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빛, 미야모토 테루

by 박승오

소설의 무대인 효고현의 아마가사키는 주인공인 유미코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이다. 그곳에서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만났던 남편과 결혼 생활을 시작하고 아이도 낳았다. 유미코는 남편에게 지금 이 순간이 "어렸을 때와 비교하면 훨씬 더 행복해졌" 다고 말하며 삶이 주는 작은 행복을 고백했다.

아마가사키는 그녀에게 따뜻하고 풍요로운 곳은 아니었다. 유미코에게 그곳은 늘 가난과 결핍의 냄새가 눅진하게 풍겨나오는 곳이었다. 터널 한 가운데 위치한 허름한 목조 아파트에는 터널의 흙벽을 따라 악취가 기어 들어왔다.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막노동을 했다. 우연히 어머니가 일하는 곳에 찾아갔다가 한 남자에게 헤픈 대우를 받으며 일하는 것을 목격하고는 충격을 받는다. 가난했고 또 평범했던 그녀에게 아마가사키는 즐거움보단 차가운 현실을 대면했던 곳이었다. 끊임없이 가난을 곱씹게 하는 그곳이 지겨웠을 법도 한데, 한 번쯤은 그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을까? 하지만 삶의 규모와 관성에 따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유미코와 그의 가족들은 그곳을 떠나지 않는다. 다행히 유미코는 그런 아마가사키에서도 결혼을 하고 가족을 이루며 가까스로 행복을 발견하게 됐다. 그런 유미코가 조금은 더 행복해졌어도 좋았으련만, 그 행복은 찰나에 불과했다. 남편이 죽은 것이다.

남편은 유이치를 낳고 삼 개월 만에 석연치 않은 이유로 자살을 해버린다. 유미코로서는 남편의 자살 동기에 대해 짐작조차 못했다. 남편의 죽음에 대해 납득할 수도 없었다. 남편이 느꼈을 법한 마음의 궤적을 상상하고 뒤따라가 보지만 그녀로서는 답이 나오지 않았다. '정신이 나간 것이 아니었을까', 세상이 '나를 한꺼번에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흐느끼지도 울부짖지도 못한 채 오직 컴컴한 땅속에 가라앉아 버린' 유미코는 결국 평생 살아왔던 아마가사키를 떠나게 된다. 아마가사키의 아파트가 지겨워서가 아니었다. 러브호텔에서 시트를 갈아 끼는 일이 힘들어서도 아니었다. 남편의 흔적이 가득 베어있는 아마가사키의 풍경과, 소리들과, 냄새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것이다.

유미코는 그렇게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세키구치 다미오라는 요리사와 재혼을 한다. 그리고 오쿠노토의 소소기라는 해변 마을로 떠나 오게 된다. 그렇게 유미코는 새로 맞이하게 된 가족들과 부대끼며 또 한번의 새로운 삶을 일구어 나간다. 유미코는 불현듯 맞닥뜨린 불행을 이겨내고,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치유하게 됐을까? 전 남편이 죽은 지 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를 잊지 못하고 '혼'이 빠진 사람처럼 혼잣말을 되뇌이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 상당히 오랜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아이가 돌아올 시간이라며 말을 끝맺는 그녀의 모습 속에 맘 놓고 무너지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 그녀의 삶이 안타깝다. 그리고 그러한 위태로움 속에서도 덤덤한 모습으로 일상을 지켜나가는 그녀의 모습에 작은 희망이 보이기도 한다.

이 소설에 대해 이동진 영화 평론가는 “시간의 소금기가 묻어 있는 아름답고 쓸쓸한 문장들”이라고 평했다. 그리고 그러한 평에 대해 소설의 번역자인 송태욱은 "이동진의 평은 이 소설에 대한 나머지 다른 말들은 모두 사족으로 만들어버린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동진의 평에 공감했고, 송태욱의 말에 동의했다. 그럼에도 이렇게 굳이 사족을 덧붙이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

이 작품을 되도록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이다. 서른 두 살의 유미코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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