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부. 오늘도 퇴고 중입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어떻게 그 사람을 파악하면 좋을까? 이에 대한 정답은 없어 보인다. 상대가 내게 보여주는 행동, 말투, 표정을 보며 그 사람의 됨됨이를 가늠하지만, 이 또한 정확하다는 보장이 없다.
"MBTI가 어떻게 되세요?"
업무 워크숍 자리에서 누군가 내게 한 질문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MBTI 검사가 뭔지 몰랐다. 그 후 이 검사에 관심이 생겼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MBTI를 물어봤다. 그리고 전화번호를 저장할 때는 이름 옆에 괄호를 열어 그 안에 검사 결과를 표시했다.
한 번은 후배가 카톡으로 나에게 선물을 보냈다. 그 선물을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고 오랜만에 올라온 선물 목록을 캡처해서 보내주었는데, 그 후배 이름 옆에 MBTI가 적혀 있었다. 그걸 보고 후배는 "그건 뭐예요?"라고 하며 웃었다. 이 정도면 내가 MBTI에 집착한다고 오해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이런 나의 행동은 새롭게 만나는 사람을 빠르게 파악하고 싶은 나만의 방법이다. 이를 통해서 그 사람의 관심사나 대화 방식을 예측해 보고, 나의 예상과 실제 상대방의 모습을 비교해 본다. 이런 과정이 나에게는 소소한 행복이다.
덕분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줄었다. 새로운 만남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상대방을 깊이 이해하는 데에는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어린 시절에는 이런 어색한 상황에서 주로 혈액형이나 별자리를 물어봤다. 이렇게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은 유행을 타는 듯하다. 요즘은 그 도구 중 하나가 MBTI인 셈이다.
MBTI는 행동이 아닌 내면의 심리적 경향을 측정하는 검사라고 한다. 자신이 느끼기에 더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심리 기능을 찾아내는 것이다. 예를 들면 타인의 감정이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감정형(F)인 내가 논리적 분석을 중시하는 사고형(T)처럼 실패 원인을 규명하는 회의에 참여할 수도 있다. 혹은 계획적인 판단형(J)이라도 융통성이 요구되는 자리에서는 상황에 따라 개방적인 인식형(P)으로 행동할 수도 있다. 이런 모습은 일부 영역에서의 부분적인 변화일 뿐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성격 유형은 바뀌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스스로 공감형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늘 나의 이 생각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하루는 딸아이와 MBTI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런 대화가 오갔다.
"엄마는 아무리 봐도 대문자 T예요."
"아닌데, 엄마는 검사하면 늘 F가 100% 나오거든."
"절대 아닐걸요. 다시 검사해 보세요."
교사라는 직업은 특성상 학생들의 감정을 헤아리고 공감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나 역시 공감형이라고 주장하고 싶었던 걸까? 하지만 우리 두 아이는 내가 절대 F일 리가 없다고 단언했다. 왜 그러냐고 묻자 딸아이가 예전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제가 '오늘 너무 속상해서 빵을 샀어'라고 엄마에게 말했을 때 엄마가 뭐라고 하셨는지 알아요?"
"내가 뭐라고 했는데?"
"'빵이랑 속상한 게 무슨 상관이야?'라고 말씀하셨어요."
이 질문은 MBTI를 예측하기 위한 간단한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해서 빵에 집중하면 T, 속상하다는 감정에 집중하면 F라고들 말한다. 이렇게 분류해보니, 내 대답은 여지없이 T였다. 상대방이 어떤 상황을 말하든 나는 주로 "그러니까 이렇게 해 봐",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같은 말을 자주 한다. 문제 해결에 주안점을 두는 것이다. 결국 검사 결과와 상관없이 나의 실제 대화 방식은 사고형에 더 가까웠던 것이 맞는 듯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이들에게 공감형 엄마가 아니라고 판정을 받아서 미묘하게 상처받았던 기억이 있다.
신기하게 2년 전부터는 내가 검사를 할 때마다 결과는 똑같이 나왔다. 네 가지 기준으로 16가지 성격 유형을 나누는 이 MBTI 검사는 어느 정도의 타당성은 있다고 느낀다. 내가 느끼기에 상대방이 냉철하고 이성적이다 싶으면 검사 결과는 T를 가리킨다. 반대로 나의 말에 공감을 잘해 주면 F로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이 검사 하나만으로 상대방을 온전히 판단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집안에서는 내향적이지만 바깥에서는 외향적인 모습으로 변하는 나를 보면 알 수 있다.
‘어떡하지’
학창 시절 학교에서 발표할 차례가 내게 돌아오면 순서가 되기도 전부터 식은땀을 흘렸다. 목소리는 기어들어가고 입꼬리가 처졌다. 발표하는 동안에도 마찬가지다. 쉬는 시간에는 책상에 앉아 혼자 책을 읽거나 공상에 잠겼다. 이런 나는 누가 봐도 내향적인 아이였다. 하지만 20살을 넘어서면서 사회생활은 나에게 외향형 가면을 쓰도록 했다. 교사는 사람들 앞에 나서야 하는 직업이다. 그러니 내향적인 성격을 벗어나야 했다. 처음에는 모르는 사람에게 내 이름을 말하는 것도 머뭇거렸지만 나의 노력으로 달라졌다. 일부러 가서 상대방에게 말을 걸고, 모임에서도 가운데 자리를 차지했다. 누가 말을 걸지 않아도 나서서 누구를 만나든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이런 노력 뒤에는 피로감이 찾아온다. 나의 타고난 성향을 깨고 다르게 살아간다는 것, 그건 또 다른 에너지를 요구하는 일이다. 학교에서 퇴근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대에 파묻혀 나만의 시간을 보냈다. 휴대폰을 충전하듯 혼자만의 시간으로 나를 채웠다.
‘사람의 성향이 바뀔까’
MBTI 검사는 개인이 타고난 심리적 선호 경향을 파악하여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도구라고 소개한다.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상황에 따라서 다른 옷을 입을 뿐이다. 내가 그랬다. 요즘 삼삼오오 모이면 화제가 되는 MBTI. 하지만 결과를 알면 뭐가 달라질까?
다른 사람들이 MBTI 검사 결과를 어떻게 활용하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상대방을 예측하고 주어진 상황에서 좀 더 원활하게 관계를 이어가는 보조제로 이 MBTI를 활용한다. 똑같은 상황이라도 상대방의 성향에 따라 다르게 대하고, 대화 주제를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다. 어떤 방식의 소통을 편하게 여길지 미리 예측해 본다. 예를 들어 나처럼 내향적인 상대에게는 너무 지나친 질문을 던지기보다는 편안한 공백을 허용하여 차분하게 대화를 이끌어간다. 또 논리적인 설명을 선호하는 사고형 지인에게는 감정적인 호소보다는 객관적인 자료나 근거를 제시하여 설득하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아이들에게도 "넌 MBTI가 뭐니?"라고 물어본다. 그러면 대부분 자기의 그 결과를 알고 있다. 물론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환경적 상황에 따라 결과가 변하기도 할 것이다. 호기심에 둘째 아이의 MBTI를 검사해 본 적이 있다. 그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둘째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활동량이 많은 아이였다. 그런데 첫 검사에서는 의외로 내향형이라고 나왔다. 하지만 역시 몇 년이 지나 다시 검사해 보니 외향형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마 학업 스트레스가 적었던 어린 시절에는 자신의 에너지를 조용히 내면에서 채우는 것에서 편안함을 느꼈을지 모르고, 성장하면서 다양한 친구 관계나 학교 생활 속에서 외부로 향하는 에너지를 키웠을지도 모르겠다. 환경과 상호 작용하면서 결과가 달라지는 것을 직접 보며 사람은 결코 그 성향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결론적으로 MBTI는 자기 보고식 검사이기 때문에 검사 당시 의식이나 환경적 요인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올 수 있다. 그리고 내가 나의 내향성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했듯이,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성향을 발전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추구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와 사회화의 중요한 축이 아닐까 싶다.
나는 MBTI를 절대적으로 신봉하지는 않지만 개인의 특성과 다양성을 이해하고 타인과의 관계에 활력을 불어넣는 소중한 참고 자료로 활용할 것이다. 이는 단순히 사람을 분류하는 도구가 아니라 나를 알고 타인을 존중하는 아름다운 시작점이 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