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베의 여름은 혹독했다.
존재하는 사물 하나하나에
거칠게 부서져 난반사된 태양빛의 입자들이,
눈 속에 파고들어 왔다.
까마득하게 혼미했다.
후텁지근한 바닷바람은,
페릴루스가 생애 마지막으로 내질렀을 법한
외마디 비명 같은 신음이 올라오게 했다.
어둑하고 텁텁한 놋쇠 황소 같은 창고가
내가 일했던 작업장이었다.
창고에는 차곡차곡 쌓인 수 천 장의 초록색 상자들이 가득했다.
해야 했던 일은 간단했다.
어딘가에서 사용되었다가 되돌아온 상자들을
하나하나 펼쳐 쓰레기를 빼낸다.
그리고 스티커 등의 이물질을 떼어내고 다시 접은 다음,
팔레트에 차곡차곡 다시 쌓아 올리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지극히 단순한 노동이었지만,
체내의 모든 수분을 모조리 짜내고 다시 채우기를
두어 번은 반복해야 하루 일과가 끝났다.
징글징글할 정도로 지겹기 짝이 없는 노동이었다.
여기 모인 열 명 남짓한 애들은
며칠 또는 몇 주의 간격으로
각기 다른 꿈을 가지고 이곳 고베에 모여들었다.
몇몇은 장기 여행자 또는 방랑자 같은 것이었고 몇몇은 유학생이었다.
그리고 대부분 일본어에 서툴렀다.
그래서 회화가 어느 정도 완성되기까지는
몸으로 때우자고 의기투합하며 시작한 일이었다.
공교롭게도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여름 방학을 해 버려서
공부도 못하고 중노동을 해야 했던 우린
'이게 뭐냐'며 볼멘소리를 했지만
공부는 잠시 미루고 타국을 온전히 음미할 수 있다는 기분 좋은 설렘은 감추지 못했다.
일을 해야 했던 곳은 환경이 좋지 않았다.
환경이 후지다기보단
일본 특유의 문화가 낯설었다.
게다가 식당도 없었고 맘놓고 물 마실 곳도 없었다.
정수기가 한 대 있었지만 그곳에서 우릴 관리하는
머리가 희끗한 일본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물 마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차별 같은 건 아니었다.
단지 너희를 위한 정수기가 아니기 때문에
너희 맘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게 이유였다.
치사하기보단 그 사고방식이 특이했다.
그래서 다들 각자 밥과 물을 기숙사에서 챙겨와야 했다.
매일같이 밥을 하고 물을 끓여 오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도시락도, 물도 넉넉잖게 준비해오다 보니
일하는 내내 줄곧 배가 고프고 목이 말랐다.
자판기에 있는 100엔짜리 생수조차 부담스러웠고
500엔짜리 도시락은 분에 겨웠다.
남자애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땀을 연신 훔치며 박스 청소에 열중인 여자애들에게
괜스레 짠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 환경이었지만,
우린 뭐가 그리 즐거운지 늘 웃었고 늘 시끄러웠다.
일본 할아버지는 그런 우릴 귀여운 듯 바라보면서도
한국 애들은 떠들기만 하고 일은 하지 않는다며
혀를 끌끌 찼다.
늘 쾌활하고 에너지가 넘치지만
눈치 없는 은철은 할아버지의 요주의 대상이었다.
그런 은철이가 부끄러우면서도
우린 은철이로 인해 늘 신이 났다.
일을 마치고나면,
포트타워가 있는 항만으로 가서
나란히 앉아 여름 밤바람을 맞았다.
일본에서 손꼽히는 관광지답게
고베항은 늘 현지인들과 외국인들이 뒤섞여
이국적인 분위기를 물씬 뿜어냈다.
남자애들은 목 늘어진 티에 슬리퍼 차림이었고
여자애들은 아무렇게나 머리를 질끈 묶었다.
호기심으로 가득 찬 관광객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태생부터 현지인이었던 것마냥 묘한 자부심 같은 것을 느꼈다.
사진 속에서 동경하며 바라보던 새빨간 포트타워가
집 앞 우체통처럼 친근하다.
호화 유람선과 오페라하우스 같은
반구 형태의 오리엔탈호텔을 부러운 듯 바라보며,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을 얘기했다.
각자 홀로 느껴왔던 외국 생활에서의
기분 좋은 고독과 팽팽한 긴장과 낭만 가득한 설렘을
한가운데 뒤섞어가며 공유했다.
선 긋기나 낯선 것에 대한 경계심은 없었다.
십 년 된 친구처럼 그저 열린 감정들로
서로의 마음 속에 깊이 들어왔다가 또 나가곤 했다.
사진을 찍는데도 혈안이었다.
현지인(?) 체면에
짧게 머물다 가는 관광객들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며
속에서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진한 감정을 박제하려 안간힘을 썼다.
사진 속의 해맑음이 중학교 졸업 사진 같다.
내색은 않지만 다들 느끼고 있지 않았을까.
강렬하지만 가느다란,
진하지만 그리 깊지는 않은,
이 순간에 충실할 뿐인 인연.
내일이면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잊고 살게 되겠지만
오늘 이 순간이 못내 아련한
어설퍼서 더 아쉬운 어떤 인연.
그렇게 따뜻했던, 뜨거웠던 여름이 가고
계절이 바뀔 즈음, 어학교의 생활도 종료가 되었다.
몇몇은 그대로 고베에 남았고,
누군가는 홋카이도로, 또 누군가는 도쿄로,
후쿠오카로, 오키나와로 일본의 곳곳으로
떠나 갔다.
한 명 한 명을 떠나 보내며 다음을 기약했다.
고베에 끝까지 남은 내가
마지막으로 홋카이도로 떠나는 난정을
고베공항에 데려다 주었다.
바로 집에 들어오는 게 어쩐지 싫어서
공항 근처에 있는 가구 소품 전문 매장인
이케아로 갔다.
그리고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을 샀다.
넓지 않은 방에 물건 몇 가지를 채워 넣었더니
마음이 한껏 풍성해지는 느낌이다가
두 장의 편지지에 빽빽이 적힌
난정의 마지막 인사말에 마음에 구멍이 난 것 같다.
새로운 시작이라고 생각하니
처음 일본에 왔을 때의 두렵고도 생경한 마음이
다시 재발하는 것 같다.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니라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 켠이 서늘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고베에 남은 나도 기숙사를 떠나
새로운 집과 새로운 일을 구해야 했다.
처음 일본에 건너올 때도 혼자였지만
지금 다시 혼자가 되었다.
학교 수업과 각자의 일을 마친 후
맥도날드에서 새벽까지 함께 책을 읽을 사람들이 없어졌다.
자전거로 30분 거리의 해수욕장에 하염없이 달려가
김과 미역을 머리에 두르며 해수욕을 하고,
주말이면 고베 시내랄지 오사카 근교로,
문득 짧은 소풍을 떠날 사람이 이젠 없다.
헤픈 웃음과 진지한 포옹,
야한 농담과 건설적 토론도 없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갖가지 재료로 요리를 하고,
이름 모를 일본 술을 마시고,
각자의 방으로 돌아갈 힘마저 소진해 버린 채,
한 곳에 뒤엉켜 자면서도
문란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순수했던,
그리고 수수했던 얘네들이 문득 보고 싶을 것 같다.
가을이 되니 해가 짧다.
바람 끝도 조금은 차갑게 느껴진다.
한국에서 가져 와 방치해 두었던 가을 옷가지들을 꺼냈다.
작년에 입었을 땐 터질 것 같던 와인색 가디건이 헐렁하다.
전혀 의식하지 못했는데 거울을 보니 볼도 핼쑥해진 듯,
날렵한 모습에 기분이 좋다.
세 달째 털끝 하나 건들지 않은 너풀거리는 장발이
고뇌하는 카피라이터 같다.
영화 ‘핸섬수트’에서 수트를 입고
전신이 스타일리쉬하게 뒤바뀌어버린 주인공처럼
내 모습이 기분 좋게 낯설다.
‘유예되었던’ 시작이 ‘비로소’ 시작된 듯,
헝클어졌던 마음이 정돈이 된다.
주전자의 물을 끓이고 믹스커피를 한 봉지 찢어
컵 속에 털어 넣었다.
다 끓은 물을 그 위에 붓고는 휘휘 저었다.
그리고 이력서를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집에서 가까운 장소와 적절한 시급을 따져보며
며칠째 생활정보지를 뒤져보아도
내가 가야 할 곳이 도무지 눈에 띄지 않았었다.
이젠 기다리지 않고 몇 통의 이력서를 다 적으면
산노미야로 갈 것이다.
면접 약속도 잡지 않았고, 와보라고 하는 곳도 없었지만
일하고 싶은 가게가 보이면 무작정 들어가 볼 생각이다.
더듬더듬한 일본어로 나를 고용하라고 채근할 것이다.
세 달 전 처음 학교에 입학했을 때에 비해
일본어 실력이 월등히 나아진 건 아니다.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난 것도 아니다.
택시 기본료도 전철 요금도
양파값도, 자판기 음료값도
다 그대로다.
변한 게 있다면 조금 더 뻔뻔해졌고,
아주 많이 살고 싶어졌다는 것이다.
감정의 소요로 마개 빠진 개수대의 회오리 따위에도
휘말려 들어갈 것 같다.
그래서 지금보다 더 많이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있어야 할 공간의 경계를 확장하고 싶다.
앞으로 나는 이곳에서
또 어떤 영감 가득한 사람들을 새로 만나고
자극을 받고 감동하게 될까.
얼마나 더 새로운 의미를 찾고,
벼린 감각을 일깨우고,
충만해질 수 있을지가
너무나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