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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뚱 Sep 10. 2023

88일 2060km 스페인
묵시아,피스떼라 길 완료

사진으로 적는 순례기 : 묵시아 ~ 피스떼라

*Camino de Fisterra y Muxía, 피스테라와 묵시아 길 4일 차

  Muxía ~ Fisterra

  묵시아 ~ 피스떼라 

  운행거리 : 32.8km, 운행시간 : 10시간, 획득고도 844m, 최고점 311m


88일 일정으로 떠나온 순례길 대장정의 마침표를 찍는 날이다. 이번 도보여행에서 얻게 된 마일리지는 2,060km. 내 평생에 또 이 정도를 걸어서 여행할 기회가 또 올 수 있을까? 아마도 어렵지 싶다. 


마지막날 시작하는 날씨는 괜찮다. 비가 내리지도 않고 적당히 구름도 있고, 바람이 또 불어주는 길이다. 뭔가 좀 먹고 갔으면 좋겠는데 오픈한 식당 정보가 없어 그냥 출발.

알베르게를 나와 왼쪽으로 이어지는 길은 언덕이고 묵시아의 새벽풍경을 볼 수 있다. 삼각대가 없기 때문에 카메라를 적당히 올려놓고 장노출로 아침풍경을 담아 본다. 

아래는 핸드폰으로 찍은 풍경. 

해변의 도로를 따라 걷는다. 해변을 벗어나는 곳에서 길을 헤맨다. 그냥 화살표를 쫓아가면 됐는데, mapy 앱의 트래킹 길을 따라 도로 밑으로 내려섰다가 물이 가득한 길을 헤매다 도저히 안된다 싶어 다시 도로로 올라왔다. 젠장... 도로를 따라가다 보니 화살표를 찾을 수 있었다. 뭔 짓을 한 거야... 갈길도 먼데... 

해변 도로를 벗어나기 전의 바닷가 풍경

제길을 찾아 들어오니 우거진 숲사이로 난 도로를 따라 오르막 길이 시작된다. 아... 마지막까지 오르막을 피할 수가 없구만...

길이 왼쪽으로 살짝 돌아가면서 동트는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지금 서쪽 끝으로 이동하기 위해 남서진하고 있는 상태. 

언덕길을 가다 만난 마을인 Xurarantes에서 동네 고양이를 만난다. 정말이지 스페인 고양이들은 왜 다 이렇게 우아한 거야?

마을을 빠져나가는 길이 계속 오르막이다. 

오르막 중간중간에 네모나게 자른 벤치모양의 돌들이 놓여 있다. 이곳의 걷는 사람이 많지도 않은 것 같은데 이렇게 많은 돌 벤치들이 있다니. 어쩌면 벤치의 용도가 아닐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지만. 이건 틀림없는 돌벤치다. 

언덕 정상까지 돌벤치가 놓인 길이 쭉 이어지다. 마침내 유칼립투스 나무 숲을 지나면서 시야가 확 터진다. 

내리막을 2km 정도 내려오자 Morquintián 모르낀띠안 마을이다. 바르가 있다고 되어 있지만 cerrado. 시즌이 끝난 순례길은 이런 점에서 불편함이 있지만, 뭐 잠시 쉬어갈 수 없다고 순례가 안 되는 건 아니니 다음 마을을 기대해 보며 걷는다. 일종의 희망고문을 스스로 자행하면서 말이다. 

간혹 있는 농가 주택을 제외하곤 사람의 흔적이라곤 길 밖에 없는, 그렇다고 딱히 사람이 그립진 않은 마지막 길 15km 지점에 이르러 San Estevo De Lires라고 하는 관광지로 좀 알려진 마을에 도착했다. 식당과 알베르게도 있고 아래쪽으로 해변도 보이는 언덕 사면에 만들어진 마을인데 오픈한 바르를 찾아 좀 헤매다 O Recuncho de Lires 라는 이름의 꽤 좋아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간다. 어제 묵시아에서 만났던 중국 아줌마들이 요기를 하고 있어 인사하고 자리 잡고 앉아 메누 델 디아를 주문했다. 식전 빵으로 나온 바게트는 여태 스페인에서 접했던 것들과는 달리 따뜻하게 구워졌는데 부드럽고 바삭하다. 와우!!! 15유로가 아깝지 않은 식사였다. 

컬러가 인상적이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지붕들 사이로 해변이 보인다. 

나가는 길도 좀 헤매다 고냥이들의 배웅을 받으며 안녕~~~~

마을을 빠져나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A Canosa 마을을 지난다. 

개인 주택의 정원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 이어진다. 그래도 비가 내리지 않아 다행이다. 

터덜터덜 걷던 걸음이 멈춰지게 만드는 풍경이 나타났다. 은의 길을 걷다가 어느 식당에선가 본 포스터? 사진에서 본 느낌이 드는 오레오와 바다가 어우러지는 풍경을 만났다. 

포스터와는 다르긴 했지만 느낌은 참 비슷했다. 

몇 가구 없는 마을이었지만 인상적인 오레오 때문에 기억에 남게 된 Castrexe 까스뜨렉쎄 마을이었다.  

십자가가 떨어져 나간 오레오
뒤 돌아본 Castrexe 마을

다시 언덕을 오르는데 갑자기 소나기처럼 비가 날린다. 이런... 햇볕이 이렇게 쨍한데 비라니.

몇 초 후 비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무지개가 자리 잡았다. 

무지개를 잘 담아보고자 찍어봤지만 뭐 보는 느낌 그대로는 아니다. 

마지막 언덕이길 바라며 걷는데 아스팔트에 피스떼라와 묵시아 방향 표시 화살표를 발견했다. 누군가의 수고로 역방향으로 진행하는 순례자들도 길을 잘 찾을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Buxán 부산. 마을 이름이 부산이다. ㅋ. 이 동네 고양이들도 한껏 멋짐을 뽐내는 중이다. 

제재소에서는 소나무로 짐작되는 나무들의 가공이 한창이었다. 이렇게 소나무를 베어낸 곳에는 다시 유칼립투스를 심겠지. 

언덕이 또 나타나 걷는데 도나띠보 매점이 있다. 그곳을 지키는 실물개... 짖지도 않는다. 멋진 놈.

잠시 앉아 바나나 한 개와 커피 한잔을 마시고 기부함에 동전 넣고 다시 길을 이어간다. 

마지막이길 바라는 마음 간절했던 언덕을 끝내고 내려오는 길에 맞이한 오레오 아래엔 건조 중인 옥수수가 말라가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하루가 멀다 하고 비가 내리는데 마르긴 할지. 그냥 동물들 먹으라고 놔둔 걸 지도. 아니면 사진 찍으라고...ㅋ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피신한 바르에서 갈리시아 맥주 한 병 하며 잠시 쉬어 간다. 

드디어 30km 가까이 걸어 피스 떼라가 보이기 시작한다. 

오늘 예약한 알베르게에 짐만 놓고 0km 표시석이 있는 피스떼라 등대까지 걸어 올라간다. 피스떼라 등대 가는 길 초입에 자리한 작지만 매우 아름다운 Igrexa de Santa María das Areas를 7년 만에 만났다. 

Igrexa de Santa María das Areas

등대까지 운행하는 버스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게 없네. 2.5km 정도 도로 옆길을 따라 올라가야 하는데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멀리 등대의 불빛이 보인다. 

드디어 도착!!!

등배 앞 바위에 앉아 여러 명의 순례자들이 와인을 나눠 마시며 자축하고 있다. 멀리 배 한 척이 보인다. 저녁노을이 멋질까 하고 기다려 봤지만 화려한 일몰은 없었다. 해가 떨어진 건지 언제 떨어진 건지 알 수 없이 어두워져 버렸다. 내가 도착했을 땐 이미 해가 수평선 밑으로 사라졌었나 보다. 

대장정의 마지막 날이지만 딱히 감흥이 없다. 그저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 정도가 들뿐이다. 걷는 게 좋다기보다는 그 시간이 좋아서 걸었을 뿐인 것 같다. 돌아갈 집이 있어서 그래도 다행인가? 싶다. 

내 안 지기가 걷길 즐겼다면 같이 왔으면 더 좋았겠다 싶다. 다음에 올 땐 한번 꼬셔 봐야지 하는 생각을 해보지만 아마 안될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만난 Igrexa de Santa María das Areas의 야경이 멋지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마트에 들러 간단한 요기 거리를 준비해 들어가 라면과 과일로 식사를 하고 대장정의 마지막 밤을 그냥 이렇게 마쳤다. 내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산티아고 데 꼼뽀스뗄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탈 예정이다. 

아디오스! 피스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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