주는 것도 사람이고,

상처를 치유하는 것도 역시 '사람'이라는

아이러니한 진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 로마에 도착한 리즈가 거처를 정하는

장면이 재미있다.

온수도 안 나오는 형편없는 숙소인 데다

집주인도 괴팍한 할머니이라 망설이던

그녀는 할머니가 미국 여자들이

이태리에 오면 남자를 밝힌다며

집에 절대로 남자를 데려오지 말라고 하자

그 자리에서 바로 그 집을 계약한다.

남자에 약한 자신을 극복하기 위한

의지가 느껴져 웃음이 나왔다.



이태리인 친구들은 리즈에게

미국인들이 일밖에 모른다며

노는 것도 가르쳐줘야 한다고 지적한다.

자기들 이태리 사람들은 ‘달콤한 게으름’

즐긴다고 자랑하는 그들과 어울리며

그녀는 목적 없이 노는 즐거움을 배우고

맛있는 이태리 음식을 맘껏 먹는 기쁨을 누린다.

그렇게 몸과 마음을 회복해가면서

리즈는 자기 인생이 혼란스러운 게 아니라

'집착'이 문제였다는 걸 깨닫는다.

관계에 집착하기 때문에 자신을 몽땅 쏟아붓고

공허해지는 사랑을 반복하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는 걸.



아우구스테움을 방문한 리즈는

그곳에서 집착을 극복할 단초를 발견한다.

로마의 황제 옥타비안 아우구스투스가

자신과 가족을 위해 지은 영광스러운 능이었으나

세월을 따라 투우 경기장으로, 음악당으로,

전탱터의 요새에서 지금은 노숙자들의 은신처로

변화를 거듭해온 아우구스테움을 보면서

그녀는 무너짐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한다.

변화의 가능성을 내포한 무너짐이

곧 축복이라고, 무너져도 괜찮다고,

다시 세우면 된다고 말하며

관계가 깨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난다.



친구들과 세계 각국의 도시를 떠올리며

뉴욕은 야망, 스톡홀름은 순응, 로마는 섹스라며

그곳의 주제에 대해 떠들던 리즈는

너의 주제는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는다.

사랑만 했다 하면 자기를 잊어버리는 그녀는

처음엔 좋은 딸이라고 대답했다가

아내, 애인에 이어 작가라고 말하는데

친구들이 직업을 묻는 게 아니라고 하자

말문이 막힌다.

여행의 목적이 새롭게 환기되는 순간이다.




리차드 (리차드 젠킨스)와 리즈




삶의 활력을 회복한 리즈는

인도의 한 시골 마을에 있는 아쉬람으로 들어가

명상과 기도로 이루어진 수련 생활을 시작한다.

여기서 그녀는 텍사스에서 온 리처드라는

중년의 남자와 친구가 되는데

그는 리즈에게 돌직구를 날리며

그녀가 자신과 솔직하게 대면하도록 이끈다.



처음 이곳에서 명상과 기도에 집중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던 리즈는 그의 충고를 따라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면서

기도 자체가 가능해진다.

리처드를 통해 그녀는 자기가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잘못된 선택으로 삶을 망쳤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원망하고 있었고 그래서

자신을 위해 기도할 수 없었던 것이다.



누구나 실수하고 실패하며 살아간다.

그런데도 우리는 많은 경우

리즈처럼 자신을 원망하고 있지 않나?

내가 어리석어서, 내가 약해서,

그런 일이 생겼다고 자책하며

스스로를 미워하고 있지 않은지...

때로 자신을 용서하는 것이

타인을 용서하는 것보다 더 어렵고 힘들다.

남이 나에게 잘못한 것은

그 사람을 탓하고 원망하면 그만이지만

분노와 원망의 대상이 나 자신일 땐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 보인다.



리즈의 인도 생활을 보면서

상처받고 무너진 자신을 다시 세우기 위해

가장 먼저 거쳐야 할 단계가

자신과의 화해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신을 용서한 후에 그녀는

마음에서 전 남편과 화해한다.



자신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인 리즈는

'신은 내 모습 그대로 내 안에 존재한다'라고

말하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발리로 향한다.







발리에서 리즈의 삶에 주목할만한 점은

그녀가 다른 사람을 돕는다는 것이다.

아이 같은 미소로 재치 있게 가르침을 주는

할아버지 주술사 케투와 친구가 된 리즈는

그의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치료법이 담긴

엄청난 양의 낡은 문서를 복사해서

책으로 만드는 일을 돕는다.


또 민간 치료사로 일하며 어렵게 살고 있는

와얀이란 여성을 돕는다.

와얀은 폭력적인 남편을 견디지 못해

어린 딸을 데리고 도망치듯 이혼했는데

돈이 없어 계속 이사를 다녀야 하는 처지다.

리즈는 뉴욕과 이태리에 있는 친구들에게

와얀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생일 선물로 와얀을 위해

기부금을 보내달라고 한다.

기대 이상으로 엄청난 액수의 금액이 모금되고

리즈는 사랑의 큰 힘을 깨닫고 전율한다.



여기서 그녀는 자신처럼 이혼의 상처가 있는

펠리프라는 브라질 남자를 만난다.

리즈는 자신의 아픔에 공감하며

다정하고 따뜻한 펠리프에게 끌리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관계를 발전시키는 걸

거부하는데 간신히 찾은 내면의 평화와

삶의 밸런스가 또다시 남자로 인해 깨질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펠리프를 떠나 뉴욕으로 돌아가려는 그녀에게

케투는 ‘때로는 균형이 깨져야 삶의 더 큰 균형을

잡을 수 있다고 ‘ 말한다.



펠리프에게 돌아간 리즈는

드디어 자신의 주제를 찾았다며

'건너가자'는 뜻의 이태리어

"attraversiamo(아트라베르시아모)"를 외친다.

이제 그녀는 남자 때문에 자신을 버리거나

아예 피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함께 할 수 있는 단계로

건너갈 수 있게 된 것이다.




펠리프 (하비에르 바르템)과 리즈




행복이 숙제 같이 여겨지는 시대에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말은

지혜로운 삶의 강령처럼 들린다.

보기 좋고 맛 좋은 음식들이 넘쳐나고

열 걸음마다 하나씩 교회가 있는데도

제대로 먹고, 진심으로 기도하고, 사랑하기는

어쩌면 이렇게 어려울까?



누군가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고 말해서

깔깔 웃었던 기억이 난다.

동의한다.

돈이 아예 없으면 불가능하니까.

그런데 돈이 있다고 다 리즈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다 내려놓고 떠나는 것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핑계가 많다.

불만스러운 상황 속에서 계속 불평하지만

그걸 바꾸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한다.

리즈가 이 여행을 결심했을 때

가장 친한 친구조차 15살 사춘기 소녀 같은

발상이라며 말렸다.

위자료로 남편에게 전 재산을 다 주고

빈털터리가 된 리즈가

힘겹게 쌓아온 커리어마저 놓치게 될까

진심으로 걱정해서 한 말이다.

그리고 우리들 대부분이 이런 걱정에서

자유롭지 못하기에

모든 것을 내려놓는 위험을 감수하며

진정한 삶을 추구한 리즈의 이야기에

이토록 매료되는 것이리라.



자신을 만나기 위해 꼭 여행을

떠나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핵심은 리즈처럼 자신을 극복하기로 결단하고

그 방법을 스스로 고안해내는 데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체념하지 않고

자신을 돌아볼 마음을 내는 게 아니겠는가.




by 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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