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프랑스길에서 나폴레옹 로드를 기대했지만, 순례자 사무소의 봉사자들은 눈을 이유로 발까를로스로 걸을 것을 명했다.
젠장 젠장...
한 시간 단위로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5시경 침실에서 나와 출발 준비를 했다. 5시 반쯤부터 요란한 소리가 나 확인해 보니 우리 방의 인원 8명 중 4명이 짐을 싸서 식당으로 내려갔다. 덕분에 눈치 안 보고 우리도 짐을 꾸려 6시 출발.
나폴레옹 로드와 발까를로스 로드의 갈림길에서 잠시 고민했지만 시키는 대로 발까를로스로 방향을 잡았다.
춥지 않은 아침 공기는 상쾌했고 하늘에 별들도 총총했다.
한국청년 한 명과 잘생긴 프랑스 국적이라 판단되는 젊은 총각이 인사하고 추월한다.
첫 번째 마을인 arguyni 아르기니에서 조식을 하려고 했지만 오전 7시에 문연 바르(커피, 술, 담배, 음식 등을 파는 종합 대중식당?)/도 띠엔다(가게)도 없었다.
2016년 겨울 체득한 경험상 이곳 아니면 다음 마을에서 식사 혹은 간식을 구입하지 못한다면 매우 곤란할 것이라고 뇌에서 신경을 건드린다.
발카를로스 계곡을 사이로 왼쪽은 프랑스, 오른쪽은 스페인인 이 지역의 마을은 뭔가 애매한 구석이 있다. 스페인인지 프랑스인지 하는. 봉쥬르 해야 할지 부에나스 디아스 해야 할지...
아르기니까지는 그래도 완만한 경사라 비교적 빠르게 걸어 올라왔지만, 이어지는 길은 본격 오르막으로 무식하게 변했다.
아르기니를 지나 마을 길로 걷는데 매우 작은 그러니까 우리 나라 대표 경차였던 마티즈보다도 훨씬 적은 승용차를 만나 기념사진도 한컷 남겨 본다.
아르기니 다음 마을은 valcarlos 발까를로스로 3.5km쯤 올라가야 하는데, 왼쪽 프랑스 마을 길에서 오른쪽 스페인 마을인 발까를로스로 가는 길은 급격한 내리막 후 무자비한 오르막으로 준비되어 있었다.
발까를로스 마을에서는 반드시 식사를 해야 한다고 강력한 신호를 보내고 있었고 이는 체득된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틀리지 않았다.
1초에 한걸음 걷기도 만만찮은 오르막 끝에 오픈한 바르와 수페르메르까도(supermercado)가 아름답게 자리하고 있었다.
되지도 않는 스페인 단어 몇 개로 카페 꼰 레체 2잔(라테), 하몬 또스따다(하몬 토스트),또르띠야 데 빠따따스를 성공리에 주문하고 아름답고 풍성한 성찬을 맞이한다.
여유롭게 먹고,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고 강요하는 뇌의식의 지령으로 추가로 음료 2캔, 누뗄라 과자, 견과류를 구입하고 나머지 길을 나선다.
이때부터 길은 나의 기억과는 많이 다른 매우 가파른 길로 인도했고 이 길은 약 10여 km 정도 이어졌다.
와! 진짜 쉽지 않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나의 몸뚱아리가 이전의 경험 때보다 10kg 이상 가벼워진 상황이라 꾸준히 전진하는 것은 가능했다.
심지어 엄청 힘들었다는 기억보다 더 힘든 길이었음에도 말이다.
인간이 고통받는 이유는 욕심 때문이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톨릭 성지로 불리는 이곳에서 다시 생각났던 이유는 이렇게 힘든 코스를 이전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올랐다는 것으로 이는 모든 종교의 극의는 통한다는 설을 꿰뚫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개똥철학을 발동시켰다.
식욕과 놀고자 하는 욕구를 버리니 체중을 잃었고, 고통을 줄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난 한번 또 깨달음을 얻는 중이다.
끝날 것 같지 않던 힘들고 길었던 첫째 날의 발까를로스의 길은 21km의 오르막 구간을 마무리하며 내리막으로 변했고, 그 짧은 내리막에서 론세스바예스의 수도원 알베르게를 금방 볼 수 있었다.
2016년 6학년 아들과 함께 했던 기억은 엄청나게 힘들었다와 도착도 늦어 도착 후 빨래와 식사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밖에 없었는데 1시 반, 출발로부터 7시간 반 만에 이른 도착에 성공한 오늘 나는 론세스바예스 수도원의 아름답고 귀중한 성당 유적들을 충분히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얻었다.
론세스바예스 수도원 성당 알베르게 앞마당
수도원 산타마리아 왕립 성당
알베르게 빨래건조대
초대형 알베르게. 프랑스길 최대 규모
담장에 터를잡은 식물들이 참 아름답다.
알베르게 출구에서 산티아고 데 꼼뽀스뗄라 방향
13세기에 세워진 론세스바예스 산티아고 성당. 스페인의 문이라고 불리운답니다.
산티아고 성당 남쪽에 붙어있는 성령의 소성당. 매우 이채로운 모습을 가졌습니다.
수도원 벽에 가대어 앉은 붉은색 옷의 슨례객이 인상적이었다.
욕심을 버리니 얻는 게 있었고, 신 포도일 거라고 생각했던 나폴레옹 로드 대신 발까를로스 길의 만나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었다.
저녁 식사는 가격에 비한다면 좋다고 할 순 없었지만 배부르고 맛있게 뽀요(pollo, chicken)를 먹을 수 있었고 나바라의 비싸지 않지만 맛있는 포도주로 지친 심신의 에너지를 다시 채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