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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뚱 Apr 10. 2023

88일 2060km 스페인 도보 순례길
북쪽길 19일차

La Isla ~ Villaviciosa : 23km

Camino del Norte 823km Day-19

La Isla 라 이슬라 ~ Villaviciosa 비야비씨오사 : 23km, 획득고도 520m

북쪽길 19일차

라 이슬라의 아름다운 해변 숙소에서 6시30분쯤 바게트에 커피 한잔을 아침으로 먹고 7시쯤 출발했다.

300미터 쯤 갔는데 스틱을 두고 왔다. 다시 후진. 이런게 젤 귀찮고 싫다. 왔던길 돌아가는게...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가 일찍 발견해서. 아마 1키로 넘게 갔으면 그냥 버렸을거다. 스틱은 있어도 불편하고 없으면 매우 아쉽고. 특히, 비와서 미끄러운 숲길의 질척한 길에서는 꼭 필요하다.

그리고 순례길 나서는 분들 중 신발 고민을 많이 하시는데 특별히 걷는것이 익숙하지 않다면 그냥 목있는 등산화가 무조건 답이다. 거기다 숏 스패츠를 꼭 추천한다.백번 !!! 잔돌 나뭇가지 비가 들어오는걸 막아주어 등산화 안으로 들어온 이물질로 불편해진 발바닥을 위해 신발을 벗어 털지 말지 고민하게 되는 순간들을 현격하게 줄여준다. 의외로 한시간에 한두번씩 고민하게 만든다.숏 스패츠 꼭 하시라.

새벽의 Marejada hostel 마레하다 오스텔. j는 ㅎ으로 h는 묵음이다.

라 이슬라 해변의 여명. 실제로는 더 어두운데 카메라가 자동으로 노출 오바 시켜서 찍으니 제법 밝다. 

라 이슬라를 빠져나와 만나는 첫번째 마을에 작은 경당이 있어 랜턴 빛에 의지해 사진을 담아본다. 이 경당의 이름은 찾지 못했지만 Bueño 마을에 자리하고 있다.

부에뇨를 지나서 동이 터오는 것이 느껴서 뒤를 돌아 봤더니 곧 해가 올라올 것 같다.

걸으면서 아름다운 색상이 연출되길 기다리는데 기대했던것 보다 담담하다. 그래도 참 아름답다.


오늘은 도시같은 규모의 동네를 두개 만날 수 있는데 첫번째는 '꼬룽가 Colunga'. 거리는 멀지 않았는데 한시간 30분 정도 걸린것은 잠시 화살표를 못찾았고, 소나기가 한두번 뿌리는 바람에 좀 머뭇거렸다. 

Ermita de Nuestra Señora de Loreto

창문을 그려넣은 벽을 가진 집이 뭐랄까. 저 그려진 창은 주인의 마음일까 아니면 순례자의 입장에서 였을까?

나의 판단은 순례자를 위해서다. 벽 중앙의 창문 그림은 눈길을 끌고 저게 진짜인가를 궁금해하며 들여다 보고 그림임을 확인하고 너털 웃음을 짓게 하는 잠깐의 재미를 줬기 때문이다. 

꼬룬가 도심으로 들어서 집사이를 걷는데 길 오른쪽에 호텔 정원이 눈에 들어온다. 크지 않지만 꽃나무등으로 장식되어 제법 좋아 보인다. 

Hotel Mar del Sueve 잠시 머물고 싶어지는 정원이다. 부부,연인이 왔다면 하루쯤 묵어가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아름다운 종탑을 가진 성당이 시선을 끈다. 마을은 아직 이른 시간이라 조용하고 평온하다. 걸음을 재촉하는 도보 여행자만이 바쁘게 걸음을 옮긴다. 

차도옆 오르막길에 야외 테이블이 있는 까페 마고비에서 순례자 여럿이 쉬고 있어 나도 잠시 쉬어간다. 새벽에 숙소에서 간단히 빵을 좀 먹었기 때문에 생오렌지 쥬스와 에스프레소만 마셔준다. 이렇게 커피같은 음료를 마시며 앉아서 피는 담배는 별거 아니지만 큰 즐거움 중 하나다. 

짙은 오렌지색 커버의 배낭이 내 것. 뒤의 배낭 두개는 프랑스 노부부 순례자의 것. 자주 만나게 된다.

꼬룬가를 지나면 농가가 가끔있는 길을 한참이나 걷는다. 중간중간 지금은 미사를 보지 않을 것 같은 성당 여러개를 만나고 꽤 긴 오르막과 여러개의 언덕을 걸어야 했다. 

계속되는 적막한 길을 걷다 만나는 인간 삶의 흔적, 삶의 터전을 만나면 반가워지는 것은 나도 더불어 살아야하는 인간이기 때문이겠지. 한자 人間의 의미가 사람들 사이에 있다라는 뜻인데 참 오묘하다. 타잔이 밀림에서만 살았다면 인간이 되지 못했겠지

Iglesia parroquial de Pernús

가끔 만나는 작은 마을의 성당은 많은 경우 현재의 역할은 공동묘지인듯 하다. 미사를 보는 성당은 신자수가 줄어서인듯 큰동네에나 가야 있다. 시골의 인구가 늘지 않고, 신자도 늘지 않으면 이 성당으로 쓰였던 건물들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폐허가 되겠지.

Iglesia de San Antolín

아스투리아스에 접어들어 눈에 띄는 것은 앞에서 얘기했던 오레오(hórreo) 형태의 건축물이 많이 보이는데 갈리시아의 것들과는 완전히 개념이 다른 듯 하다. 거의 집 같은 모습을 가졌거나 사이즈가 매우 크다. 

이 오레오는 갈리시아와 아스투리아스 지역에만 있는 것 같다. 

아스투리아스의 오레오
초록의 길 속에 붉은 한점으로 눈에 띄는 일본 순례자 할머니.

산간 지대에 만들어진 마을을 걷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오르막과 내리막이 많다. 아직도 이 오르막이 적응이 참 안된다. 걸음이 할머니들 보다 느린거 이거 어떻게 안될까? 이 오르막 많은 길에서 일본인 할머니를 만났는데 이번이 두번째 까미노라고 하신다. 영어 단어와 일어 단어로 간단한 말을 어렵게 했다. 간이 휴게소에서 간식도 나눠먹으며 서로에 대해 새발의 피만큼 알게 되었다.  

날이 흐려 칙칙한 느낌이지만 초록의 대지는 여전히 아름답다.

높은 언덕을 올라 돌아 내려오는 길에 로마네스크 양식의 오래되어 보이는 성당을 만나 성당 벤치에서 쉬어간다. 안에 들어가보면 좋겠지만 닫혀 있다. 주변 마을의 누군가가 관리하고 있을 건데...

Iglesia de San Salvador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길(camino)은 '까미노 데 산티아고 camino de santiago'라고 부르고 지금 걷고 있는 길은 '까미노 델 노르떼 camino del norte / 북쪽길)'라고 구분되어 있다. 산티아고로 가는 길은 한두개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노란 화살표와 조개로 공식루트를 안내하고 있다. 따라서 같은 공간에서도 길은 여러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화살표를 잘 찾아 걷는것이 좋다. 하지만 꼭 그렇게 걸어야 하는 것은 아니니 필요에 따라 걸으면 된다. 

잘 포장된 차도옆을 걷다 이렇게 뜬금없이 오솔길로 인도한다. 많은 경우 이 길들은 곧 다시 만난다. 

비아비씨오사 근처에서 진입로를 좀 헤맸다. 화살표와 앱의 길 방향이 달라서 였는데, 그냥 이럴땐 의심하지 말고 화살표를 따라가는 것이 좋다. 

이런 길도 있고.

비아비씨오사에 도착해 알베르게 위치를 확인 후 이동해 알베르게(Albergue El Congreso)에 도착하니 일본 할머니 순례자가 관리인 할머니와 안되는 말로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뭐 나도 말이 안통하니... 순례자 할머니는 이메일로 예약을 했는데 관리인은 전화번호가 없어 방키를 줄 수 없다고 실갱이 중이었고. 예약하지 않은 내가 12유로에 방열쇠를 받고야 나와 같은 방을 쓰게 했다. 유심을 일본에서 꽂아온 경자(게이코) 할머니는 유심 전화번호를 몰라서 전화번호를 기록할 수 없었고, 그 이유 때문에 방 열쇠를 줄 수 없다고 실갱이를 했던듯 했다. 아니 전화번호 없다고 키를 안주는 것도 참 이상했다. 분실의 책임 때문에 그런듯 하지만. 어쨌든 나에게 열쇠가 있어서 짐을 풀었다. 이 알베르게는 관리인이 시간을 정해서 접수를 받고, 관리인이 없는 시간은 문이 잠금 상태로 닫히기 때문에 열쇠가 없으면 들어올수가 없는 방식이다 보니 열쇠 문제가 발생했던듯 하다.  

알베르게의 외관과 4인실인 객실 모습. 화장실과 샤워실이 객실내에 있다.
알베르게에서 바라본 도심.오른쪽이 시청 건물

짐을 풀고 샤워를 하고 테라스에서 담배한대 피우며 스마트폰으로 이것저것 보는 여유로움. 이 시간이 참 좋다. 잠시 쉬고 시내로 나가 밥을 사먹는 대신 슈퍼마켓에서 간단히 장을 봐 알베르게 부엌에서 오랜만에 많은 양의 간편식으로 맛있는 식사를 했다.   

비아비씨오사 시내
푸짐한 한끼! 상당히 많아 보이는 양이지만 다 먹을 수 있었다. 별 무리없이. 

식사하고 방으로 올라오니 4인실에 손님이 다 찼다. 서양 할머니 두분이 더 오셨다. 어쨌든 두분은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고 했고, 게이코 할머니는 내일 아침에 어딘가 들러 간다고 하니 나만 새벽에 일찍 출발하면 된다. 번역기를 동원해 내일 새벽에 일찍 떠나게 되어 시끄러울 수 있으니 양해를 구한다고 말했더니, 이 서양 할머니들 매우 쿨하다. 우린 순례자다 당연한거다. 신경쓰지 말라고 하신다. 

그럼 이제 편하게 잠만 자면 된다.

  

내일은 북쪽길의 대도시 히혼에 도착할 예정이다. 가는 길 중간에 '프리미티보 길'과 분기하는 곳을 지나게 된다. 어제까지 프리미티보 길로 갈까 북쪽길로 계속갈까 고민했는데, 그냥 북쪽길을 끝까지 하고 프리미티보 길은 나중에 기회를 보기로 했다. 


[오늘의 지출]

오늘 아침 음료 3.8

알베르게 12

장보기 8.7

합계 24.5


오늘 알뜰하게 썼다.

다만 내일 히혼은 숙소가 다 비싸서 30유로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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