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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Jul 19. 2017

타니아 슐리 <글쓰는 여자의 공간>

                                                                                                                                                                                                                                                                                                                                                                                                                                                                                                                           



글 쓰는 여자의 공간이라니...

매력적인 제목이다.
작가의 사적인 공간,

그것도 멋진 작품이 쓰인
바로 그곳을 엿볼 수 있다니!







큰 기대를 가지고 책장을 펼쳤는데
작가들의 작업 공간은
작가 소개를 위한 하나의 매개체가 될 뿐,
창작 공간 그 자체에 대한
정보나 이야기는 많이 부족했다.


아쉬웠지만 그래도 이 책을 통해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삶과
창작 스타일에 대해 알 수 있어서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책에 소개된 35인의 여성 작가들 중에
내가 잘 모르는 작가가 몇 명 있어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책 꽤나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유명한 작가들 중에
내가 모르는 작가가 있는 것이다.

세상은 넓고 작가는 많다!






저마다 개성이 강한 작가들이라
자신들이 쓴 작품만큼이나
본인들 인생도 서사적으로 몹시 흥미로운데
서로 다른 이들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점
나의 관심을 끌었다.


먼저 여기 소개된 작가들 중 상당수가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들은 모두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중후반까지 살았는데
여성에 대한 차별과 제약이 지금보다 심했던
시대적 상황 속에서
글을 쓸 정도의 소양을 갖추려면
일단 부잣집 딸이어야 했던 것이다.


글쓰기가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일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인간 삶의 조건이 향상되었음을
의미한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 중 많은 수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작품을 써야 했기에
주로 새벽과 아침에 글을 썼다는 것도
애잔하게 다가왔다.
참, 다들 어떻게든 써보려고 부단히 들
애쓰면서 살았던 것이다...



보부아르는 일생 동안 일체의
가정사를 거부한 여성으로서,
요리를 비롯한 어떤 살림살이도
하지 않았다.
가사야말로 여자들의 자유와 삶,
글쓰기를 방해하는 덫이라고
여긴 것이다.
78p



보부아르는 아이가 없어서
이런 투쟁(?)이 가능했던 게 아닐까...?






프랑수아즈 사강


 

수잔 손탁



카렌 블릭센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의
여성 작가들이 애연가라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대부분이 손에 담배를 쥔 모습으로
사진에 찍혔는데
20세기적인 풍경으로 느껴진다.


공공장소 대부분이 금연장소로
지정될 정도로 흡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보편적 상식이 돼서 그런지
요즘은 국내든 해외든 남자든 여자든
담배를 피우는 작가들이
많지 않은 것 같다.
예술가와 흡연을 바로 연결 짓던 시대가
지났다는 느낌이랄까...
요즘 작가들은 퇴폐몰락보다는
웰빙의 이미지가 강한 것 같다.






특별히 내 마음을 사로잡은
작가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딸 카린을 낳고 거의 10년간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이 에 걸려 앓아눕자,
붉은색 땋은 머리를 한 당당한 소녀의
이야기를 지어 딸에게 들려준다.
1944년, 이번엔 자신이 다리를 다쳐 병상에
눕게 되자 예전에 딸에게 들려주었던
그 이야기를 글로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탄생한 책 [삐삐 롱스타킹]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239p


고통이 창작의 모티브와 원동력이 된
경우가 정말 많다.
살다가 어두운 터널을 만날 때
그 길을 어떻게 지나갈지는
결국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다.


나딘 고디머
'첫 남편과 이혼하면서 딸을 홀로 키우고
... 그 후 1954년 유명 미술상
라인홀트 카시러와 결혼했고
이듬해 아들을 낳았다.
언제나 일이 우선이었던 그녀는
자기 자녀들을 기숙학교에 보내
자녀 양육의 부담을 덜고 글을 썼는데,
이 때문에 인정머리 없는 여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녀는 서재 문을 걸어 잠그고 글을 썼고,
아이들을 서재에 들이지 않았으며
라디오도 틀지 못하게 했다...' 244p

 
고디머의 아이들이 다닌 기숙학교에
고디머의 아이들 말고도 수많은 아이들이
있었을 텐데
어째서 유독 고디머만 인정머리 없다고
욕을 먹어야 했는지,
애들 아빠는 왜 욕을 안 먹었는지...?
21세기의 여성 작가들은
이런 편견으로 부터 자유롭도록 다 같이
노력해야 한다.


200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이야기는
내 마음에 선명한 자국을 남겼다.


옐리네크의 어머니는
'딸을 음악 신동으로 키우고자 했다.
음악학교에 다니면서
파이프 오르간, 플루트, 피아노, 작곡을
배웠지만 어머니의 지나친 욕심
친구 없는 외로운 생활은 그녀를
정신불안 상태로 몰고 갔다.
다른 아이들이 뛰노는 시간에
음악을 연습해야 했던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자전 소설
[피아노 치는 여자]에 묘사되어 있다. '92p


안타깝게도 딸은 어머니의 바람대로
천재적인 음악가가 되지 못했고
불안증세로 학교도 중퇴하고
바깥 나들이도 불가능한 사람이 되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불안증세 때문에
글쓰기에 더욱 몰두하게 되었고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정도의
대문호가 된 것이다.


그녀는 불안증세 때문에
노벨상 시상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고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이란 본래 부모의 뜻대로 자라는

존재가 아닌 거 같다.
그나마 운명에 맞서
내가 어찌해볼 수 있는 건
내 인생 정도 아니겠나 싶다.
보호와 양육의 의무는 다 하되
지 살고 싶은 대로 살도록
내버려두고
나는 고디머처럼
 내 인생에 충실해야겠다.


고디머의 아이들이
엄마를 원망했을까?
...
기숙학교가 너무 엄격하고
아동학대가 일어나는 곳이 아니었다면
애들은 더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사춘기 아이들에게 부모의 간섭만큼
개짜증 나는 건 없으니까.

 





이 책이 제목이 불러일으킨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해서
재밌게 읽으면서도 실망감이 컸는데
리뷰를 쓰다 보니
이 책을 통해 깨달은 바가
생각보다 많다고 느낀다.


글 쓰다가 힘들 때면
한 번씩 다시 들춰보게 될 거 같고.


이들이 유명 작가라고
나보다 행복했던 거 같지도 않다.
사는 건 누구에게나 똑같이
때로 힘들고 때로 즐겁다.


편안하고 건전한 여건 속에서
글을 쓴 사람은 아무도 없더라.
그래서 부럽다거나 이런 느낌을 받지 않고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어떤 여건 속에서도 묵묵히 해 낸
성실한 사람들의 삶을 엿본 느낌이다.


(물론 두세 명 정도는 자기 파괴적인 방탕한 삶을
살기도 했다. ex. 프랑수아즈 사강 )







도로시 파커라는 미국 작가의
인터뷰인데
진심인 거 알겠는데 너무 힙합스러워서
웃음이 나왔다.
스웩 스웩~~


작가라면 이런 정도의 허세도
필요하다고 본다.
너무 겸손하고 인간성 바르고
그런 사람은...
매력이 없지 않나?
부럽다, 이런 마음가짐이.



by 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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