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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임문화포럼 Dec 15. 2021

게임할 권리와 문화향유권

1. 게임의 역사     

<그림 > 세네트 게임판의 모습

 인류는 언제부터 게임과 함께 했을까? 명확히 그 처음을 알기는 어렵지만, 현재 기록으로 남아 있는 최초의 게임은 기원전 3500년 전 이집트의 무덤에서 처음 발견된 ‘세네트’라는 이름의 일종의 보드게임이다. 이 보드게임은 기원전 3300년 전 투탕카멘왕의 무덤에서 네 벌이나 발굴되었는데, 그중 두 벌은 온전하게 보존된 채로 발견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세네트’라는 게임은 계층을 가리지 않고 즐겼다고 전해진다. 


3X10개의 칸을 가진 게임판을 윷과 유사한 형태의 나무 막대 4개를 던져 그 결과에 따라 말을 이동하는 방식으로 30번째 마지막 칸에 말이 도착하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 우리나라의 윷놀이와 유사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단순해 보이는 이 게임에도 서사가 있다. 죽음으로 가는 길이라는 스토리 아래 각 칸은 특정한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세네트’는 사자가 저승으로 떠나기 위해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게임이라고 알려져 있기도 했다.


 비단, 이집트에서만 게임을 즐겼던 것은 아닌 것 같다. 기원전 2600년에 수메르인이 하던 ‘우르의 게임’, 동아시아의 바둑, 우리나라의 윷놀이 역시 기원전이 그 시초로 알려져 있다. 인류의 기록이 남아 있는 대부분의 고대문화에서 인간이 게임을 즐겼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기록 전에도 인간은 게임을 즐겼다고 추측할 수 있지 않을까? 1938년 책 Homo Ludens에서 네덜란드의 문화 역사가 Johan Huizinga는 인류가 게임을 즐겼다는 것에서 더 나아가 게임이 인류문화의 탄생 조건이라고 주장했다. Johan Huizinga는 게임이 문화보다 더 오래되었다고도 말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문화는 사회가 존재해야 존재할 수 있는데, 게임은 같이 즐길 상대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사회가 구성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또한, 고대 문명이 그러하듯 종교적인 것과 비종교적인 것이 분화되지 않았는데, 앞서 설명한 ‘세네트’가 저승세계로의 여행이라는 스토리텔링을 가지고 있듯, Durkheim에 의하면 고대 게임은 종교적 환경에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게임의 주요 요소인 ‘랜덤성’은 고대인들에게 ‘신의 뜻’을 읽는 요소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러한 작용을 통해, 게임은 공통의 가치관과 문화를 전파함으로써 사회적 유대의 초석으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고대를 지나, 현대로 오는 긴 시간 동안 당연히 다양한 게임이 등장하고 또 사라져 갔다. 체스, 바둑, 장기와 같이 현대에도 인기를 끌고 있는 말 그대로 ‘고전 게임’이 있는가 하면,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즐기던 ‘파톨리(Patolli) 게임’ 등은 현재는 대중적으로 즐기는 게임이 아닌 사라져 가는 게임이 되었다. 현대로 오면서 종교적이고 주술적인 의미로서의 게임은 점차 사라지고, 게임은 더 전문화되었다. 1851년 최초의 국제 체스 토너먼트가 런던에서 열리고, 직후 체스에 현재와 같은 시간 규칙이 생기는 등 ‘프로 보드’ 게임이 등장했고, 구전되어 플레이되던 고대의 보드게임은 다양한 상업적 보드게임으로 대체되었다. 이후로는 카드 게임이 등장했고, 롤플레잉 게임이 등장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비디오 게임’의 등장이다. 1950년 미국에서 버티 더 브레인(Bertie the Brain)과 같은 단순한 기계 장치를 활용한 틱택토 게임이 등장하였다. 이후 1961년에는 미국 MIT 학생이었던 스티브 러쉘에 의해 PDP-1이라는 당시 최초로 키보드와 모니터를 갖춘 컴퓨터에서 동작하는 게임 ‘스페이스 워!(Space war!)’가 발표된다. 비디오 게임은 이후 급속히 발전하여, 70년대 가정용 콘솔의 등장으로 이어졌고, 다양한 컴퓨터 게임이 개발되기도 했다. 80년대 비디오 게임 위기라 불리는 ‘아타리 쇼크’를 지나, 게임은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고, 2010년대 이후 모바일 게임 역시 게임에 중요한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2. 게임과 문화 향유권     

 이렇듯 기술의 발전에 따라 그 형태가 보드게임, 카드게임, 컴퓨터 게임 등으로 변화해 왔지만, 인류는 인류 역사의 처음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게임을 즐겨 왔다. 앞서 설명했듯 게임은 사람만이 즐긴다. 사람이 동물과 구분되는 요소 중 하나가 게임이라고 본다면,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것에’ 게임을 즐길 권리가 포함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게임을 즐길 권리 역시 ‘천부 인권’ 즉, 국가가 보장해 주어야 할 기본권의 하나로 보아야 한다. 다만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도 게임을 즐길 권리는 적극적인 기본권으로 많이 논의되고 있지는 못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21 게임 이용자 실태조사’에 의하면 전 국민의 71.3%가 게임을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같은 조사에서 ‘게임 할 권리’와 깊은 연관이 있는 2022. 1. 1. 최종 폐지 예정인 셧다운 제도에 대한 인식은 그와 달랐다. ‘셧다운제’는 16세 미만의 청소년이 오전 0시부터 6시까지 인터넷 게임에 대한 접근을 완전히 제안하는 제도로, 해당 대상자의 게임 할 권리를 크게 제한한다. 그런데도 연령 제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38.8%로, 연령 제한을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 20.6%보다 더 높게 나타나고, 제한 시간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33.2%), 시간제한을 완화하거나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의견 (27.0%)보다 높게 나타났다. 전 국민의 70% 이상이 즐기지만, 게임은 무엇인가 청소년에게 해롭고, 사람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라는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예전보다는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나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아직 사회에 만연하고, 긍정적인 여가 문화로 인식되고 있지는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필자도 한 명의 게이머로, 다양한 게임을 플레이하는데, 같이 게임을 즐기는 이용자를 보면 게임에 대한 호오와 무관하게 게임을 하는 자신에 대해 만족하는 경우를 보는 건 드물다. 쉽게 말해 ‘할 게 없으니까 이 게임이라도 하는 거지’라는 식이나, ‘여유가 있으면 내가 게임 말고 더 좋은 취미가 있겠지’라고 생각한다. 뭔가 게임을 하면서도 게임 자체를 죄악시하는 분위기가 일정 부분 있다는 것이다. 그건 어렸을 때부터 ‘게임’은 ‘학업’이나 기타 등등에 방해되는 것으로 교육받아 온 영향일 수도 있고, 한국에서 특히 한국의 대중문화는 그 사회적 영향력과는 무관하게 낮게 평가되는 것이 그 원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문화에 대한 적대감은 게임에서만 처음 나타난 것은 아니며, 사회의 변화에 따라 인식이 변화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대중음악이 그렇다. 지금이야 우리나라 대중음악을 나타내는 K-POP, K-dol이 대세고, 걸 그룹, 보이 그룹과 같은 문화에 아무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위상이 대단하지만, 90년대만 해도 소위 ‘대중가요’는 ‘딴따라’로 불리며 제도권으로부터 무시당하고 배척당했다. 지금은 전설로 불리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1992년 처음 출연한 TV 프로그램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K-POP은 점차 발전했다. K-POP의 발전은 단순히 댄스음악에만 국한한 것이 아니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다양한 팬들을 반겼다. 지금도 K-POP이라고 하면 아이돌 그룹의 노래가 먼저 떠오르지만, 80년대 감성을 자극하는 발라드, 최근에 오디션 프로그램 등으로 인기 있는 트로트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시장에 존재한다. 이러한 다양한 음악의 발전이 음악 문화를 더욱 발전시켜 날로 위상이 높아지는 현재의 K-POP을 만든 것이다.


 한국의 게임은 안타깝게도 그러하지 못하다. 물론 ‘산업으로서의 게임’은 다른 어떠한 문화산업보다 그 영향력이 큰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용자 사업자 정부 모두 각자의 이야기만을 하는 관계로 그 산업의 크기에 맞지 않는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이용자는 게임을 하위문화로만 인식해, 게이머로서 어떠한 권리가 있고, 어떠한 점을 주장할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정부는 나타난 약간의 부작용도 모조리 없애버리려는 강력한 규제 방식을 가지고 있기에, 다양한 게임이 나타날 수 있는 토양을 없애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사업자는 다양한 게임의 장르를 시도하기보다는 규제 없이 이익을 최대화할 수 있는 주류 게임의 모델을 따라가려는 현상이 강하다. 이는 다시 이용자의 선택 제한으로 돌아와 악순환을 만들고 있다. 이러한 틀을 끊고, 게임계에서 다양한 게임이 공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앞서 설명한 다양한 인류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게임은 처음부터 문화를 만든 문화 그 자체다. 따라서 게임 역시 문화를 즐길 권리의 대상이 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헌법은 명시적으로 문화권을 인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전문에서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라고 규정하고 있고, 제11조에서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여 간접적으로 모든 문화를 차별 없이 즐길 권리를 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도 이러한 취지에서 2004년 5월 27일 결정 2003헌가 1 사건에서 ‘국가의 문화 육성의 대상에는 원칙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문화 창조의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에서 모든 문화가 포함된다. 따라서 엘리트 문화뿐만 아니라 서민 문화, 대중문화도 그 가치를 인정하고 정책적인 배려의 대상으로 하여야 한다.’라고 판시한 바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현행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제1조는 목적 규정에 “이 법은 게임 산업의 기반을 조성하고 게임물의 이용에 관한 사항을 정하여 게임 산업의 진흥 및 국민의 건전한 게임문화를 확립함으로써 국민경제의 발전과 국민의 문화적 삶의 질 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정하고 있다. 국가가 특정 문화를 금지하거나 혹은 지원하는 등으로 국가 종속성을 갖게 되는 것을 지양하고 오히려 문화에 대한 자유와 자율성, 다양성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하는 문화영역의 자기규율, 자기 규제(자율 규제:Self-regulation)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은 앞서 설명한 평등한 문화의 관점에서 당연히 인정될 것이다. 그러나 현행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의 태도는 오히려 국가 주도적인 문화의 설정과 확립을 두고 있다. 그러다 보니 게임에는 제약이 많다. 연령 규제는 무엇이거니와, 폐지될 예정이지만, 게임 제공에 대한 제한, 게임에 대한 내용 규제, 나아가 광고까지도 꼼꼼하게 규제 대상으로 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게이머들은 당연히 게임을 하나의 문화상품으로 즐긴다는 관점에서 접근하지 못할 것이다. 사업자 역시 자신이 문화산업을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기보다는 단순한 기업가로 생각하고, 규제에 순응하는 태도를 바탕으로 게이머들이 원하는 게임보다는 정부 규제를 피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드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그 과정에서 다시 정부는 새로운 BM 등에 대해 규제를 시도하고, 이용자는 다시 이 과정에서 피해를 보게 되는 현상이 반복된다.     


3. 결론     

 필자는 90년대 후반 당시 유행하던 PC 통신을 취미로 즐기곤 했다. 매우 생소한 채팅이나 게시판과 같은 개념을 부모님께 설명하면, 부모님은 ‘실제로 사람 만나는 것도 아닌데 쓸데없이 그런 거 왜 하느냐’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20여 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부모님도 휴대전화로 유튜브를 보고, 댓글을 남기신다. 90년대 후반 나의 행동은 요즘 말로 긱(Geek)한 행동이었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런 행동을 그렇게 평가하지 않는다. 하지만 필자와 같이 통신을 즐기던 사람이 현재 인터넷이라는 다양한 서비스를 만드는 데 일정 부분 이바지한 점이 있을 것이다. 또한, 그러한 선구자들이 다양한 콘텐츠를 인터넷에서 생산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정보의 보고’로서의 인터넷이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물론 앞서 설명했듯 이미 전 국민의 71%가 즐길 정도로 대중적인 문화상품이 되었지만, 게임은 미래에서도 중요하다. 모든 것의 온라인화를 모토로 하는 ‘메타버스’의 기초가 되는 기술이기도 하다. 게이머들은 자신이 게임을 즐긴다는 데 있어 자부심을 느낄 필요가 있다. 20년 뒤에 ‘메타버스’가 사회에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을 때, 게이머들은 ‘그때의 게이머들이 있어 현재의 메타버스가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게이머들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게임을 더 즐기고, 기업에 그러한 게임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하고, 그 기반이 마련될 수 있도록 정부의 과도한 규제를 막기 위해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1) 틱택토(tic-tac-toe)는 두 명이 번갈아 가며 O와 X를 3×3판에 써서 같은 글자를 가로, 세로, 혹은 대각선상에 놓이도록 하는 게임이다.

2) 게임의 공급 과잉 및 저질 게임의 범람으로 인해 미국의 게임 업계가 연쇄 파산한 사건을 말한다. 




나현수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 사무국장 

2021년 게임문화포럼 투고분과 위원

2012.3 ~ 2021. 5 :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 정책팀장

2021.5 ~ 현재 :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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