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통의 고통

by 박승오


2013년 여름, 오사카에 가기 위해 김포공항에 갔을 때였다. 일찌감치 공항에 도착해 탑승 수속을 마쳤다. 공항의 공기 속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뿜어내는 끈적끈적한 감정들과 이국적인 냄새들이 가득 녹아 넘실댔다. 그곳의 공기를 깊게 들이 마시니 긴장이 풀리면서 기분이 널을 뛰기 시작했다.

그때 노란 머리의 한 외국인이 내게 다가왔다. 그는 나에게 김해 공항에 가는 방법을 물었다. 설마 공항 이름을 착각했던 걸까. 지금 당장 출발해도 네다섯 시간은 족히 걸릴 텐데, 그가 원래 타려고 했던 비행기도 놓칠 것이 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안타까운 마음에 앞선 것은 모종의 불편함이었다. 누가 봐도 한국인인 나에게 이 자는 왜 당연하다는 듯 영어로 말을 거는 걸까. 그의 질문이 끝남과 동시에, 나는 그에게 쏘아붙이듯 한국어로 김해공항에 가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그때 내가 그 노란 머리 외국인에게 느꼈던 불편한 감정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아마도 언젠가 티브이에서 봤던 한 장면이 떠올라서였을 것이다. 한국에 관광을 온 어떤 외국인과 한국인이 서로 대화하는 모습이었다. 외국인은 한국인에게 시종일관 영어로 질문했다. 영어에 능숙하지 못했던 한국인은 영어로 된 답변을 준비하느라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단어 하나하나 애써 끄집어내며 조잡하게 이어 붙여 나갔다. 오만한 표정의 외국인과 삽살개 같은 표정의 한국인의 대조적인 모습이 마음속에 부정적인 이미지로 깊숙이 각인됐다.

외국에 가게 되면 가장 직접적으로 겪게 되는 어려움이 있다. 언어에 관한 문제다. 한국에서라면 손쉽게 처리했을 문제들이 외국에서는 넘어야 할 과제가 된다. 장기 체류 목적으로 일본에 처음 건너갔을 때, 구청에서 외국인 등록을 하고, 학교에 입학 신청을 하고, 은행에서 계좌를 만드는 일련의 과정은 진 빠지는 일이었다. 부동산에서 방을 구할 땐, 사실과 사기가 범벅이 된 일본어로 덤터기를 씌우려는 직원과 신경전을 해야만 했다. 레스토랑에 취업했을 땐,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었다. 일본어 초급 교재에서는 본 적 없던 갖가지 주방 기구와 일본식 식재료들의 이름을 외우는 데 보름이 걸렸다. 일본에 오기 전 공부했던 6개월 간의 일본어가 관광은 몰라도 원활한 생존의 문제까지 해결해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런 류의 불통보다 뼈아픈 건 따로 있었다. 인간관계의 문제다. 함께 우주를 그리고 싶은 상대방이 있어도 먼지 같은 어휘력에 번번이 가로막혔다. 편견일지도 모르지만, 낮은 수준의 언어 능력으로는 관계의 깊이까지 도모하기가 힘들다고 생각했다. 구사할 수 있는 양만큼의 어휘가 곧 나였다. 그리고 이해할 수 있는 상대방의 언어가 상대방의 전부라는 사실은 상대에게 그 이상 접근하기 어려운 두터운 벽처럼 느껴졌다.

생존이 걸린 문제든, 사람 사이 관계의 문제든, 불통의 불편과 오판은 온전히 외국인인 내 몫이었다. 친구가 되고자 했던 몇몇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나에게 친히 번역기를 검색하는 불편을 감수해 주지 않았다. 내가 자신의 말을 얼마나 잘 이해하는지 확인하며 말을 건네는 사람도 없었다. 일본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머릿속에서는 보고 듣는 모든 한국말을 일본어로 번역하기 위해 에너지를 낭비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런 상황 속에서 만났던 노란 머리 외국인의 태도는 그렇잖아도 꼬여 있는 내게 외국어로 인한 스트레스를 한 번에 쏟아내게 하는 타깃이 되게 했다.

그 이후로 시간이 많이 흘렀고, 생각도 바뀌어 갔다. 그날 공항에서 내가 노란 머리 외국인에게 보였던 태도는 전적으로 미숙했다. 그리고 내가 그에게 내보인 공격성과 티브이에서 본 삽살개의 굴종이 본질적으로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자격지심이다.

영어의 위상은 우리나라에서 한국어보다 월등하게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해방을 전후로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대한민국에서 영어는 권력과 계급, 생존을 결정하는 도구였다. 그리고 영어 학습을 강요당해 왔던 시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와 민족에 대한 우월성을 알게 모르게 내면화해 갔다. 삽살개는 자존심 상하는 그 사실에 열등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인정했고, 나는 그것에 열등을 감추려는 방식으로 인정했다. 공격성의 다른 면은 결국 두려움이고, 나와 삽살개의 서로 다른 반응은 정확히 동전의 앞뒤였다. 그것을 받아들이자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우월과 열등의 구분이 왜곡된 역사가 만들어 낸 왜곡된 의식임을 깨닫게 되면서 자격지심의 문제는 해결됐다.

노란 머리 외국인이 영어로 나에게 말을 건넸던 것은 자신의 언어가 우월하다고 느껴서가 아니라, 그저 가장 보편화된 소통의 도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언어에 관한 막연한 관념 또한 변해 갔다. 언어는 곧 존재의 총합이고 정체성이자 자존이지만, 근본적으로 언어는 도구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언어가 가진 다양한 속성 중 몇몇에 해당할 뿐이다. 그 속성들은 배타적인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언어가 가진 기능성을 앞세운다고 해서 내 근본이 상처받거나 부정되지 않는다. 언어의 속성을 십분 활용할 그때그때의 상황과 그에 따른 선택만이 존재한다.

그래서 지금은, 더 이상 우리나라에서 만난 외국인에게 그가 알아듣지 못할 한국말을 투척하지 않는다. 내가 상대방 국가의 언어를 조금이라도 더 안다면 기꺼이 그 언어를 사용한다. 모르는 단어를 동원해야 한다면 번역기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것은 지극히 실용의 문제이다. 불통은 외국인에게나 나에게나 서로에게 피곤한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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