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인생 COPY, COFFEE

5부. 오늘도 퇴고 중입니다

by 윰글

카페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켰다. 단맛을 꺼리는 나는 메뉴판의 음료 중에서도 아메리카노만 고르는 편이다. 고민은 소용없다. 신랑이 좋아하는 캐러멜 마키아또나 큰딸이 즐겨 찾는 차 종류도 있지만, 고민하다가도 결국 나는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따뜻한 것과 차가운 것 중에서는 그날의 기분이나 날씨, 함께 있는 사람의 선택에 따라 결정된다.

아메리카노 잔에서 김이 올랐다. 이럴 때 손으로 잔을 잡으면 열기가 손가락으로 옮겨온다. 그 시간 잠시 그 온기에 마음을 녹였다.

'오늘도 애썼으니, 이 시간과 커피에 빠져보자.'

나를 격려했다. 어느 누구도 이 말을 해주지 않지만.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커피, 우리의 삶과 닮았네!'


커피 한 잔이 나의 삶을 축소해 놓은 느낌. 적어도 하루에 두 잔은 마시게 되는 커피, 이 안에서 나의 삶을 들여다본다. 둘은 어디가 닿아 있을까.




우선 커피와 삶의 닮은 점을 찾아봤다.


첫째, 쓴맛이 강하다.

어떤 후배가 "제가 커피를 안 마시는 이유가 있어요."라고 하길래, 되물었다. "아니, 왜?" "써서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웃음이 빵 터졌다. 그러고 보면 맞는 말이기도 했다. 커피는 쓰다. 그런데도 왜 찾게 될까. 맛에 중독되었다고도 할 수 있지만, 쓰니까 더 질리지 않는 건 아닐까.

인생에는 쓴맛과 단맛이 섞여 있다. 단맛을 생각하면서 쓴맛을 이겨내는 것. 어릴 적부터 그랬다. 엄마에게 칭찬을 들을 때는 날아갈 듯해도, 점수가 낮은 성적표를 받을 때는 가슴이 아팠다. 아이를 키우면서 매일을 울어도, 잠시 웃는 아이의 얼굴을 보면 그 쓰라림을 잊는다. 커피가 가진 쓴맛에 단맛을 더하면, 원래의 쓴맛을 잊는 것처럼. 그렇게 커피를 마시고, 삶을 살아가고 있다.


둘째, 다양한 옷을 입는다.

무인 주문기에서 커피 메뉴를 고르면, 그 아래에 하위 메뉴가 줄을 선다.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 아포가토, 라테, 카푸치노'

여기에 어떤 시럽을 추가하느냐에 따라 그 이름이 달라진다. 라테는 바닐라, 헤이즐넛, 캐러멜 등이 있다. 거기에 온도 조절까지. 마시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제조가 되고, 만드는 사람이 다르니 세상에 과연 똑같은 커피가 있기는 할까.

우리의 삶 역시 마찬가지다. 같은 나이라도, 그가 살아가는 모습은 '한정판'이다. 세상에 딱 하나뿐인 모습. 그러니 세상은 사람의 수만큼의 삶이 존재한다. 이렇게 다양한 모습과 온도를 지니는 삶은 커피와 닮아 있다. 각자의 취향과 가치관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 또한 이런 다름으로 인해서 세상은 조화롭다. 이런 원리 덕분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혼을 하는 걸 보면 다행이고 신기하다 싶다.


셋째, 따뜻할 때와 차가울 때의 매력이 다르다.

추운 겨울 거리를 지나다 보면 김이 서린 창문 너머로 카페를 채우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올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그 자리를 지나치지 못하고 문을 열고 카페 안으로 들어선다. 커피 한 잔을 시켜 한 모금 마시면 따뜻함이 목을 타고 내려간다. 이것이 따뜻한 커피의 매력이다. 반대로 무더운 여름날 얼음이 동동 떠 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면 그 시원함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차가운 감촉은 더위를 식혀주고 기분까지 가볍게 만들어주니까.

인생도 그렇다. 살다 보면 가슴이 뜨거워지는 순간도 있고, 머릿속까지 차가워지는 때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따뜻하고, 홀로 이겨내야 하는 시간은 차갑다. 따뜻함과 차가움이 교차하는 인생은 커피를 닮았다.


넷째, 한 잔을 다 마시고 나서야, 그 맛을 정확히 파악한다.

커피를 마시는 그 순간도 좋지만, 다 마신 후의 여운 또한 인상적이다. 입안에 남아 있는 단맛과 뒷맛, 그것은 커피를 마시는 동안에는 잘 느끼지 못한다. 나는 커피 한 잔을 한 번에 다 마시지 않는다. 그래서 한 모금 마시고 놓아두었다가 또 한 모금 마시고를 반복하는데, 이렇게 해서 한 잔을 다 마시면 그 커피의 맛이 느껴진다.

삶도 다르지 않다. 바쁘게 살아가는 동안에는 내 인생의 맛을 모른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지난 시간의 경험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했는지, 얼마나 쓰렸는지를 알게 된다.

'그 일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구나'

이런 순간이 내게 삶의 맛을 정한다.



그렇다면 커피와 인생이 다른 점은 어떤 걸까?


첫째, 커피는 다시 만들 수 있지만 인생은 한 번뿐이다.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했는데 입맛에 맞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 바리스타에게 다시 만들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만약 집에서 내가 직접 내린 커피라면 다시 만들면 된다. 조금 아깝긴 하지만 그리 큰 손실은 아니다. 더 맛있는 커피를 위해 다시 도전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인생은 다르다. 이미 살아버린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설사 후회할 일이 있었더라도, 그 시간은 이미 지나갔다. 그래서 우리는 삶의 순간순간에 신중함을 더해야 한다. 다시 오지 않을 오늘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둘째, 커피는 다른 사람이 만들어줄 수 있지만, 인생은 내가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커피는 내가 만들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주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생은 어떤가? 누군가는 내게 조언을 해준다. 부모님, 친구, 선생님, 지인 등. 하지만 결국 그 조언은 참고 자료일 뿐, 선택은 나의 몫이다. 이건 나이와는 무관하다. 비록 어린 아이라 하더라도 그 결정은 스스로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도 자신의 몫이다. 이것이 삶의 무게와 연결된다. 모든 선택의 주체가 나라는 사실, 그것이 좋기도 하다.


셋째, 커피는 일정한 레시피를 갖지만, 인생은 정답이 없다.

바리스타들은 커피를 내릴 때 매뉴얼을 따른다. 에스프레소 한 샷을 뽑기 위해 필요한 원두의 양, 물의 온도, 추출 시간은 일정한 규칙이 있다. 그러니 그 레시피대로 만들면 원하는 맛의 커피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인생에는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 "이런 방법이 행복하다"라는 매뉴얼이 없다. 이렇게 살면 딱 맞다는 규칙이 있을까. 물론 상식적인 선이라는 것은 존재하지만, 그대로 한다고 해서 반드시 괜찮다는 보장도 없다. 그래서 사람 수만큼의 '인생 사용법'이 존재한다고 본다. 나에게 효과적인 방법도 다른 사람에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그래서 삶은 예측을 벗어나기도 하고, 그것이 좋을 때도 있다.


넷째, 커피는 혼자 마실 수 있지만 인생은 관계 속에서 의미가 깊어진다.

나는 혼자 카페에 갈 때가 있다. 혼자 글을 쓰거나 책을 읽으면서 커피를 마신다. 이렇게 하면 커피의 맛과 향에 집중이 된다.

하지만 인생은 다르다. 혼자서도 살아갈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가족, 친구, 동료, 연인. 이런 관계들이 얽혀서 슬플 때는 위로받고, 기쁠 때는 그 마음을 나눈다. 혼자서는 찾기 어렵던 감정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명확해지는 경험을 한다. 그래서 혼자 익히기 어려운 사랑, 우정, 신뢰, 배려를 얻었다.




책과 음악을 좋아하는 나는 주말 오전에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카페를 찾는다.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단골 카페는 나만의 아지트가 되었다. 음료를 주문하고 주차 등록을 위해 직원에게 내 차 번호를 불러주려 하면, 내 말을 듣지 않고도 알아서 입력할 정도다. 콘센트가 있고, 책 읽기에 알맞은 높이의 테이블이 보이면 그곳에 짐을 놓는다. 그리고 챙겨간 독서대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린다. 그리고 마무리로 커피 한 잔을 주문하는 것으로 편안함을 예약한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10여 분 후에 커피 한 잔을 테이블에 놓고, 첫 모금을 마신다. 쓴 커피 한 잔이 목을 타고 내려가면 정신이 든다. 때로는 도를 넘는 카페인으로 가슴에 두근거림이 올 때도 있다. 이런 작은 불편함이 있더라도, 커피는 나에게는 휴일을 함께하는 연인 같은 존재다. 출근해서도, 점심 식사를 하고서도 찾는다. 기회만 되면 만나려고 하고, 다양한 온도와 맛을 더한다.

"커피를 줄이세요."

속이 쓰려서 병원을 찾은 나에게 의사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다.

"네."

대답은 철석같이 하면서도, 이건 불가능한 일이다. 의사 선생님과 한 약속은 일주일을 넘기지 못한다. 그리고 또 커피를 찾는다. 그러면 안도한다.

'그래, 이 맛이야.'


하루를 시작할 때도, 오후의 나른함을 깰 때도, 밤늦게 글을 쓸 때도 찾는 커피. 짝사랑이라 해도 좋다. 이 사랑을 멈출 수 없으니.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답답할 때, 누군가와 언쟁을 하고 난 후, 더운 날씨에 땀이 날 때도 찾는다. 차가운 공기에 몸이 시리거나, 누군가에게 매운 소리 한마디라도 들은 날에는 뜨거운 커피 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면서 내 안의 얼음을 녹인다.

이렇게 보면 커피와 인생은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걸어가야 하는 반려자 같다. 힘들 때 나에게 위로가 되어주고, 지칠 때는 에너지를 준다. 늘 곁을 지켜주는 존재. 완벽하지 않지만, 그래서 더 사랑스럽다.


인생이 녹록지 않듯, 매일 마시는 커피는 쓴맛을 입고 있다. 여기에 단맛을 더할 수도 있지만, 커피 본연의 그 쓴맛을 즐겨본다. 어떤 때는 원두의 기름기가 거슬리기도 하지만, 커피 위에 떠 있는 크레마가 부드러워서 나를 당긴다. 그래서인지 커피를 멀리할 수가 없다. 쓴맛 가득한 삶이라도 그 단맛을 부정할 수 없듯이. 힘든 순간이 있어도 살아가는 것을 멈출 수 없듯이.

그래서 나는 커피와 함께할 것이다. 쓴맛 속에서 단맛을 찾고, 단맛으로 그 쓴맛을 견딜 것이다. 아니, 이 둘이 섞인 그 삶을 이어갈 것이다.


"인생을 닮은 커피 한 잔, 오늘도 어떠신가요?"

keyword
토요일 연재
이전 19화MBTI라는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