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마음이 머무는 자리
'커피 한 잔'
휴일에 혼자 카페를 찾을 때가 있다. 집에 있으면 눈에 들어오는 집안일, 아이의 표정, 남편의 작은 투털거림까지. 끊임없이 챙기거나 해야 할 일이 줄을 선 공간. 그로 인해 행복하지만, 가끔은 이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 가방 하나를 둘러메고 집을 나선다. 현관문을 닫는 순간, 나는 집과 단절되는 느낌을 받는다.
'일탈'
이는 정상적이거나 규범적인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다. 보통 사회의 규칙, 기준, 기대에서 벗어난 행동이나 상태를 말하며, 긍정적·부정적인 상황 모두에 쓸 수 있다. 예를 들면 차분하던 사람이 갑자기 여행 가방을 싸서 혼자 여행을 떠나는 것이나,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던 사람이 하루 동안 그림만 그리며 보내는 것도 일탈의 예다. 부정적인 예로는 학생이 수업 시간에 무단으로 교실을 떠나는 것이나 법을 어기는 범죄 행위도 있다. 가정을 버리고 외도하는 경우도 일탈의 좋지 않은 예다.
나는 ‘일탈’을 ‘일상적인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정의해 본다. 그렇다면 익숙한 공간이나 상황에서 떨어져 나오는 것도 포함된다. 휴일에 집을 잠시 벗어나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 그로 인해 잠시 나에게 집중하는 모습도 일종의 ‘일탈’이 아닐까.
김영하 작가는 『여행의 이유』에서 사람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를 “나를 새롭게 발견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는 여행을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 낯선 곳에서 새로운 시선과 경험을 얻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다시 바라보게 되는 행위라고 설명한다. 그의 책을 읽으며 여행이 누구에게나 필요한 활동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 여행 역시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한 시도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시간을 통해 다양한 기억이 묻은 공간을 벗어나고, 그로 인한 마음의 치유도 가능하다.
그래서일까. 나는 현관문을 열고 집을 나서는 것만으로도 후련할 때가 있다.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이 나만의 유난함이라고 여겼지만, 김영하 작가의 책을 읽고서 그 ‘당위성’을 찾게 되었다.
오롯이 혼자가 되기 위한 이런 공간적 분리에 또 하나를 더하자면, 그것은 ‘음악’이다. 근무 중 집중이 잘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땐 잠시 차분한 음악을 튼다. 그러면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생각들이 서서히 옅어진다. 어릴 적에는 몰랐다. 일명 ‘멍 때리기’가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이렇게 잠깐 무아지경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잃었던 집중력이 살아난다.
어떤 날은 사람들의 숨소리, 말투, 표정까지 신경이 쓰인다. 그래서 내 책상 앞 큰 모니터 뒤로 얼굴을 숨기기도 한다. 이런 모습은 직장보다 집에서 더 자주 나타난다. 시도 때도 없이 나를 부르는 가족들 덕분에 나의 감정이나 할 일에 집중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엄마는 지금부터 원고를 써야 하니까 잠시만 기다려줄래요?”
그나마 말이라도 건네면 조금은 낫다. 이런 습관은 니르 이얄의 『초집중』을 읽고 생겼다. 그는 사람의 행동을 ‘본짓’과 ‘딴짓’으로 나누었다. 중요한 일은 ‘본짓’, 그 외의 행동은 ‘딴짓’이다. 우리는 본짓에 집중해야 하지만 수많은 이유로 딴짓에 빠져 원래 목적에서 멀어진다. 그래서 그는 본짓을 방해하는 딴짓은 과감히 삭제하라고 말한다.
나 역시 ‘본짓’에 집중하기 위해 음악을 사용한다. 글을 쓸 때는 가사가 없는 경음악을, 밤 산책을 할 때는 리듬이 빠른 음악을 틀어 운동에 대한 몰입도를 높인다.
그렇게 해도 주변 사람들의 말과 행동은 끊임없이 나의 눈과 귀를 건드린다. 그럴 때면 잠시 고개를 들거나 가볍게 흔들며 머릿속에 맺힌 장면들을 지워본다. 결국 온전히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싶어서다. 그리고 이 방법은 효과적이었다.
지금과 어릴 적 나의 모습은 많이 다르다. 학창 시절엔 혼자 있는 걸 좋아해 대부분의 시간을 사색하며 보냈다.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는 나만의 공간에서 글을 쓰고 책을 읽었다. 사 남매로 자라서인지 바깥에서 친구들과 어울릴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집안에서의 소통만으로도 충분했으니.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직업적인 이유도 있지만, 그만큼 사람들에게 나를 드러내야 할 이유가 많아졌다. 이제는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말을 걸고 웃는다. 어릴 적 나를 떠올리면 지금의 내가 꽤 낯설지만, 지금의 내 모습이 편하고 좋다.
요즘 유행하는 MBTI 검사를 하면 영락없이 ‘외향성’으로 나온다. 말수가 적은 편이지만 여전히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긴다. 내 안에 내향성이 숨어 있는 건지, 아니면 상황에 맞게 반응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사람의 성향을 한마디로 규정짓는 건 어렵다. 어쩌면 동식물이 필요할 때마다 보호색을 띠듯, 나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모습을 변화시키는 건 아닐까.
'혼자가 편하다'
시끄러운 모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수다를 떨다가도 어느 순간 조용히 물러난다. 오늘도 조용히 있고 싶어 혼자 운전을 해서 카페로 나왔다. 며칠 뒤 먼 길을 떠날 일이 있어 자동차 점검을 받았다.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고장 접수를 하는 직원을 보며, 혼자 시간을 보내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넌 행복한 사람이다. 알고 있지?”
혼자의 시간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결국 강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오늘은 외향성을 잠시 내려두고 내향적인 나를 꺼낸다. 책 한 권과 차 한 잔을 들고 카페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면벽 수도하듯 마음을 가라앉히고, 에어컨 바람이 부족해 선풍기까지 틀었다. 다행히 카페는 텅 비어 있어 나의 이런 유난한 모습에 불편을 호소할 사람도 없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책을 펼쳐 나만의 세계에 빠지는 이 시간은 주말마다 누리는 나만의 의식 같다. 테이블 위 투명한 화병에 꽃이 꽂혀 있었다. 자연스러운 색감에 끌려 다가가 보니 뜻밖에도 조화였다. 생명이 없는데도 각박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뜨거워졌다.
오늘은 새로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앞으로 며칠 동안 내 마음에 머물 글귀들. 글이 사람에게 주는 위안은 참 크다. 읽는 순간에도, 쓰는 순간에도 그러하다. 카페에 들어오는 사람들 중에는 종이책을 보는 내가 신기한 듯 바라보는 이가 있다. 그럴 때면 그분과 눈을 마주치며 웃고, 다시 책에 집중한다.
책을 읽으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일상을 살아내느라 달궈진 마음의 덩어리를 녹이면 다시 내가 떠오른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혼란스러운 감정이 문장 속으로 스며들고, 그로 인해 마음의 쇠붙이는 녹는다. 그래서 나는 바란다.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도 공감과 위로가 되었으면 하고.
두 시간 정도 후에 카페를 나왔다. 혼자여도 충분한 시간. 그래서 나는 가끔 혼자가 된다. 철저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