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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뚱 Aug 20. 2023

88일 2060km 스페인
도보 순례길 은의길 32일차

사진으로 적는 순례기 : 오우렌세 ~ 모스테이로 데 오세이라

*Via del la Plata 은의 길 32일 차 

  Ourense ~ Mosteiro de Oseira

 오우렌세 ~ 모스테이로 데 오세이라

 운행거리 : 34km, 운행시간 : 10시간 30분, 획득고도 1,023m, 최고점 767m

조용조용 짐을 싸 지하 1층 식당에서 육개장 사발면으로 시작하는 32일 차.

스페인에서 처음 먹게 된 한국산 사발면 참 맛있다. 

물을 뒤집어 세운 후 랜턴을 비추니 그럴듯한 조명이 되었다. 

구 시가지를 빠져나가는 이른 아침 길의 오렌지 빛 가로등은 따뜻한 느낌이 좋았다.  번화한 시내는 아침 일찍부터 오픈한 바르가 많았고 담배도 사고 커피도 한잔 마실 겸 바르에 들렀는데 대도시의 특징인지 아침부터 바쁜 사람이 참 많다. 시골의 동네 분위기와 다른 건 당연하겠지.

오우렌세 시가지를 빠져나가며 로만 브릿지를 만났는데 규모가 상당했다. 길이는 메리다의 로만 브릿지보다 길지 않은 듯했지만 은의 길에 있는 로마 다리 중에 높이로는 가장 높지 않을까 싶었다. 2천 년 전의 토목 기술이 놀랍다고 다시금 느꼈다. 낮에 봤어야 했는데. 

오우렌세의 아침 풍경
미뉴 강을 가로 지르는 로마 다

다리를 건너 도심을 빠져나오는 길에서 오른쪽 언덕의 마을 방향으로 길을 이끄는데, 비를 머금은 안개 때문에 시야는 곰탕 속을 걷는 듯했다. 

마을 골목으로 이어지는 순례길은 가파르고 조용하다. 상당한 산동네다.

마을의 공동묘지 역할을 하는 마을 성당 Igrexa de San Pedro de Cudeiro에서 잠시 쉬어 간다. 

길은 계속 가파르게 이어져 심박수가 줄질 않는 느낌이고 안개 같은 비를 맞는 상황에서도 땀이 찝찝하게 계속 흐른다.  

언덕길의 언덕에 자리 잡은 Ermita de San Marcos da Costa 유적지를 한 바퀴 돌아보고 길을 이어간다. 

달마시안이 참 예쁘게 생겼다. 
갈리시아의 전형적인 오레오 형태를 보여주는 마을
왼쪽은 사르떼디호스 마을의 'San Benito de Sartedigos' 예배당

띄엄띄엄 좋아 보이는 전원주택이 있는가 하면, 쇠락해 버려 사람이 살지 않고 벽만 남은 집들과 천년이 넘은 중세의 다리가 이 길 위에 교대로 자리하고 있는데 기분이 뭐랄까... 


비가 많이 내려도 걸을 수 있도록 길 위에 돌을 놓았다. 갈리시아는 순례자 친화적 지방인건 확실하다. 

드디어 20km를 넘게 걸어 Cea에 도착. 식당을 찾아 두리번거리다 문을 연 바르를 찾아 들어갔는데, 식사를 하고 싶다고 하니 길 건너편의 다른 식당을 알려줬다. Bar의 이름은 태양과 달이고 뭔가 기념품 같은 것을 같이 팔고 있는 곳 같았다. 이미 순례자 2팀이 있어 별생각 없이 주문을 했는데, 음식이 별로다. 특히 두 번째 접시의 파스타는 국물 없는 차가운 맛없는 수제비 같은 느낌... 맛이 없어서 음식을 남기긴 처음이다. 

마을 중앙의 시계탑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식사 후 Doson으로 가는 직진 방향으로 가지 않고, 오른쪽으로 약간 돌아서 가는 길에 있는 대안 경로인 Oseria 수도원 방향으로 진행했다. 도손의 알베르게가 오픈하지 않아 선택한 방법인데 아주 괜찮은 선택이었다. 오세이라 수도원까지는 8.5km 정도로 멀진 않았지만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 때문에 힘들게 걸었다. 그래도 좋았던 것은 고즈넉한 분위기의 가을이 깊어지는 길의 색이 아름다웠기 때문이었고 게다가 이 길은 오랜 역사를 가진 로만 로드의 일부분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삼색냥은 암컷이라지? 
오스트리아에서 온 형님이 기~인 언덕길을 열심히 오르고 있는 모습
엄청 짖어 대는 동네 지킴이... 아우 개색히 더럽게 짖네.
멀리 보이는 숨겨진 듯 자리한 마을이 아름답다. 

오세이 수도원 도착 전 마지막 마을인 A Ventela의 산타 이사벨 성당이 아름답다.

Capela de Santa Isabel
Capela de Santa Isabel

드디어 거대한 오세이라 수도원을 영접할 수 있었다. 하... 

오세이라 수도원은 규모가 상당했다. 알베르게를 찾지 못해 30분가량 헤매었고, 결국 닫혀있는 성당의 관리동으로 보이는 건물 대문의 벨을 눌러 '알베르게'를 외쳤더니 친절한 여자 직원이 알베르게까지 안내해 준다. 알베르게에 짐들 가져다 놓기 전 마지막 회차의 수도원 투어가 있다고 해 3.5유로의 입장료를 내고 투어에 참석했다. 완전히 폐허가 됐던 수도원을 복원하고 지금은 수도원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투어 말미에 작은 기도실 같은 곳으로 강제 입장 되었는데, 아뿔싸... 기도 시간이었나 보다. 수도원 수사로 보이는 이들이 시간차를 두고 6명 들어왔고 노래로 하는 기도를 한 시간 가까이 진행한 후에야 나올 수 있었다. 냉담자로서는 긴 시간 스페인어 기도와 성가는 견디기 쉽지 않았으나 어차피 중간에 나가기도 애매한 상황이라 아는 분의 병 쾌유를 빌었고, 엄마가 천국에 가셨길 빌었고, 우리 식구의 행복을 빌었고, 장인어른의 천국생활이 행복하실 빌었고, 굥의 집권이 하루라도 빨리 끝나길 바랐으며 그래도 시간이 남아 인류의 평화까지 기원했다. 그럼에도 기도 시간은 끝나지 않았다. 기도를 들어줄 수 없음을 아니 애초에 이런 기도를 들어줄 신 따위 있다고 믿지도 않으면서... ㅠㅠ 

기도를 무사히 마치고 들어온 알베르게는 깨끗했고 따뜻했으며 매우 조용했다. 인터넷도 안되고 음식을 해먹을 수도 없는 너무 좋은 부엌과 문을 연 식당도 없는 그야말로 힐링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그런 알베르게였다. 다음에 또 오게 된다면 먹을 것을 잔뜩 사들고 와서 하루를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비가 점점 심하게 내리는 밤에 이 오래된 수도원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알베르게 처마 밑에서 담배 한대 피우는 것 밖에... 아 담배맛 쥑이네!



아래는 수도원 내부 투어 중 찍은 사진들

수도원 회랑
용도를 알 수 없는 방. 수도사들이 이 계단위에 줄지어 앉아 뭔가를 했겠지. 
수도원 중정
수도원을 발굴 복원하면서 최초 수도원을 구성했던 건축 유적물들을 전시해 놓았다.
수도원 복원 모습
약을 만들던 방
수도원 내부의 성당
성당 지붕 장식
성당 재단
회랑
수도원 천장의 건축 형식과 아름다운 문양
수도원 내부의 방인데 기둥과 천장의 구조가 매우 아름답다. 진짜 아름답다.
회의실 같은 건가? 천장 구조가 매우 아름답다.

[오늘의 지출]

아침 커피 +기호식품 6.8

점심 메누 델 디아 9

알베르게 8

24유로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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