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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임문화포럼 Dec 24. 2021

게임 개발자가 10살 아이를 키우면서 ...

게임 개발자가 10살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

 저는 게임 개발을 하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게임 하는 것 또한 즐기고 있습니다. 그렇게 39살이 된 지금은 슬하에 10살짜리 아들을 두고, 함께 게임을 즐기는 평범한 가정의 가장입니다. 하지만, 가족 구성원 모두가 게임을 즐기고 디지털에 친화적인 것은 아닙니다. 아이의 엄마는 여타 다른 엄마들처럼 게임을 즐기지 않습니다. 


 게임을 즐기지 않는다고는 하나, 게임문화에 적대적인 것으로 해석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중립적인 입장에서 아이의 행동에 관하여 판단을 할 수 있어 오히려 좋은 부분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평소 저와 아이의 취미를 이해하려고 노력해 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났을 10년 전, 그러니까 2012년 즈음입니다. 편안한 육아를 위하여 스마트폰의 영상을 보여줄 것인지에 관해 고민했었습니다. 요즘 부모들에게는 매우 큰 고민일 것입니다. 영상문화를 전공하고 게임으로 박사학위까지 마무리한 전력이 있는 제게 아이의 엄마는 전적으로 디지털 육아의 결정권을 위임했습니다. 호기롭게 알겠다고는 했지만, 실전경험이 전혀 없는 상황인지라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말로만 떠들었지, 실제 할 줄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앞으로 어떻게 게임과 디지털을 조절할 수 있게 교육해야 하는지에 관한 현실적인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flickr @Gabriel Kay

 그 당시에는 ‘게임중독’이라는 말도 안 되는 허상이 온 세상을 뒤덮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지금은 쏙 들어갔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제가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과거 아이들이 게임에 몰두한 시간만큼 현재는 유튜브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게임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하는데, 게임 하는 시간은 줄고 영상 소비 시간은 늘어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영상에 중독된 것일까요? 영상중독은 80년대에 없어진 화두입니다. 이걸 들고나오면 지금 유튜브에 흠뻑 빠진 실버세대는 모두 영상 중독자가 됩니다. 오늘 1시간 영상을 보면 내성이 생겨 2시간 이상 보지 않으면 성에 차지 않을 것이고, 더욱더 강한 자극을 찾아 유튜브 알고리즘을 헤매고 다닐 것이라고 주장해야 합니다. 유튜브에 하루라도 접속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집중을 하지 못하는 금단증상이 나타난다고 떠들어야 합니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이게 게임을 중독으로 몰고 있는 논리입니다. 게임은 이것과 무엇이 다를까요? 우리는, 아이들은 단지 더 재미있는 것을 찾을 뿐입니다. 지금의 세상은 게임만큼이나 재미있는 영상 콘텐츠가 넘치게 되었고 이를 소비하는 시간이 더 늘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사실 자기통제(self-control)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세상에는 싫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바로 자기통제입니다. 이는 모두가 아는 것처럼 매우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힘든 것을 회피하고, 재미있는 일을 먼저 하려고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세상에 공부보다 재미있는 게 너무나 많아서 벌어진 일입니다. 공부가 가장 재미있었으면 정말 평화로웠을 것입니다. 


 저는 아이와 소통하는 전반적인 방향성을 이 자기통제에 두고자 노력을 했습니다. 막상 말은 이렇게 해도 자기통제를 기르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저조차도 잘하지 못하는 것을 어찌 아이에게 강요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부부는 정말 많은 고심 끝에 한 가지만은 끝까지 아이에게 지켜주자고 다짐했습니다. 바로 “약속을 지키는 것”입니다. 약속을 지키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부모가 된 이후에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들어주지도 않을 약속을 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아이 앞에서 약속을 지킬 것처럼 이야기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지나가는 일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지키지 않는 약속은 매우 큰 벌로 다스리고, 부모가 지키지 않는 약속은 흐지부지 넘어가는 일이 부지기수입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약속하는 것의 대부분은 일정한 자기통제를 통해 목적을 달성하면 이에 따른 보상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밥 먹을 때 유튜브나 스마트폰을 보지 않고 식사행위에 집중하면 좋겠다는 부모의 욕구가 있다고 합시다. 아이가 말을 알아듣기 시작하고 의사 표현을 하기 시작할 즈음부터 가장 먼저 시작하는 전쟁입니다. “밥을 다 먹으면 스마트폰을 줄게”라는 약속을 하고 이 의사가 충분히 전달되었다는 것을 아이의 끄덕임으로 확인합니다. 이때 아이는 재미있는 것을 포기하고 해야 하는 것(밥을 먹는 행위)에 집중하고 자기통제를 스스로 기르게 됩니다. 그리고 그 힘든 자기통제를 수행한 후에 따라오는 보상을 기다립니다. 정말 아이가 양껏 노력해서 밥을 다 먹었다면, 스마트폰을 할 기회를 줍니다(아이가 바로 스마트폰을 하고 싶어서 몇 숟가락 이후에 바로 스마트폰을 달라고 한다면 단호하게 아직 약속한 양을 지키지 못했다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런데 밥을 다 먹은 이후에 스마트폰을 주지 않는다면? 혹은 어느 날은 주었다가 어느 날은 기분에 따라 주지 않게 된다면? 아이는 힘들게 자신을 통제한 것에 따른 보상을 빼앗긴 것과 다름이 없게 됩니다. 이러한 경험이 쌓이고 나면 부모의 약속은 공허한 외침이 되고, 아이는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어 떼를 쓰게 됩니다.


 부모에게도 약속을 지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귀찮고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합니다. 내가 자녀에게 한 약속이기 때문에 사실 어긴다고 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은 마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게 쌓이다 보면 결국은 부모의 실패한 자기통제를 그대로 아이가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작은 약속조차 어기지 않고 지켜나가는 모습을 자녀에게 보여주고자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아이를 키운 지 10년이 됐습니다. 이제는 제법 부모와 자녀가 하는 약속의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아이도 자신이 약속을 어길 시 부모도 약속을 지키지 않으리라는 것을 명확히 알고 있습니다. 숙제나 가방 싸기 등 자신의 책임을 늘 다해야만 즐거운 시간이 보장받는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물론 그 틈이 느슨해지는 날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잠시일 뿐 10년이란 세월이 쌓아 놓은 약속이라는 신뢰는 다행히도 자기통제라는 이름으로 두터워지고 있습니다. 


 게임이 재미있는 것은 극복할 수 있는 난이도를 제공해주고, 실력이 클 수 있을 만큼 재도전의 기회를 주는 것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 반복의 시간만큼 유저는 실력이 늘게 되고, 그때 따라오는 성취감과 몰입감은 게임을 즐기는 바탕이 됩니다. 사람은 잘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고 즐기게 됩니다. 공부도 독서도 기술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시간을 쓰고 실력을 쌓아둔 사람은 자기 일을 누구 보다 즐기면서 하게 됩니다. 낮은 난이도부터 서서히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은 게임에서 배울 수 있는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야만 하는 것을 하기 위해 시간을 써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좋아하는 것을 적당히 즐길 줄도 알아야 합니다. 유튜브, 게임, 만화 등은 하지 말라고 지적해서 해결되는 일이 아닙니다. 공부보다 재미있는 일은 세상천지 어디에도 손쉽게 찾을 수 있으니까요. 그 재미와 의무를 스스로 조절하는 방법인 자기통제는 처음부터 완성할 수 없는 심리적 기제입니다. 아이가 게임에서 성취감을 느끼는 것처럼, 작은 일부터 하나씩 해낼 수 있게 응원을 해준다면 분명 부모보다 훌륭한 마음가짐을 지닌 아이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아이와 함께 더 오랜 시간을 함께하다 보면, 제 앞에는 더 어렵고 새로운 도전이 계속해서 나타날 겁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이와 함께 고민하여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아이가 성장한 만큼 같이 커가는 부모가 되는 것이 제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미디어 콘텐츠에는 그 콘텐츠의 의도와 의미를 이해하는 능력, 리터러시(literacy)가 매우 중요합니다. 이건 언론이 같은 현상을 두고 다른 해석을 하는 이유를 파악하는 능력이기도 하며, 영상 매체가 어떤 의도와 맥락으로 영상을 편집하는지를 아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게임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게임이 어떠한 장르이고 어떤 능력을 요구하며, 그것들을 내가 어떻게 활용해야 좋은지 등을 아는 능력인 거죠. 

flickr @Alyson Karpovich

 지금까지의 10년은 자기통제를 위한 노력이었다면, 앞으로 10년은 게임을 즐길 때나 영상을 볼 때 이러한 리터러시의 관점에서 아이와 함께 고민하고자 합니다. 자기통제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세상을 보는 눈이니까요.



김민철

(주)해긴 개발실 차석

2021년 게임문화포럼 투고분과 위원

전 ㈜피드백루프 대표

전 KBS 도전골든벨 사회분야 자문위원 

현 ㈜해긴 개발실 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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