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좀 멀리 걸을 계획이라 아침을 좀 챙겨 먹고 6시 반에 출발한다. 까리온을 빠져나가면 다음 마을까 17km는 서비스가 없는 구간이라 지루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비교적 빠르게 걸어본다, 그래봐야 모든 사람이 다 추월해 가지만,
까리온 외곽에 수도원이 하나 있는데 낮에 구경했으면 하는 생각을 8년 전처럼 또 한다. 이번에도 어둠 속의 겉모습만 보고 지나친다.
Real Monasterio de San Zoilo을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첫 번째 큰 교차로에서 일행 한 명을 포함해 일단의 순례자들이 엉뚱한 길로 100m 이상 진행하고 있다. 소리를 질러 제방향으로 안내한다. 그냥 놔둬 볼걸 그랬나? ㅋ
초반엔 곧고 길게 늘어선 나무들을 따라 까미노가 이어진다. 기억 속의 이 구간은 참 지겹게 길었었는데.
동터오는 동쪽하늘의 여명이 북쪽에 있는 삐꼬스 데 에우로파릉 선명하게 드러내준다. 북쪽길을 걸을 땐 웅장했었는데.
동트는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의 모습
유채가 간간히 피어있는 고원지대는 지루한 것 같지만 지루하지 않다. 좀 힘들 뿐.
밀밭인지 벼밭인지 구분이 잘 가질 않는 초록의 바다가 부는 바람에 맞춰 일렁인다.
꽤 빠른 속도로 걷지만 내가 추월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절반쯤 되는 지점에 간이 바르가 하나 생겼다. 컨테이너 박스 두 개로 제법 그럴듯하게 만들어 놨는데 결정적으로 화장실이 없다. 남자 들어 조리용 컨테이너 뒤로 가서 대강 싼다. 아... 이거 참 비위생적이군.
까페 꼰 레체를 시키니 소줏잔 사이즈의 생 오렌지 주스도 맛보기로 준다.
반은 유채 반은 밀... 반반 영농
간이 휴계소 담에 창을 내 놓았다. 아마 사진 찍라고 만든것이 틀림 없다는 생각
이런 모습을 보며 걸어오는데 17km쯤이야. 8년 전 이 길은 고독하기 이를 데 없는 길이었지만 지금 이 길은 생동감이 넘치고 순례객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드디어 첫 번째 마을 깔사디야 데 라 꾸에사 Calzadilla de la Cueza에 도착해 피곤했을 발과 마음에 휴식을 준다.
입구 바르에서 쉬고 있는 선배
온것 만큼의 길이 남아있어 부지런히 걷는다. 속도가 빠르진 않지만 꾸준히 걷는다. 급하지 않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따라 메세따의 풍경도 같이 변한다.
돌무더기 화살표. 순례자들의 정성이 모여 큰 화살표가 만들어졌다.
레디고스를 통과해 계속 진행한다. 오늘은 사아군까지 가야 한다.
이름도 너무 어려운 떼루라디요스 데 로스 뗌쁠라리오스를 지나 모라티노스에 닿는다. 이곳 알베르게 겸 바르에서 끌라라를 한잔 마시며 잠시 쉬고 다음 마을인 산 니꼴라스 델 레알 까미노로 힘들어지기 시작한 다리를 부지런히 옮긴다.
끌라라는 맥주에 레몬즙 혹은 레몬음료를 넣어 만든다.기성품로 나오는 것도 있고 직접 섞어 만들어주는 곳도 있다.
와인 저장고라고 생각했지만 굴뚝이 있는것로 보아 집이라고 하는게 맞을듯 하다.
우리를 추월해 간 한국 청년(여성) 두 명을 마을 근처서 따라잡고 농을 던진다. "우리가 추월해서 아마 침대가 없을지도 몰라요." 이랬더니 "저희는 이 마을에서 머물러요." 이런다. 부럽다.
레알 까미노를 지나 드디어 사아군Sahagun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 멀어도 너무 멀어 보인다.
사아군 입구에 13세기에 지어진 Ermita de La Virgen del Puente를 만날 수 있다. 이 성당 유적은 무데하르(이슬람+스페인+가톨릭 양식) 양식이 더해진 로만스타일로 지어졌다고 하는데 조용하고 아름다운 주변 환경 때문에 더 아름답고 신비로운 느낌이 있어 잠시 조용히 쉬어 갈만 하다.
Ermita de La Virgen del Puente
잠시 다리 쉼을 하고 기찻길을 넘어 마을 중심의 끌루니 공립 알베르게를 찾아간다. 6시가 넘은 시간의 햇살이 이렇게 따가워도 되는지. 햇살은 따갑지만 그늘로 들어가면 또 춥다.
성당을 통째로 사용하는 알베르게는 7유로.
사아군 끌루니 공립 알베르게
저녁으로 알베르게 앞 바르에서 빠에야를 시켰는데 이거 생각보다 맛있다. 먹고 나서 delioso!라고 말해줬더니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