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부. 오늘도 퇴고 중입니다
한밤중, 나는 혼자 거실을 배회했다. 땀에 젖은 잠옷을 입은 채 얼음물을 마시고 선풍기 앞에 앉았다. 겨울인데도 목 주변이 뜨거웠다. 손을 댈 수 없을 만큼. 그런데 이상하게도 온몸에는 한기가 감돌았다. 이것이 갱년기일까.
요즘 나는 창문을 여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문틈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면 몸의 열이 식는 느낌이 든다. 에어컨을 틀어도 그 온도는 유지되고, 밤이 되면 증상은 더 심해진다. 얼음물로 속을 차갑게 해도 20분이면 다시 뜨거운 열기가 올라온다. 이 증상은 언제쯤 사라질까. 아니, 사라지기는 할까. 거기다 가슴은 이유 없이 두근거린다. 연애를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사춘기와 갱년기가 싸우면 갱년기가 이긴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정말 그런 것 같다. 요즘 이 느낌, 쉽지 않다.
갱년기는 낯선 언어로 내 몸에 말을 걸어온다. 그러다 무력감이 밀려올 때가 있다. '여태 나는 무얼 하고 살았지?' 고독이라는 말을 실감하고, 각자의 방에 있는 가족들에게 야속함을 느낀다. 어떤 날은 이유 없이 온몸이 화끈거리고, 또 어떤 날은 무력감에 빠진다.
사춘기가 모든 아이에게 똑같은 현상으로 나타나지 않듯, 갱년기도 제각각이라고들 말한다. 누군가는 가볍게 지나가고, 누군가는 긴 터널을 지나듯 견뎌내야 한다. 다행이라면 이런 걸까. 다른 사람들보다 잠은 잘 자는 편이지만 열감이 심하다. 그래서 한여름도 아닌데 선풍기를 틀어야 하고, 한겨울인데도 창문을 여는 나를 보며 남편은 놀란다.
삶의 중반을 지나며 깨달은 것이 있다. 몸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 그래서 요즘은 매일 한 시간씩 걷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생각 없이 걷다 보면 마음도 가벼워진다. 또 글을 쓰는 것도 위안이다. 내 모습을 문장으로 풀어내면 혼란스러웠던 감정들이 정리되는 기분이다.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늘었다. '100세 시대'라는 말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렇다면 나는 이렇게 길어진, 그리고 남아 있는 인생의 후반기를 어떻게 보내야 할까? 60세 전후로 직장에서 퇴직을 하고 나면, 남은 나의 여생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지? 요즘 지인들과 만나면 자연스레 이 주제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즐거움을 느끼면서도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지금부터 고민하고 풀어야 할 것 같다.
삶을 사계절에 빗댄다면, 나는 이제 가을의 문턱에 서 있다. 봄과 여름을 잘 보내왔으니 가을의 서늘한 바람에도 감기 걸리지 않도록 지나가고 싶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면, 새로이 옷깃을 여미고 남은 계절을 맞이해야 한다.
주말 아침 열 시, 나는 아이들 방문을 열고 이름을 불렀다. 제법 진동이 느껴질 만한 강도로 노크를 해도 방 안 아이들은 미동이 없다. 휴일 아침, 아이들이 잠들어 있기 충분한 시간이다. 여러 번의 시도에도 실패하고 나는 아이들을 깨우는 걸 미루기로 했다. 그리고 방문을 닫는다.
거실 소파에 몸을 맡기고, 이런저런 일들로 분주했던 나를 잠시 쉬게 한다. 리모컨을 들어 TV를 켰지만 마음에 드는 채널이 없다. 그러다 결국 TV를 끄고 부엌으로 향했다.
코를 자극하는 냄새. 어젯밤 미처 치우지 못한 그릇들이 설거지통에 가득하다. 평소 같으면 보기만 해도 화가 났겠지만, 오늘은 휴일이다. 그만큼 마음이 너그러워졌다. 설거지를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어떤가. 오늘 하루만큼은 시간에 쫓기지 않기로 했다.
전동 그라인더에 원두 두 스푼을 넣고 버튼을 누르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향긋한 커피 향이 퍼졌다. 갈아놓은 원두보다는, 마시는 그 순간 직접 갈아 마시는 커피가 향과 맛이 더 좋다. 좋아하는 커피 향에 몸과 마음을 멈춘다. 이런 사소한 순간들이 삶의 행복이 아닐까.
평일 아침이라면 7시 무렵부터 아침 전쟁이 시작된다. 아이를 깨우고 나 역시 출근 준비를 해야 하니 얼마나 분주한가. 10분 간격으로 아이를 깨우고, 화장을 하고,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 접시에 담는다. 그렇게 차린 밥상을 "먹을 게 없네" 한마디로 밀쳐두고 집을 나선 아이를 보면, '내가 왜 이렇게 아침부터 애를 썼지?'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런데도 다음 날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
엄마는 그렇다. 매번 사소한 것에서 상처를 받으면서도 또 같은 일을 다음 날 반복하는 것. 그리고 그 일을 멈추지 못하는.
이런 평일과는 달리 오늘은 이 모든 과정이 생략되었다. 가족들 모두 잠들어 있는 이 고요함이 나에게는 위안이다. 혼자 드리퍼에 커피를 내리며 미소를 지었다. 일부러 아이들을 늦게 깨워 내 시간을 길게 늘려본다. 나만의 휴일 아침 식사를 준비하며 창밖을 내다보면, 베란다 창문 너머 색이 짙어진 가을 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군데군데 떠 있는 흰 구름.
'가을'이라는 단어만으로도 마음이 설렌다. 일 년의 중턱을 넘어 이제 수고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계절. 그리고 나는 내 삶의 가을을 맞이하고 있다.
얼마 전, 친정 엄마가 우리 집에 오시며 찍으셨다는 사진을 핸드폰에서 발견했다. 습하고 더웠던 여름도 지나간다. 이렇게 계절이 바뀌는 자연의 신비로움 속에서 나 역시 지금의 어려움을 견뎌낸다.
"언젠가는 가을 바람과 하늘이 날 감싸줄 거야."
그런 믿음으로 무더위를 이겨내고, 갱년기의 열감과 마음의 무력감도 떠나보낸다.
새로운 다짐이 필요할 때, 유튜브 강연을 들을 때가 있다. 요즘은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찾아본다. 미처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시각의 전환을 얻게 되는 시간. 마음을 정리하고 생각을 가다듬는다.
가을이 되면 지나간 일 년의 시간을 되돌아보며 욕심이 고개를 들기도 하고, 반대로 무력감에 잠기기도 한다. 하지만 그 마음을 다잡고 내가 가야 할 방향을 바라본다. 삶의 속도를 조절하고, 나 자신에게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경쟁이라는 착각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내가 이겨야 할 대상은 언제나 나 자신이었다.
이 사실을 매 순간 기억하자.
오늘도 베란다 창가에서 들어오는 바람으로 몸과 마음을 식힌다. 그리고 다시, 나를 단단히 다잡는다.
늘 그래왔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