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낭떠러지

1부. 마음이 머무는 자리

by 윰글

중학교 시절, 매년 체력장을 치렀다. 이름만 들어도 긴장이 몰려오던 그 시간은 다양한 종목으로 체력을 측정해 일정 기준에 도달하면 등급을 받는, 일종의 체력 성과 평가였다. 오래 달리기, 윗몸일으키기, 멀리뛰기 같은 익숙한 종목들 사이에서 내가 유독 두려워하던 것이 있었다. 바로 철봉에 오래 매달리기였다.

체육 시간마다 철봉 하나에 둘씩 배정되어 선생님의 “시작!”이라는 호령이 떨어지면, 아이들은 팔을 걷어붙이고 철봉에 매달렸다. 어떤 친구는 여유롭게 버텼고, 또 어떤 친구는 얼굴을 붉히며 끙끙대며 매달리려 애썼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이를 악물고 팔에 힘을 주어도 1초를 넘기지 못한 채 철봉에서 곧장 떨어졌다. 창피한 건 둘째 치고, 손바닥은 금세 불이 났다. 무엇보다 친구들의 시선이 내 얼굴에 닿을 때마다 더욱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두 숟갈도 안 되는 팔힘이 원망스러웠다.


“나는 왜 이렇게 힘이 없는 걸까.”

그 짧은 순간이 마치 하루 24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실망과 수치심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때는 몰랐다. 철봉에서 오래 버티게 하는 힘이 단순히 팔의 근육만이 아니라는 것을. 그 힘은 근력과 체력뿐 아니라 마음속에 쌓이는 ‘버티는 힘’이었다. 그것은 간절함과 지독함이 뒤섞인 힘이었고, 결국은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지였다. 하지만 나는 그 절실함을 가지지 못했다. 아니, 사실 나는 이미 속으로 ‘곧 떨어질 거야’라고 단정하고 있었다. 어쩌면 애초부터 떨어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지금 돌아보면 스스로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얘들아, 철봉 아래가 낭떠러지라고 생각해 봐라. 그러면 힘이 날 거야. 자, 시작!”

체육 선생님은 나 같은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버틸 수 있도록 이런 비유를 들려주곤 했다. 철봉 아래가 낭떠러지라고 상상하면 누구라도 절대 떨어지지 않으려 사력을 다할 것이다. 처음엔 그 말이 우스워서 웃음이 터졌다. 하지만 다시 철봉을 잡으며 마음 한구석에 그 말을 새겨 넣었다. 철봉 아래 끝없는 낭떠러지를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놀랍게도 기록은 3초로 늘어났다. 말도 안 된다 여겼지만, 그 짧은 순간 기록이 바뀌는 걸 보면서 나는 알게 되었다.

“인생도 마찬가지구나. 버티는 데에도 독한 마음이 필요하구나.”


물론 그 이후에도 ‘오래 매달리기’는 여전히 나에게 어려운 수학 문제 같았다. 그 시간은 늘 부담스럽고 피하고 싶었지만, 동시에 나를 시험하는 하나의 기준점처럼 다가왔다. 매달릴 수 있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날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신호를 보냈다.

“조금 더 할 수 있어. 노력하면 돼.”

그것은 단순히 몸의 변화가 아니라 내면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시간이 지나 고등학교에 들어서자 또 다른 철봉이 내 앞에 놓였다. 이번에는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와 발표’였다.

“유미야, 발표해 볼래?”
심장이 두근거리며 친구들 앞에 일어나 몇 마디 말을 꺼냈을 뿐인데, 예상치 못한 큰 박수가 쏟아졌다. 내향적이었던 내가 친구들의 격려 속에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프로젝트를 마치려면 내가 맡은 역할을 해내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또 다른 나를 발견했다. 갑자기 말이 많아질 수는 없었으니 우선 꼭 필요한 말부터 천천히 내뱉었다. 그런데 우연히 던진 한마디 농담에 친구들이 웃어주자, 그 모습이 내게 또다시 용기를 주었다. 얼굴은 화끈거리고 심장은 터질 듯 뛰었지만, 어느 순간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이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렇게 내 안에서 조용하지만 확실한 변화가 싹트고 있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나를 변화시켰을까? 나는 그 힘을 네 가지로 정리한다.

‘점진성, 내적 강화, 긍정적인 피드백,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애정.’

사람은 단숨에 변하지 않는다. 말을 잘 못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유창하게 말하거나 두려움 없이 발표하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계속 그렇게만 살 수도 없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조금씩 해보자.”

작은 시도들이 쌓이며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었다. 이것이 점진성이었다.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이 마음속에 싹틀 때 사람은 그 과정을 견뎌낼 수 있다. 여기에 옆에서 누군가의 격려와 박수가 더해지면 그것은 내적 강화로 이어지고, 스스로 더 나아지고 싶다는 동기를 준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여기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상대방에 대한 애정’이다. 친구가 힘들어할 때 건네는 위로, 과제를 끝내기 위해 내 역할을 책임감 있게 해내는 마음. 이는 단순히 타인을 위한 배려이자 애정 같지만, 사실은 나의 성장을 이끄는 밑거름이 된다. 타인을 이해하고 연결하려는 마음은 나를 더 유연하고 단단하게 만든다.


우리는 종종 스스로를 틀 안에 가둔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며 변화를 두려워하거나 거부한다. 그러나 자신을 고정시키는 태도는 결국 내면의 벽을 높이는 일이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성장하는 존재다. 제자리에 머무른다면 결국 뒤처질 수밖에 없다. 가족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친구의 불편함을 덜기 위해 내 태도를 조절하는 것. 모두가 같을 수 없기에,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조금씩 나의 폭을 넓혀갈 때 비로소 진짜 소통이 가능해진다.


내향성과 외향성은 고정된 성격이 아니라 하나의 스펙트럼이다. 극단적인 내향인도, 완벽한 외향인도 없다. 우리는 주변의 요구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마치 카멜레온이 환경에 맞춰 색을 바꾸듯, 우리 역시 삶 속에서 필요한 태도를 선택하며 살아간다. 그 선택이야말로 우리를 유연하게 변화시킨다.


결국 변화의 원동력은 남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어제보다 나은 나를 꿈꾸며, 오늘도 철봉에 매달리듯 조금 더 오래 버틴다. 그리고 나는 안다. 그 결과는 언제나 생각보다 훨씬 긍정적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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