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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뚱 Sep 05. 2023

88일 2060km 스페인
묵시아,피스떼라 순례 첫날

사진으로 적는 순례기 :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 ~ 네그레이라

*Camino de Fisterra y Muxía, 피스테라와 묵시아 길 1일 차

  Santiago de Compostela ~ Negreira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 ~ 네그레이라

  운행거리 : 22km, 운행시간 : 6시간, 획득고도 548m, 최고점 320m


처음 와 본 라스트 스템프 알베르게는 시설이 나쁘진 않은데, 나쁜 미국 놈 여행자가 있다. 더럽게 큰 목소리로 전화통화를 참 오래도 한다. 할머니 여행객 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뭐, 난 내일 떠날 거니까.

라스트 스템프 알베르게 실내 일부

대성당 옆의 터널 같은 통로를 지나 서쪽으로 방향을 잡아 걷는다. 2016년 2월엔 비가 정말 많이 내렸는데, 오늘은 약간 오락가락하는 느낌이다. 11월 말이니까 이미 갈리시아의 우기에 접어들었다. 매일 비가 내리는 게 이상하지 않다.

광장 중앙 방면으로 내려가는 길에 뒤 돌아보니 처음 만나는 다른 구도의 성당 풍경이다. 멋지긴 하네...

시내를 빠져나가 낯설지 않은 순례길이 7년 전 그날처럼 비와 함께 힘들게 걸어보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첫 번째 언덕을 힘들게 올라 2016년에 보았던 풍경을 이번엔 혼자 한동안 바라본다.

아직 도심에서 멀지 않은 지역이라 작고 조용한 마을이 계속 이어진다.

스페인의 모든 길에서 만날 수 있는 반가운 동물 중 고양이만큼 매력적인 동물도 없는 것 같다. 참 자태가 아름답다.

스페인 북부지역은 한 겨울에도 그렇게 춥지 않다. 아침기온은 0도 아래로 내려가는 일이 거의 없고, 산악 지대에서나 눈을 만날 수 있다. 대신 우기라 눈이 많이 쌓이며 내린다.

허기질 무렵 아들과 함께 들러 쉬어갔던 식당에 도착했다. 맥주 한잔과 감자 오믈렛(또르띠아 데 빠따따스)으로 간단히 허기를 달랬다.

정원수로 오렌지 나무가 심긴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 하나 따먹고 싶었지만 참아야지. ㅋ

짜식... 노려보긴...

굴뚝 연기가 길게 피어오르는 모습이 정겨운건 따뜻한 느낌 때문일까?

아우페싸다 마을의 경로상에 있는 Augapesada Puente Romano는 작지만 아름답다. 예전에는 이 다리를 건너는 길이었을 것 같지만 현재는 어떤 이유에선지 길은 다리를 비켜나서 이어진다.  

이곳 마을에서 높은 언덕을 넘어가야 하기 때문에 'Bar O km 79'에서 맥주 한잔하며 쉬어간다.  에스뜨레야 갈리시아는 갈리시아 지방의 대표 맥주로 한 병에 2유로가 평균 가격인 듯싶다. 맛은... 난 술맛을 잘 모른다.

아름다운 숲 속 길을 걷다 보면 몇 가지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는데 첫 번째는 힘드네, 두 번째는 멋지네, 세 번째는 오르막 짜증 나... 정도. ^^ 그리고 또 하나의 생각은 다시 돌아온다면 좀 더 이 길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길고 가파른 언덕을 힘들게 터벅터벅 걸어 넘어서 내리막, 평지 길에 다시 만나는 마을, 전에는 이 마을의 바르에서 쉬어갔었는데.

담쟁이넝쿨의 색상이 이렇게 예쁠 수 있나...

강렬한 붉은 대문이 눈길을 끈다. 집주인의 감각이 예사롭지 않다.

묵시아와 피스떼라 길을 걷다 보면 가장 인상적인 마을이라 꼽을 수 있는 'A Ponte Maceira' 마을은 Tambre 강이 가로지르는데 수량이 상당한 데다 강변에 붙여서 지은 건물과 다리, 아름다운 건물이 어우러져 쉬어갈 만한 마을이다. 다리 건너기 전에 깔끔한 'Restaurante Pontemaceira(레스토랑)'가 생겼는데, 아름다운 강 경치를 보며 식사를 할 수 있다. 구글 검색을 해보니 식사비가 싸지는 않다. 1인당 30유로 내외. 그래도 한번 들러볼 가치가 있어 보였다. 나는 혼자라 슬쩍 지나며 구경하고 통과한다.

Ponte Maceira
Capilla de San Blas
강 건너에서 바라본 'Restaurante Pontemaceira(레스토랑)'
Molinos de agua del río Tambre (물 방앗간)
Pazo de Baladrón 발라드론 장원
Cruceiro de Ponte Maceira

날이 개어 걷기 나쁘지 않은 가운데 네그레이라 초입에 도착했다. 이 마을에도 예쁜 고양이들이 순례자를 무심히 바라본다.

네그레이라 중심부의 바베큐 전문 식당인 듯 보이는 'A Esmorga (Negreira)'에 자리 잡아 점심을 거하게 먹어 볼 생각으로 메누 델 디아를 주문했다. 퍼스트는 파스타, 세컨드는 고기로... 양과 맛 모두 훌륭했다. 후식으로 아이스크림까지 12유로에. 행복한 식사였다.

네그레이라 공립 알베르게는 중심부에서 좀 떨어져 있다. 다행히 순례길 경로상에 있어서 헛걸음을 하지 않아서 좋았다. 상가들이 있었을 건물을 지나 성밖으로 나가는 느낌으로 공립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2016년 2월 아들과 나는 이곳에 물에 빠진 생쥐 꼴로 도착했고, 밤새 지붕을 두드리는 폭우 소리에 더 걸을 의지를 상실해 버렸다. 아들의 의견을 존중해 2016년 아들과의 순례길은 이곳에서 종료했었다.

오늘은 기억이 새로운 네그레이라의 공립 알베르게에서 편안한 하루를 보낼 수 있어 다행이다.

알베르게에서 바라본 중심지 풍경

날이 개어 별을 볼 수 있는 밤이라서 행복감을 느껴본다. 담배도 참 맛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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