빰쁠로나 Jesus y Maria(헤수스 이 마리아) 알베르게의 아침은 일찍 시작된다. 통으로 된 거대한 성당내부에 방을 만들지 않고 중앙공간만을 비워둔 체 양옆으로 2층의 공간을 만들고 그곳에 2인용 침대를 깔아놓은 형태라 모든 소리가 공유되는 구조다.
헤수스 이 마리아 알베르게 입구 모습
밤새 조용했지만 새벽 5시가 지나자 하나 둘 출발을 준비하는 소리들이 쌓여간다.
재밌는 것은 이곳 화장실의 변기에는 커버가 없다. 원래는 있는 것이 맞겠지만 9년 전에도 없었지만 지금도 없었다. 그렇다고 소변기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남녀 공용이다. 이만하면 어떤 상황인지 알 것이다. 하지만 모두들 은밀하게 볼일들을 해결하고 하나 둘 알베르게에서 벗어난다.
7시쯤 아침을 간단하게 먹고 길을 나선다. 어제 도착 무렵부터 아파오던 무릎이 더 아파지기 시작했다. 그것도 양쪽 모두. 하여 속도를 좀 늦춰서 걸었다.
어두운 구도심 중심 골목에는 금요일 밤을 지새운 흔적들을 청소차들이 고압 살수를 하며 지워내고 있다,
도시의 밤은 또 이렇게 차분한 아침으로 변신하고 있었다.
예전과는 다르게 길의 바닥에는 은색 스테인리스로 만들어 박은 조개 표시가 상당히 촘촘하게 박혀있어 빰쁠로나 시계까지 이어져 길을 헤매지 않다도 되었다.
친절하다 해야 할 까 아니면 순례자의 길 잃는 낭만을 잃어버렸다고 해야 할까?
나바라 대학을 벗어날 때 동이 터오기 시작하는데 기대만큼 예쁜 동쪽 하늘이다.
나바라 대학 뒤로 동이 터오는 모습
곳 빰쁠로나 경계를 벗어나 Cizur Menor(씨수르 메노르) 마을로 접어들었다. 입구의 왼쪽에 오래된 성당이 하나 있는데 2016년에도 사진을 찍었었는데 이번에도 자연스럽게 들러간다. 관리받지 못한 느낌이지만 아직도 기운이 넘치는 모습니다.
Iglesia Sanjuanista 이글레시아 산후아니스따
길 건너 마을 높은 곳에는 현재 이용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Iglesia de San Emeterio y San Celedonio(이글레시아 데 산 에메떼리오 이 산 쎌레도니오)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Iglesia de San Emeterio y San Celedonio
바르에 들러 커피 한잔 하려는데 주인도 안 보이고 사람도 많길래 그냥 나와 Alto de Perdon(알또 데 뻬르돈,용서의 언덕)을 향해간다. 그런데 힘들다 보기와는 달리 힘에 부친다. 많은 순례자들이 나를 앞질러간다. 한국의 젊은이도 노인도, 서양의 젊은이도 노인도. 왜 나만 힘든 거냐?
힘들 때마다 잠시 서 뒤를 돌아본다. 빰쁠로나와 그 주변의 초록색 대지는 잠시 힘듦을 잃게 해 주었다.
빰쁠로나 왼쪽 풍경
빰쁠로나
아픈 다리를 챙기며 꾸준히 걸어 용서의 언덕 밑 마을인 Zariquiegui(사리끼에기)에 도착하니 오픈한 바르 주변으로 많은 순례객들이 번잡하다. 마을 성당인
Iglesia de San Andrés(이글레시아 데 산 안드레스)가 열려있어 잠시 성당 내부 구경도 해본다.
겹벚꽃이 아름답게 핀 산 안드레스 성당
작지만 성당 내부의 천정 구조는 너무 멋지다.
꽤 오래 쉬었다 마지막 오르막 구간을 20여분 걸은 후에 드디어 오늘의 최고점인 용서의 언덕에 올랐고 한동안 사방의 경치를 눈에 담아보았다.
이제 오늘의 목적지인 뿌엔떼 라 레이나(Puente la Reina,여왕의 다리)를 향해 가파는 내리막을 한동안 조심스럽게 스틱에 의지해 걷는다.
올라올 때 보다 많은 순례자가 내리막을 걷는다.
내리막에서 한국에서 오신 61세 기념으로 오신 할머니? 아니 누님 3분 중 한 분과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하며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우떼르가(Uterga) 마을에서 바르에 들러 콜라 한잔하며 쉬어간다.
다음 마을인 무루사발(Muruzabal)에 들어서는데 9년 전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깨끗한 주택이 많이 보였다.
무루사발에서 Obanos 오바노스로 바로 가지 않고 12세기 나바라의 기사단에서 만든 이글레시아 데 산따 마리아 데 에우나떼 Iglesia de Sant Maris de Eunate로 향한다. 이곳으로 향하는 순례자는 거의 없다. 미리 학습하고 오는 사람이 아니라면 존재 자체도 잘 모를 것이다. 2016년의 나도 그런 순례자였다.
3km를 넘게 돌아간다는 것은 순례길에서는 있지 어려운 일이다. 25km 내외를 걷는 길의 끝에서 3~4km를 돌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다.
하지만 이런 결정 덕에 난 천년전의 원형이 살아있는 성당을 방문하는 기회를 얻고야 말았다.
1.5유로의 입장료는 아깝지 않았다. 게다가 이 성당의 문을 내가 직접 열어보기까지 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목적지 마을로 향했다. 아직도 4km 이상 더 걸어야 한다.
오바노스 마을의 Iglesia de San Juan Bautista
오바노스 마을을 통과해 다시 2km 정도를 걸을 후에야 오늘의 숙소인 Albergue Padres Reparadores 알베르게 빠드레스 레빠라도레스에 도착.
9유로에 침대를 얻고 우선 식사를 위해 파스타 면을 삶아 찬물에 헹구고 비빔면 장을 잘 버무려 점심 겸 저녁 완료. 내일 일요일이라 미리 간식을 사고, Puente la Reina 뿌엔떼 라 레이나,여왕의 다리를 보러 큰 길가의 다리로 나가본다.
다리이름이 마을이름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만큼 아름다운 다리를 만났다. 2016년엔 저 다리 위를 직접 지나와서 이런 모습을 만날 순 없었다.
좀 더 학습하고 나서 걷는 순례길엔 2016년의 나라면 볼 수 없는 풍경을 찾아나가고 있다.
장보고 돌아오는 길에 마을의 주요 성당도 만날 수 있었다.
이 마을에도 산티아고 성당이 있다.
알베르게 앞의 Iglesia del Crucifijo
오늘 고생한 두 다리를 위해 소염진통제와 안티푸라민 마사지를 시행했다. 힘들다 힘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