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나는 몰랐다

5부. 오늘도, 퇴고 중입니다

by 윰글

2025년의 시작을 해운대 바닷가에서 보내고 싶었다. 모래사장이 길게 뻗은 이곳에 오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같은 여고와 대학을 나온 두 선배를 만나 차로 30분 정도 달려 선배가 사는 아파트에 주차를 했다. 그리고 20여 분을 걸으니 해운대 해수욕장이 보였다.

날이 갑자기 쌀쌀해져서 사람들이 없을 줄 알았는데 내 예상은 빗나갔다. 해변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운동을 하는 사람, 아이들과 노는 부모, 그리고 외국인들도 섞여 있었다. 하늘은 갈매기가 채우고 있었다. 가족들끼리 나온 듯한 사람들이 배구공을 아이들과 주고받으며 폭죽을 터뜨리기도 했다. 날이 추워서인지 갈매기들은 날아다니기보다는 모래사장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짧게 깎인 뒤통수가 보이는 모습이 마치 입대를 앞둔 신병들 같았다.

그곳을 지나 백여 걸음쯤 더 걸어가자, 아버지와 아들이 갈매기에게 먹이를 주고 있었다. 갈매기는 아이의 머리 위를 원을 그리며 날았고, 아버지는 아이를 보호하려고 아이의 머리를 손으로 가렸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잠시 서서 그 장면을 봤다.


‘우리 아이들이 저 나이 때, 나는 뭘 했지?’

그 당시 나는 이 시간이 얼른 지나가서 아이들이 빨리 컸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던 것 같다. 육아의 행복보다는 괴로움에 빠져 있었던 나. 지금 돌아보면 안타까운 일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순간을 허망하게 보내다니. 시간은 한 번 지나면 다시 오지 않는 법인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도 언젠가 내가 후회할 시간이 되지는 않을지 다시 한번 돌아본다.




불교에서는 '삶은 괴로움이다'라고 말한다. 이는 고통스럽다는 느낌을 강조하기보다는, 사람이 산다는 것이 녹록하지 않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이를 알아야 그다음 길이 열린다는 뜻은 아닐까. 평범한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은 그가 느끼는 괴로움이 줄어들지도 모른다. 파랑새를 찾아 떠난 사람이 알고 보니 그 파랑새가 집 안에 있었다는 것을 알았던 동화의 내용처럼.

사람은 현실에서 행복을 놓칠 때가 있다. 나 역시 그랬던 것 같다. 아이가 내게 찾아왔고, 그 아이가 건강하게 자란다는 사실, 그 아이가 내게 보이는 행복의 순간을 놓친 건 아닐까? 지난 일에 대해 누구의 잘못인지를 따지고, 나 혼자의 판단이 정확하다고 느끼고, 주변 사람들을 그 기준에 따라 분류했다. 내가 정답인 것처럼. 이런 나를 또 다른 누군가는 평가하고 있었을 텐데. 생각해 보면 나의 이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내 편과 적’

내 편을 만들기보다는 적을 만들지 말자는 말을 실천하지 못하고, 40대까지는 고민했던 것 같다.

‘나의 판단이 과연 옳은가’

‘내가 본 저 사람의 모습이 진실인가’

‘눈앞에 있는 저 사람을 과연 내 곁에 둘 것인가 말 것인가’

이런 의미 없는 고민을 해왔다.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지만, 이런 나의 모습을 알아봐 주지 않는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을 원망했다. 그러다 보니 나의 시간은 의미 없이 흘러갔고, 내 마음속은 원망으로 가득 찼다. 행복하게 여길 만한 일이 주변에 가득했지만, 그 순간이 내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설거지를 할 때도, 아이가 끊임없이 말을 걸 때도, 남편이 퇴근할 때도 반갑지 않았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화가 났고, 아이가 마음대로 되지 않아 또 화를 냈다. 매일이 버거웠고 하루가 길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30년은 불행할 것만 같았다. 하루가 천일처럼 느껴졌고, 그런 하루가 영원히 계속되면 어쩌나 걱정했다. 그러면서도 화를 내고 있는 나 자신에게 익숙해져 버린 느낌이었다. 결국 이런 날들로 인해 내 마음속은 어둠으로 가득 찼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간이 아깝다. 설거지를 해야 할 만큼 가족들이 잘 먹고, 아이가 내게 마음을 열었으니 말을 걸었을 텐데, 그 행동에 "엄마는 피곤해"라고 말했다. 남편이 성실하게 자기 일을 잘해 주는 것도. 같은 일이라도 나의 생각에 따라 보고 느끼는 감정은 달라진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이 두 아이들도 금방 자라서 내 품을 떠날 텐데, 함께하는 시간을 추억 쌓기의 기회로 여겼어야 했다.


사람이 인생을 두 번 산다면 실수나 실패는 덜 하겠지. 어른들 말을 들으며 '자다가 떡이 생긴다'는 말을 수없이 들으며 자랐다. 그런데 그 말뜻을 깊이는 몰랐던 것 같다. 내가 나이가 점점 들어갈수록 그 말이 옳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을 먼저 살았다는 것, 그것은 실패를 먼저 했다는 뜻이 될 수도 있지만 그만큼의 경험이 쌓였다는 뜻이다. 그러니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인생의 노하우가 얼마나 귀한가. 나는 인생 선배님들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직접 만나든, 그들이 남긴 글이나 책을 통해서든.

힘들고 지친 시기는 지나간다. 그 당시에는 어두운 색으로 나를 물들이지만, 지금은 안다. 긍정적인 생각과 대처가 내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썩은 사과’

결혼한 딸이 아버지의 집을 방문했다. 평소 좋아하시던 사과를 사 온 딸은 거실 테이블 위에 검은 봉지 하나를 올려놓는다. 그리고 봉지에서 사과 하나를 꺼내 아버지에게 내밀었다. 아버지는 그 사과를 보시더니 한쪽이 썩어버린 모습에 그 자리에서 바로 버리려고 했다. 이 모습을 본 딸이 말했다.

"썩은 부분만 도려내면 먹을 수 있는데 왜 버리세요? 아깝게."

"그래, 너 참 똑똑하다. 사과는 썩은 부분만 도려내고 먹으려고 하면서, 남편은 왜 통째로 버리려고 하니?"

"네? 무슨 말씀이세요?"

"남편이 너에게 잘하는 부분도 있잖아. 그런데 잘못하는 부분만 보고 지금 헤어지려고 하는 것이 아닌지 묻는 거란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놀랐다. 생각지도 못한 사실이었다. 나는 남편의 좋은 부분을 보지 못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전체라고 생각한 건 아닌가. 내가 그 순간 드라마 속에 나오는 딸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우리의 일상은 대부분 평범하고 행복하다. 나는 그것을 크게 봐야 했다. 남편도, 아이도, 그리고 나의 삶에서도. 혹시 나는 이 드라마 속 딸처럼 사과의 썩은 부분을 전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좋은 부분은 놓치고 나쁜 부분만 본 건 아닌지. 편안한 일상보다는 지나간 일에 괴로워하거나, 오지 않은 미래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보면서 나 스스로를 괴롭힌 건 아닌지 모르겠다.




지금의 나는 그때와 달라졌다. 두 아이가 내게 보이는 미소 하나, 흘러간 하루의 순간에서도 감사하려고 노력한다. 학교에서 돌아와 설거지나 집안일을 하는데 아이가 학교에 있었던 일을 조잘조잘 전할 때, 그런 모습에서 일상의 평화를 느낀다. 그리고 에너지를 얻는다.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하고, 피곤할 때 침대에 누워 쉴 수 있다는 사실. 평범하지만 늘 나에게 주어지는 시간에 미소를 짓는다. 돋보기로 들여다보듯 나의 일상에서 행복할 만한 거리를 찾고 있다.

‘나의 지금, 이 시간을 사랑하자.’

놓치기 쉬운 순간들을 들여다본다. 이 시간을 행복으로 칠하고, 매일, 그리고 지금, 나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넌 잘하고 있어. 이렇게 살아가는 거야."


작은 눈으로 나의 삶을 꼼꼼히 들여다보자.

번개처럼 지나갈 수 있는 나의 하루의 속도를 조절하며 살아낸다.

토요일 연재
이전 21화감정의 중용(中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