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 관한 기억

by 박승오

일주일 후면 설 명절이다. 요즘의 명절은 어릴 때와는 달리 더 이상 특별한 행사는 아니다. 식당도 온라인 쇼핑몰도 모두 스톱이 되어버리고 왠지 황량하게 느껴지는 텅 빈 도로를 보게 하는 어쩌면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지는 여러 날의 휴일이 되어 버린지 오래다. 나에게 명절이라는 건 조부모님들과 외조부모님들이 계신 시골에 가서 인사와 안부를 나누고, 친척들을 만나는 날에 불과했지만, 대개 그렇듯 우리 집안에서는 한 번쯤의 열외조차 상상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었고 매년 정기적으로 치러지는 행사 치고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엄숙한 의식 같은 것이었다.


사실, 명절이라고 하면 명절 그 자체보다 시골로 떠나는 날, 집에서 출발해서 할머니 댁에 당도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이 더 선명하다. 엄마와 아빠는 아침부터 분주했다. 집안 어른들께 드릴 선물을 이것저것 챙기셨고, 찾으면 안 보이는 편지 봉투는 도대체 어디에 뒀느냐며 서로 가벼운 말다툼을 하셨다. 엄마는 평소엔 잘 하지도 않으시던 드라이기로 머리를 한껏 추어올렸고, 이 옷 저 옷을 번갈아 입어보며 한껏 들뜬 표정이다. 아빠는 무덤덤하게 어제 입었던 옷을 또 빼들었다가 엄마에게 있는 대로 핀잔을 듣고 구시렁거리며 깊이 쳐박아둔 아끼는 양복을 빼어 드셨다. 그리고는 어제 은행에서 뽑은 조카들에게 나누어 줄 세뱃돈이 빳빳한 신권이라며 싱글벙글하신다. 어차피 누군가의 손으로 흘러 나가버릴 그 돈이 빳빳한 신권이어서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그렇게 뿌듯하셨나보다. 그때까지도 형과 누나와 나는 이불 밖에서 나오지 않다가 엄마가 차에서 이동하며 먹을 음료와 간식을 준비할 때서야 부랴부랴 일어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두 시간여 동안의 준비를 마치고 아빠는 그 어느 때보다 명랑하고 경쾌하게 차에 올라타셨다. 그리고 형은 듬직하게 보조석에 자리했다. 뒷좌석엔 엄마와 누나가 나를 사이에 두고 양옆에 앉으셨다. 그 설렘과 흥분과 따스함이 지금도 또렷한 감각으로 발끝에서부터 올라오는 느낌이 든다.

시골인 강진까지는 두 시간 가까이 걸렸던 듯하다. 지금 시점에서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멀다고생각되지는 않는 시간인데 그땐 참 멀었고, 차들도 참 많았다. 그래서 한 번 그렇게 왕복하는 일이 더할 나위 없이 진 빠지는 일이었다고 생각했다.

외할머니 댁에 가면, 꼭 먼저 와 계시던 짓궂은 이모들 몇몇이 모든 어른들께 돌아다니며 일일이 세배를 하게 하셨다. 그리고 세배를 하지 않으면 세뱃돈도 주지 못하게 하겠다며 웃으며 으름장을 놓으셨다. 안 그래도 숫기 없는 성격에 오랜만에 보는 외숙들 그리고 좁은 집에 빼곡하게 들어찬 사촌들의 모습이 낯선 데다가 아버지가 운전하시는 차에서 자다 깬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라 마냥 쭈뼛쭈뼛했고 비몽사몽간에 맞이하는 친척들의 반김이 어쩐지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일 년에 몇 번 되지 않는 떼일 걱정 없는- 우리 집은 공탁 제도가 없었다- 수금(?)의 기회를 놓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마지못해 허리를 조아리며 세배라는 의식을 치러냈다. 이러한 의식이 사실은 거나하게 취해 지갑을 열던 어른들의 기분 좋은 호기이자 호의였고, 나중에서야 아이들에게만 좋은 피해자 없는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시골에서 성장하지 않은 나에게 시골이라고 하는 곳이 늘 마음에 품고 그리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문득 명절을 앞둔 이맘때쯤이면 그때 그곳에서의 풍경과 서정이 자연스럽게 환기된다. 아주 협소한 형태의 시간과 공간이 뚜렷하고도 명징한 감각적 이미지로 마음속에 남아 있다. 명절이 되기 며칠 전부터 느껴지던 엄마와 아빠 사이의 서슬 퍼런 긴장-그 땐 몰랐지만-, 온 가족이 함께 집을 떠나 어딘가로 향한다는 여행 직전과 유사한 설렘과 기대, 친척 어른들의 왁자지껄한 술판과 반가움과 설렘이 교차하는 한껏 고조된 기분 좋은 언성, 좁디좁은 시골집에 일시에 서른 명 가량이 북적대다 보니 어느 방엘 가도 맘 편히 홀로 있을 수 없었던 불편과 난처함, 할아버지 댁에서의 1박 후, 다음날 외할머니 댁으로 떠나기 직전까지 은근하면서도 팽팽했던 할머니, 아빠, 엄마 삼자 구도의 치열한 기싸움-그 땐 몰랐지만-. 그리고 지루하고도 지루하기만 했던 그 끝 모를 지루함. 삼 십 년 전의 경험이라고 하기엔 비현실적으로 뚜렷하고, 뚜렷한 서정에 비해 기억의 총량이 지나치게 적다. 매년 반복되는 똑같은 스토리였고, 매번 덧칠되어 오며 쌓인 감정의 덧입힘 때문이리라.


며칠 간의 시골 생활을 마치고 가족들이 차에 올라타는 순간이 되면 할머니는 늘 눈물을 보이셨다. 어린 나이였어도, 매번 반복되는 똑같은 풍경이었어도, 매번 나도 모르게 코가 시려왔다. 차가 출발하고 나면 올 때와는 다르게 엄마와 아빠는 말씀을 거의 하지 않으셨다. 그때 그 두 분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창문 밖으로, 백미러로 보이는, 서서히 멀어지는 할머니의 모습을 아빠와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셨을까. 그땐 헤아릴 생각조차 하지 못했지만, 그때 할머니만큼의 연세를 드신 엄마 아빠를 보면, 그때 엄마와 아빠만큼의 나이가 된 지금의 나는 이젠 알 것 같다.

차에 올라타서 얼마 되지 않아 지쳐버린 나는, 다리는 누나의 무릎에 올리고, 머리는 엄마의 무릎을 베고 금방 잠에 들어 버렸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하며 슬며시 눈을 떠보면 아빠는 운전을 하고 계셨다. 한참을 잤다고 생각한 후 일어나 바라본 바깥 풍경은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해지고 온 세상이 누레졌지만 아직도 차는 끝없는 귀경차들의 행렬 속에 그대로 정지해 버린 듯 움직일 줄 모른다. 그리고 그때까지도 아버지는 운전을 하고 계셨다. 나는 자도 자도 피곤한데 아빠는 그래도 안 피곤한 줄 알았고, 아빠니까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전엔 시골에 간다는 게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음식도 안 맞았고, 생활 전반이 불편했다. 무엇보다 아무 것도 할 게 없는 그 지루함이 몹시 괴로웠다. 하지만 요즘엔 아빠가 성묘라도 하러 시골에 가자고 하면 두 말 않고 따라 나선다. 나에게 시골에 대한 귀소 본능 같은 건 없다. 공기가 좋고 푸릇푸릇한 산과 들을 바라보는 청량함이 좋지만, 그건 우리 나라의 어느 시골이나 다를 바가 없다. 그것보다는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이 어느 순간 문득 좋아져버렸다. 여전히 조금은 불편한 아빠지만, 할 말이 없는 상태가 장시간 지속되는 것은 일생 동안 겪어왔던 더 이상 불편하다는 사실조차 까먹게 만드는 불편하지 않은 불편함이지만, 그저 함께 시간을 보내고 하나의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고 있는 그 상태가 애틋해져버렸다. 아니면 얼마 남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이나 본능적인 예지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이 더 맞는지도 모른다.


시간은 늘 반복된다. 명절도 매번 주기적으로 꼬박꼬박 돌아온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주관해 온 늘 반복되지만 엄연히 한정된, 명절이라는 역설적인 그 시간을 지금은 그분들을 이어 받아 아빠와 엄마가 주관하신다. 그 주관 아래 형과 누나와 내가 일궈낸 모든 식구들이 동참한다. 지금은 어린 일곱 살의 로빈이와 세 살의 결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명절이라는 매번 반복되는 그 행사를 지겨워할 수도 있고 시간이 아깝다고 느낄 수도 있고, 도식적이고 형식적이라고 느끼며 그 행사에 동참하는 것을 꺼려 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을 잘못된 생각이라고 꾸짖을 마음은 추호도 없다. 왜냐하면 시간이 알려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땐 어쩌면 조금은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을 수 있지만 그게 어쩔 수 없는 인생의 아이러니라면 받아들일 수밖에. 나와 아내가 명절을 주관하는 그때가 올 것이고 아이들이 우릴 대신할 때가 올 것이다. 시간은 늘 엄정하고 엄숙한 태도로 흘러간다. 인간에게 생의 덧없음을 잔인하게 일깨워준다. 어쩌면 그 유한함 속에서 가족과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가치를 일깨워주는지도 모르겠다. 명절이라는 것은 어쩌면 추상적인 시간이라는 속성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인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다른 기념일들처럼.. 그 속성이 무엇이든, 무엇을 위한 행위이든, 더 많은 명절을 아빠와 엄마와 함께 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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