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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뚱 Feb 28. 2023

다시 산티아고로!

2016년 프랑스길... 그리고 2022년 북쪽 길과 은의 길을 목표로 



Villafranca del Bierzo의 Puerta del Perdón에서. 쿠바 기자가 찍어줌

2016년 6학년이던 아들을 반 강제로 데리고 함께 산티아고 길을 다녀온 후 다시 이 길에 오를 수 있을까 가끔 생각해 보았다. 

첫 순례길을 마친 후 중견 화장품 회사의 영업본부장으로 있던 나의 첫 회사 출신 선배가 불러줘서 딱히 서류 준비나 면접도 없이 마케팅 본부 상품기획팀에 입사했다. 

그리고 다시 일곱 번째 해를 맞았다.

2021년 12월에 그만뒀어야 했다. 

실적도 실력도 없이 나이만 먹어 사람 좋은 얼굴로 20년 이상 차이나는 팀원들의 역량을 끌어올릴 방법은 내 머릿속에 없었고, 회사는 나를 다그치지도 않았다. 

무력함.

점이 되어가는 자존감.

영업지원 관련(교육, 상품기획, 마케팅) 업무만 해오다 영업팀장으로 옮겼다. 

영업이라곤 홈쇼핑 영업 경험, 그마저도 팀장 역할과 BM 역할만 했으니 잘 할리 없고, 그럴듯한 계획도 없었다. 그저 쫓기듯 흘러왔다. 

새로 온 본부장을 도와 뭐라도 한번 해보고 그만두자는 생각은 오만이고 치기였고 핑계였다.

그냥 난 2021년 12월에 그만뒀어야 했다. 

결국 난 심장 벌렁거림으로 안정적인 정신 상태를 유지하기 힘들었고, 결국 퇴직 의사를 밝혔다. 

4월에 이야기하고 지금 글을 쓰고 있는 6월 중순이 넘어가고 있지만, 아직 본부장과 최종 근무일에 대한 명시적 합의는 없었다. 다만, 나의 카톡 대문사진에 9월 6일 출발하는 항공 티켓과 9월 7일 출발하는 TGV(테제베)의 온라인 티켓으로 퇴직 날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그래서 나와 카톡 친구인 사람은 내가 회사를 그만두는 것을 안다. 

많지 않은 조직의 인원이 이미 다 알게 된 시점이라면, 가능한 한 빨리 그만두는 것이 좋을 텐데.

어쨌든 인수인계 할 것도 별로 없어서 그냥 이렇게 앉아서 시간 보내며 최대한의 월급을 받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내가 늘 생각했던 월급 도둑이 되지는 말자는 다짐과는 영 다른 길에 이미 접어들었다.  

4월 퇴직 의사 전달, 5월 항공권 등 예약... 그럼 이제 남은 건 퇴직 날짜다. 

아침에 늘 2시간 정도 일찍 출근하는 나는 스페인어 단어 공부도 좀 하고, 스페인 지도를 띄워놓고 도상 연습도 하고 있다. 이 시간이 가장 즐겁지만, 다 걷고 나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만날 현실은 마음속에 한기를 슬쩍 뿌린다. 


내가 배우고 해 왔던 모든 마케팅 방식은 바뀌었다. 

이제 와서 다시 배우고 싶지도 않다. 

귀찮다. 

이미 전재산을 날려 버릴 뻔하기도 했고, 암에 걸려 불알 한쪽 제거와 전이로 인한 항암을 거치며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상황을 넘기기도 했다. 

그런데 왜 난 회사, 월급에 목메고 있는 걸까. 


이젠 다른 방식으로 살아야 할 때다.

그 시점이 당연히 도달한 것이고 이제 난 그 변화의 시작점에 섰다.

그 변화의 시작을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시작하며 건강부터 정상화하기로 했다. 


아래 두 개의 지도가 새로운 변화의 시작을 준비하는 길이 될 것이다. 

흔히 북쪽 길로 불리며, 비야비씨오사(Villaviciosa)라는 마을에서 북쪽 길(camino del norte)과 원시길(camino primitivo)로 나뉜다.


비아 데 라 플라타 (Via de la plata, 은의 길)가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순례길중에서는 가장 긴 코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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