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의 일이다
뭔가 마시고 싶은데 커피는 댕기지 않고
선물 받은 녹차 티백이 떠올라
습관처럼 전기 포트에 물을 끓여 티백을
우려냈다
집에서 혼자 차 한 잔을 마셔도
예쁜 찻잔을 세팅해 자신을 대접하는 사람도
많더라만은 나는 늘 그런 여유에 인색하게
지낸다
노상 쓰던 물컵인 머그잔에
아무 생각 없이 티백을 던져 놓고 물을 부었다
멍하니 차가 우려 나길 잠시 기다렸다가
컵을 들고 식탁 앞에 가서 앉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녹차가
조금 식길 기다렸다가
혀를 댈까 걱정하며 조심스럽게 한 모금
입에 머금었는데
....
그 한 모금의 녹차가 입 안에 머물다
식도를 거쳐 위로 흘러내려가는 동안
나도 모르게 눈을 지그시 감았더라
차 한 모금에서 '영원'을 느낀다는 것
그런 것이 진짜로 있구나
....
이전까지 다도를 일종의 형식미로 여겼는데
차를 즐기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중요한 깨달음이
이렇게 아무 준비도, 성의도 없는 상황에
찾아왔다는 것이 경이로왔다
난생처음 느끼는 감각
나도 모르게 자리를 고쳐 앉아
두 손으로 공손하게 컵을 들고
눈을 감은 채로
천천히 차를 마셨다
그 뒤로 자주 이 순간이 떠오른다
다른 녹차 티백과는 정말 달랐다
녹차 잎을 만들어낸 자연의 섭리
거기에 더해진 장인의 솜씨에 대해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다른 티백과 이것을 구별되게 만든 요소를
거듭 되짚어보게 만든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떠올랐다
주말이면 정성스럽게
다기에 녹차를 우려 마시던 젊은 시절의
아버지.
아버지의 차를 한 모금 얻어 마시곤
쓴 풀이라도 씹은 듯 이런 걸 왜 마셔?
하던 어린 나의 모습도.
그런 날 보며 말없이 미소 짓던 아빠의
얼굴도....
차 한 잔이, 내내 기억하지 않았던
케케묵은 추억을 소환해냈다
이런 때 과거는 현재와 멀지 않다
그 어린 시절로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이
찰나같이 여겨지며
공연히 가슴이 아파왔다
아버지는 너무 늙었고, 나도 늙었다
아, 세상에...
그런 것이 통증의 감각으로 다가온다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를 읽었다
중, 단편 소설집인 이 책에는
다른 소설들도 담겨있지만
이 <쇼코의 미소>만 읽은 상태다
이 작품 자체가 대단히 궁금했던 건 아니었다
근래 한국 젊은 작가들의 소설이
기대 이상으로 뛰어나서 두루 읽고 싶던 차에
이 작품을 많이들 읽는 거 같아서
한 번 읽어볼 요량이 있는 정도였달까
이틀 전에 도입부를 가볍게 읽고
제법 흥미롭네, 하며 잠시 덮어두었다가
오전에 아이를 문화센터 수업에 들여보내고
로비에 마련된 소파에 앉아서 마저 읽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전혀 슬픈 소설이 아닌데.
수많은 학부모들이 오가는 로비에서
누가 볼까 봐 손가락과 손등으로 눈물을
찍어내며
이제 삼십 대 초반인 이 젊은 여작가는
누구인지,
어떻게 이런 걸 이렇게 잘 아는지,
묻고 싶더라
이 이야기가 다른 독자들에게도
나와 같은 감상을 일으킬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소설은
분명히 나를 비롯한 몇 명은 울게 했으리라
주인공 소유의 자기 고백적인
이야기 속에 나타나는
할아버지와 엄마의 이야기에서
주마등처럼 흘러간
그들의 인생 전체가 느껴져서
가슴이 아팠다
사연 없는 인생이 없건만
우리는 그냥 이렇게 왔다가 가는구나...
이야기로 옮겨지지 않은 수많은 인생들
....
우리들 중 누구의 삶이라도
단 한 사람에게라도 온전히
이해받을 수 있을까?
당장 나도 내 아버지의 인생을 모르는데
....
주인공의 이야기가 내게 회한의 마음을
불러일으킨 걸까...
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 그냥 자꾸만 눈물이 났다
나는 문학을 생각했다
문학이 왜 존재하는지
...
문학은 애도하는 것이다
이름이 있었으나, 이름이 없는 것처럼
우리보다 먼저 이 땅에 왔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리고 살아있으나 피차 서로에게 배경일 뿐인
모든 사람들을 향한 애도...
소유의 지나간 20대도
하늘로 떠나간 할아버지도
나에게 영원의 감각을 느끼게 했다
녹차 한 모금처럼
<쇼코의 미소>를 내 친구들에게
낭독하여 읽어주고 싶다
담담한 목소리로.
이 소설은 적어도 내 마음에는
깊은 자국을 내었다
by 이봄
2017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