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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임문학관 Dec 26. 2019

세계가 들려주는 스토리

게임 이야기 #1.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

1999년에 출시된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 는 게임 역사상 최고의 스토리텔링을 선보였다는 찬사를 많이 받는 게임이다. D&D 류 게임답게 엄청나게 방대한 양의 텍스트와 높은 자유도를 자랑하기도 한다. 이 게임이 이토록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거론된다. 단순한 선과 악의 대립을 넘어선 인간 본질을 다루는 심오한 소재, 대사 하나하나에 개성 있는 성격이 묻어 나오는 다채롭고 깊이 있는 캐릭터들,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다양하게 펼쳐지는 멀티 시나리오 형식의 내러티브, 그리고 (전투는 역시나 상당히 투박한 편이긴 하지만) 나름 이 대서사시를 헤쳐나가는데 크게 걸림돌이 되지 않는 직관적인 시스템이다.


호평에는 주인공 '이름 없는 자' (The Nameless One)의 매력도 한몫을 했다


이 여러 가지 요소들에 대해 나도 동의를 하지만, 내가 생각했을 때 플레인스케이프 스토리텔링의 가장 큰 장점은 ‘세계관’에 있는 것 같다. 보통 스토리를 평가할 때 기승전결의 구조를 보게 되는데, 그 기승전결을 받쳐 주는 세계의 매력도 스토리텔링에 큰 영향을 끼친다. 수많은 게임들이 반지의 제왕에서 영감을 받은 일관된 ‘중세 판타지’ 세계관을 공용하며 그 속에서 여러 멋진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여러 게임 스토리를 보다 보면 이야기는 달라도 세계는 비슷한 경우가 많다.


이야기에 흠뻑 빠지게 도와주는 것은 그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는 세계의 힘이 크다


세계관을 새롭게 창조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해리 포터, 왕좌의 게임, 웨스트월드 등, 독특한 개성으로 사랑받는 컨텐츠들을 보면 대부분 개성 있는 세계관을 자랑한다. 그런 점에 있어서 플레인스케이프는 그 당시 하나의 공식으로 통했던 D&D 의 판타지 캠페인 세계관에서 벗어나서 전혀 다른, 약간 그로테스크할 수 있지만 너무 새롭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미지의 이세계인 Planescape 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 속에선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도 일단 그 자리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다.


내러티브가 들려주는 스토리가 있다면, 그것을 둘러싼 세계가 들려주는 스토리도 있다고 생각한다. 기괴한 영안실에서 깨어나 머리만 공중에 떠다니는 해골을 만나면서 시작되는 이 게임이 가진 가장 강력한 매력이 바로 그것이다. 한 발짝 한 발짝 게임을 진행하면서 느껴지는 플레인스케이프만의 압도적인 분위기 자체가 스토리를 끌고 가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나에게도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는 최고의 스토리텔링을 선보인 게임 중 하나다. 그리고 주인공인 ‘이름 없는 자’ (The Nameless One) 가 들려주는 자아 통찰적 철학은 게임 시나리오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제작자의 엄청난 고뇌가 담긴 이야기라고 생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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