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정의

by 박승오


시인 허형만은 '사랑은 생각의 분량'이라고 했다. 사랑에 대한 정의라고 하기엔 다분히 자의적이고, 은유라고 하기엔 원관념이 뭔지 모르겠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의 분량이 많아지는 걸까, 누군가에 대한 생각의 분량이 많아지는 것, 그걸 사랑이라 부르는 걸까."

무엇이 먼저이고 그 다음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인과 관계는 더더욱 아니다.

"그럼 비례라고 해야 하나? 그럼 뭐가 X 축인 거지?"

물리학에서야 X축과 Y축을 구분하는 것이 의미 없는 일이겠지만, X축의 위상에 큰 의미 부여를 하는 나에겐 그것을 결정하는 문제는 너무나 중요하다. 중의적인 표현에 생각이 많아지다 어렵게 내린 결론은 그 둘은 동치라는 것이고, 사랑에 관한 최고의 정의라 생각하게 됐다.


좋은 사랑은 사랑과 존중의 엇비슷한 균형 속에서 유지된다. 사랑과 생각의 분량이 동치라면 올바른 사랑의 필요조건은 존중이다. 존중이 결여되었다고 해서 어떠한 형태의 사랑도 아니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결코 올바른 사랑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사랑과 존중의 불균형은 지속 가능한 올바른 사랑을 불가능하게 한다. 사랑이 결여된 존중의 극단엔 영혼 없는 상담원이 있고, 존중 없는 사랑의 반대편 극단엔 정신병 걸린 스토커가 있다. 올바른 사랑은 그 둘의 균형을 오롯이 유지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유한한 사랑을 조금이나마 더 길게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사랑의 약화는 만남의 순간부터 서서히 시작되지만, 사랑의 종결은 존중의 포기에서 즉시 실현된다. 그래서 사랑의 유효 기간이 3년이라는 어느 심리학자의 학설을 식어가는 사랑에 대한 변명으로 삼기엔 어쩐지 비겁하다. 사랑은 통제하기 어려운 호르몬의 화학 작용이기도 마음의 상태이기도 하지만, 의지와 작용의 표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살아있는 유기체이자 생명체여서 언젠가는 소멸한다. 분간하기 어려운 또 다른 형태로 변화하기도 한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의 의의는 애초에 영원히 지속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소멸하는 순간들과 그 순간의 마지막까지 끝까지 상대방을 존중하는 데 있다. 그리고 사랑의 완성은 결국은 건전한 이별이다. 이별하는 순간에도 예의를 지켜야 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이별하는 순간까지도 서로를 존중했던 이들은 사랑을 끝내고도 사랑을 지속한다. 아름다운 이별의 상대방은 평생 어떤 사람의 마음속에 남게 된다. 살아가다 문득 생각하게 되고, 이따금 그 사람의 앞날을 위해 축복하게 한다. 이전에 비해 턱없이 작아진 생각의 분량이겠지만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름다운 이별 따위 개나 줘버릴 말장난이라고 일갈했던 누군가의 말도 전혀 수긍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러한 태도를 지향해야 하는 건, 누군가를 오랫동안 사랑하고, 이별하고, 또 누군가에게 긴 시간 동안 기억된다는 건, 인생을 조금은 더 아름답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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