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부. 오늘도 퇴고 중입니다
'中'(중)은 가운데, 치우치지 않음을 뜻하고, '庸'(용)은 평범함, 일정함을 의미한다. 중용은 '감정이나 행동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상황에 따라 가장 적절하고 조화로운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중용을 '지나침이나 모자람이 없는 것'이라 설명했고, 《중용》이라는 별도의 유교 경전도 존재한다. 말만으로 부족해 경전까지 만들어졌다는 것은, 그만큼 중용이라는 덕목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보인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다는 게 무슨 뜻일까?'
과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다는 것. 흑백으로 옳고 그름을 가르거나, 감정이 극으로 치닫지 않는 상태. 스펙트럼의 개념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까. 누군가는 이런 느낌을 주는 사람을 '회색'에 비유할지도 모른다.
살다보면 감정이 극으로 치달을 때가 있다. 연인과 헤어지거나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전 재산을 탕진해서 빚더미에 오를 때. 물론 상상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런 순간이 나에게 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때 끓어오르는 감정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극으로 달리지 않고,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상태로.
"저는 아무거나 좋아요."
선택을 요구받는 상황에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자기 색을 포기한 듯 보인다. 그래서 '불분명하다'는 지적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도 딱히 원하는 것이 없을 때, 그냥 상대방에게 맞춰주려는 마음으로 이렇게 말할 때가 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어느 하나를 고르지 않는 내가 '비겁한가'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다른 사람이 이런 태도로 일관한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서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중용은 '회색'이고 '비겁함'을 말하는 걸까. 나는 이 말에 반대한다. 무던한 길을 선택하는 것도 개인의 선택이다.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런 무덤덤한 태도를 선택하는 일이 어렵지만,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 절감한다. 모든 사람이 자기 생각만을 고집한다면, 전체의 의견 조율은 어려워질 것이다. 그래서 중용은 상황과 평화를 유지하는 '해결책'이 아닐까.
"유미야, 나랑 서당에 다닐래?"
"갑자기 웬 서당이야?"
내 친구는 자연과학대학 석사과정을 마친 후, 6년 동안 공부한 학과를 뒤로하고 진로를 바꿨다. 한의학과로 진학하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대학 입시를 다시 치렀고, 한의대에 한 번에 합격했다. 이를 축하해주려고 만난 자리에서 친구가 내게 제안한 말이다.
서당은 전래동화에나 나오는 곳 아닌가. 현재는 어떤 곳에 있는지, 무엇을 배우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10년이 넘도록 사귄 친구의 제안이라 뿌리칠 수 없었다.
"그래, 그러자."
그렇게 해서 우리는 친구가 졸업한 대학교 앞에 있는 서당에 다니게 되었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복도를 따라 경사가 60도는 되어 보이는 계단을 한 층 오르면 한 평 남짓한 골방이 나왔다. 10여 명의 서생(서당에서 한문과 유학 경전을 배우는 학생)이 동그렇게 앉으면 꽉 차는 크기의 방이었고, 일어설 때 허리를 펴면 머리가 닿을 정도로 천장은 낮았다.
그곳에서 일주일에 한 번 모여 《논어》, 《맹자》, 《중용》 등의 한문 원서를 교재로 삼아 공부했다. 한자를 한 글자 한 글자 뜻과 음을 익히고, 전체 문장과 단락을 해석했다. 영어에 직역과 의역이 있듯 한문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글자의 뜻을 해석하고, 나중에는 그 문단의 내용을 파악했다. 나는 이렇게 확산되는 느낌이 좋았다. 숨겨진 보물을 찾아내는 기분이랄까
서당에는 훈장님 한 분이 계셨다. 그분이 읽어주시는 대로 따라 읽고, 그 뜻을 질문하시면 답을 했다. 처음에는 이런 수업 방식이 낯설었다. 한자도 제대로 모르는 내가 문장 해석까지 해야 한다는 것이 버거웠다. 하지만 하루 이틀 지나면서 익숙해졌다. 모르면 모른다고 이야기해서 웃고, 문장의 뜻을 훈장님이 말씀해주시면 그 말씀으로 나의 생각을 재구성했다. 그중에서도 중용이 끌렸다. 중용 수업을 시작하시면서 훈장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감정이 풍부한 사람은 인기가 많고, 사람들이 좋아하죠?"
"네, 아무래도 그렇죠."
"그런데 그거 알아요? 이렇게 좋은 사람은 수명이 짧아요. 감정이 풍부한 만큼 건강을 해치거든요. 그래서 감정 기복이 적고, 저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이 오래 살아요."
그 말씀이 충격적이었다. 기쁘고, 슬픈 감정을 느끼면 그만큼 몸이 상한다는말인가. 벌써 3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 당시 훈장님의 이 말씀은 어제 들은 것처럼 생생하다.
‘마음을 고쳐먹다’
서당을 다닌 이후 나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흥분하거나 화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물론 쉽지 않다. 물밀 듯이 밀려오는 화를 주체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떠올리는 문장이 있다.
'그럴 수도 있지.'
이 말을 떠올리거나, 말로 하면 마음이 가라앉는 걸 느낀다. 물론 이 문장 하나로 드라마처럼 화가 식지는 않는다. 하지만 마음의 온도는 내리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이 문장을 작은 나무에 적어서 주방 전기스위치 옆에 걸었다. 기분이 나쁘거나 화가 오를 때면, 얼른 그 자리 앞으로 가서 문장을 소리 내어 읽는다. 이것으로 일상의 마음의 온도를 조절한다. 나의 삶의 중용을 위해서.
어린 시절의 나는 옳고 그름을 따졌다.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는 에너지를 쓰지 않고, 그르다고 생각하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었다. 이게 무서운 일인지도 모르고. 나라고 언제나 옳은 것도 아닌데, 그때는 어찌 그리 용감했을까. 일명 '사회적 왕따'가 될 수 있는 지름길을 달렸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웬만한 일은 이해가 된다. 어떤 사람을 만나든 너그러운 마음이 생겼다. 그러다가 불쑥 화가 날 때면 나만의 문장을 읊조린다. 그리고 깊은 '심호흡'을 다섯 번 한다. 이것 또한 나만의 중용으로 가는 방법이다.
사람과 사람의 생각이 일치하기가 쉬운가. 그러니 생활 속에서 갈등은 일어난다. 그 갈등의 원인을 어디서 찾고, 어떻게 조절하느냐가 우리의 숙제다. 지금은 양쪽이 맞춰가야 하는 과정이라고 여긴다. 내가 정답은 아닐 테니까.
"넌 고집이 너무 세다."
"나는 고집이 안 센데."
중학교 다닐 적에 엄마가 내게 하신 말씀이다. 이 말씀에 끝까지 '고집이 없다'고 주장하는 나. 하지만 내가 고집을 피운다고 해서 상대방이 변하느냐. 그것도 아니다. 반대로 남이 나를 바꾸는 것은 가능할까. 그러니 내 생각을 남에게 강요할 필요가 없었다. 양극에 있던 생각도 조절한다면 중간 지점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이런 것이 '조율'의 과정이라고 본다.
“제 생각에는 이런 건 어떨까 싶어요.”
“우리가 생각이 다른 건 자연스러운 일이죠.”
이런 말로 불편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린다. 이것은 나와 상대의 생각 사이에서 중간 지점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눌만한 이야기다.
‘정답보다 적절한 답을’
흑백논리는 버리자. 과연 세상일에 정답이라는 것이 있을까. 일어난 상황과 관련된 사람을 고려해서, 적절한 답을 찾는 것이 옳다고 본다. 우리가 매일 그렇게 살아왔듯이.
이런 마음을 갖고 사람을 만나니, 화가 날 일이 줄어들었다.
'자기 생각이 옳다고 여기면, 화가 난다.'
라디오에서 들은 말이다. 이 말에 동의한다. 다르다는 것이 화를 낼 일은 아닌 듯하다. 오히려 그 다름 속에서 냉정한 판단을 하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려고 노력했다. 내가 차분해지면 상대방도 따라오는 걸 느꼈다. 여기까지만 와도 반은 성공한 듯.
이런 과정은 나부터 실천하려 한다. 내 안에 화를 일으키지 말고 적절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 극으로 치닫지 않는 것. 그것이 차분함으로 나를 들여보내는 방법이었다.
"저는 화가 많이 나요. 이 화를 없애는 방법은 없을까?"
"그런 방법은 없어요. 제일 좋은 건 화가 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강연장에서 법륜 스님이 하신 말씀이다. 화를 일으키고, 그 화를 무마시키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화가 나지 않는다면 모두 해결된다. 나에게 깨달음이 되었다.
감정의 중용
극단으로 치우치지 말자고 다짐한다. 아이가 등교를 거부할 때, 남편이 내 말을 따라주지 않을 때, 몸이 힘들 때. 수없이 밀어닥치는 현실의 고민 속에서 반드시 유지해야 하는 '마음의 평정심'. 나는 이를 위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용이라는 덕목을 떠올린다. 얼른. 그리고 반복한다.
마음의 파도는 늘 일어난다. 그 파도를 피할 수는 없다. 그 순간 '가운데'를 찾는다면, 적어도 폭풍우는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서당의 그 골방에서 배운 지혜가, 30년이 지난 지금도 내 삶을 지탱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