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츠코, 출산하다>

by 박승오


평범하고 사소한 소재,

일직선으로만 가는 단출한 시제,

재미있는 이야기가 보편적으로 갖추고 있는

서사 구조와 굴곡이 거의 안 느껴지는

평면에 가까운 이야기 구조

일반인인가 싶을 정도로 매력 없다가,

별 것 아닌 일에도 경망스럽다가,

영화 끝날 때쯤 묘하게 정들어

헤어지기 아쉬워지는 캐릭터들.

리드미컬하면서도 쨍한 하이톤의 언어,

90년대 주말의명화 같은 붕 뜬 화면.

저예산 일본 독립 영화가 주는 마이너한 매력은 찾아보면 더 있겠지만

머리가 복잡하거나, 감정이 푸석할 때,

늘 찾게 되는 중독성이 있다.

내가 이해 못 하는 B급 감성인 걸까.

소심했다가, 갑자기 분기탱천했다가,

엉겁결에 희망찼다가,

종국에 서로 위로하고 한 마음이 되는

인물들의 심리에도 행동에도 공감이 안 되지만,

불멍하듯, 물멍하듯

멍하니 보게 되는 그런 매력이 있는 것이다.

오래전에 저장해 두었던,

<미츠코, 출산하다>를 이제야 보게 되었다.

제목과 다르게 진지한 주제의 일본 영화도 참 많지만,

이 영화는 딱 제목 그대로다.

주인공인 미츠코는 색깔이 강하다.

정확히 얘기하면 공감 능력이 부족하고

안 좋게 고집스럽다.

삶의 계획과 목표도 없다.

그저 바람 따라 이리저리 오가며

근근이 살아갈 뿐이다.

그런 그에게도 강하게 집착하는 것은 있다.

그것은 ‘멋’이다. 영화에서는 멋이라고 표현되지만

심의를 의식한 표현인 듯하고,

‘본새’나 ‘간지‘라고 일컫는 것이 더 적절할 듯하다.

한마디로 ’본새 넘치고 간지 나는 삶‘을 동경하고,

그렇지 못한 것을 경멸한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궁극적인 ‘본새와 간지’는

남을 위해 희생할 줄 알고

남에게 도움을 줄 줄 아는 태도이다.

이 순간부터 개연성은 툭 끊어져 버리지만

어차피 잘 직조된 영화는 아니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이진 않는다.

그리고 미츠코가 그래야만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영화의 주제이기 때문이다.

미츠코는 누군가의 아이를 임신하고,

15년 전에 잠시 살았던 판자촌으로 돌아온다.

시간이 멈춰버린 듯 낙후되고 발전하지 못한

도쿄의 어느 판자촌.

처음 사업에 실패한 부모를 따라

이 판자촌에 들어설 때도 다시 떠날 때도

그리고 15년 만에 돌아온 후에도

여전히 가난한 마을과 주민들.

누구 하나 번듯해 보이지 않는다.

덥수룩하고 흐릿하다.

말 한마디 걸면,

한 시간은 붙잡혀 말을 들어줘야 할 것 같은

결핍의 냄새가 강렬하다.

하지만 그곳엔 소녀였던 미츠코에게 사랑을 고백했던 요이치가 지금도 여전히 있다.

죄다 사회의 변방에 놓인 그들이지만

그들은 서로를 보듬는다.

주인집 할머니는 과거 지로에게 월세를 깎아주며

가난한 그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것을 계기로 지로와 요이치는 현재까지도

기력이 쇠한 주인집 할머니의 병수발을 하며

얼마 남지 않은 듯한 여생을 정성껏 돌본다.

요이치는 미국에서 임신을 하고 돌아온 미츠코에게

통장을 건넨다.

15년 전의 고백,

그때 했던 약속에 책임을 지겠다면서.

멋지다며 감동하던 미츠코는 요이치의 식당에 나와 일을 돕기 시작하며

요이치의 멋짐에 나름의 방식으로 화답한다.

그리고 그 안에는 사랑도 있다.

지로는 카페 여사장을 짝사랑하고,

여사장 또한 지로를 사랑한다.

하지만 지로는 아들처럼 여기며 키워온 요이치에게 소홀하지 않겠다며

끝끝내 그와의 교제를 거부한다.

그러면서도 늘 그를 흠모하며 바라본다.

요이치는 15년 만에 만난 미츠코를

망설임 없이 다시 사랑한다.

미츠코가 품어온 아이의 존재는 아랑곳하지 않고.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소외와 결핍으로 점철된 인생들이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할 수밖에 없었다.

서로 위로하고 도움을 주며 정을 나누는 모습은

어쩐지 아름답다기보다 애잔하다.

하지만 분명히 따뜻하다.

믿고 싶은 동화 같다.

모두가 자기 분량만큼의 삶을

적당히라도 만들어 나간다면 참 좋겠지만,

모두가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일 인분의 삶조차 온전히 살아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평범한 사람들의 시선엔

경멸과 부담과 연민 같은 여러 감정들이

복잡하게 공존한다.

얼마 남지 않은 연민마저

말라가는 듯한 지금.

쳐다보다 외면할 바에야

애초에 등져버리는 게

차라리 속 편한 지금 이 시대에,

화면 속 그들이 사는 모습은

허상 같은 환상으로나마

각질 같은 푸석한 마음에 큰 울림을 준다.

삶이라는 건 결국 그래야 하지 않을까?

모두가 몸 쪽까지 꽉 찬 행복을 누리기는 힘들더라도,

내 옆 누군가의 안녕과 안위를 걱정하고,

인간이 나눌 수 있는 가장 예쁜 말로

서로를 격려하는 것.

그렇게 살아가는 인생이, 그리고 삶이

미츠코의 예쁨만큼 더 아름답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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