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마음이 머무는 자리
아침 6시.
더 자고 싶은데 눈이 저절로 떠졌다. 평일이라면 분주할 시간이지만, 오늘은 토요일이라 여유를 부릴 수 있다.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날. 하지만 이런 날은 평소보다 더 일찍 눈이 떠지는데, 과연 그 이유는 뭘까. 왠지 손해를 보는 것 같은 묘한 기분. 비몽사몽의 새벽, 이런 생각이 맴돈다.
‘지금 일어날까? 아니면 조금 더 잘까?’
하지만 나는 이내 고민을 멈춘다.
‘휴일인데 늦잠을 자야지.’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바로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이런 포근함이 나를 달랜다. 아침 시간의 소음이라도 들리는 날에는 노이즈캔슬링 기능이 있는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그리고 잔잔한 음악을 튼다. 잠을 깨도록 두기 아까워서 이를 막기 위한 나만의 주말 아침 루틴이다. 이렇게 장착을 하면 이후 2~3시간쯤은 푹 잘 수 있다. 휴일에는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겠지.
그렇게 다시 깊은 잠에 빠진 나를 깨우는 소리가 들린다.
부스럭부스럭, 웅웅―
눈을 뜨지 않아도 나는 안다. 이것이 무슨 소리인지. 남편이 집안을 오가는 소리다. 싱크대 앞에서 설거지를 하거나 청소기를 돌린다. 출근일 같으면 귀에 거슬릴 텐데, 휴일이니 자장가처럼 들린다. 겨울밤 추위를 몰아내는 따뜻한 손길처럼. 남편의 이 소리는 클래식 음악 같다.
‘쉬는 날인데도 또 고생하네. 우리 남편.’
이런 생각이 들면 침대에 누워서 뒤척이는 것이 미안해진다. 그래서 얼른 이불을 걷고 일어난다. 그러고는 거실로 나가서 질문을 던진다. 마치 방금 전에 그 소리를 들었던 것처럼.
“자기야, 뭐해?”
“집 안 청소 좀 했어. 아침도 먹었으니까 신경 안 써도 돼.”
남편은 신혼 때 휴일 아침에는 꼭 내 손을 거친 아침밥을 요구했다. 누구 말처럼 ‘결혼이 처음이니’ 할 수 있는 남편의 실언이랄까. 요즘 MZ 세대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아침밥은 먹는다고?’
‘밥은 왜 본인이 안 차려 먹어?’
‘여자가 왜 밥을 해야 돼?’
하지만 나는 옛날 사람인가 보다. 남편이 나를 생각해서 하는 말에 마음이 몽글해진다. 고맙고, 미안하고, 또 고맙다.
오늘이 만일 평일이었다면 이 시간에 아이의 잠을 깨우고, 아침밥을 차릴 것이다. 한 번에 일어나지 않는 아이를 다시 깨우기를 서너 번 반복할 것이다. 혹시 아이의 신경을 거스를까 봐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를 장착한다. 하지만 오늘은 ‘휴일의 특권’이 있으니 이런 절차가 필요 없다. 역시 상황에 따라 우리의 모습은 다른 옷을 입는다. 그저 편안하고, 상대가 사랑스럽다. 내가 그런 것처럼.
주말 아침의 공기는 느긋하다. 시간도 천천히 흘러가는 느낌이다. 말은 날카로움을 잃고, 여유를 입었다. 아이들의 방문 앞에 서보니 그들은 아직 수면 중인 듯하다. 엄마는 신기하다. 문이 있어도 그 안의 아이들의 모습이 그려지니.
‘어제 늦잠을 잤구나.’
‘아직 더 자고 싶어 하는구나.’
말도 안 되는 동물적 감각으로 아이를 깨우는 일을 내려놓는다. 휴일에 늦잠을 자게 하는 것, 그것은 나와 아이에 대한 배려다. 서로 윈윈하는 일이랄까.
뒷베란다에 가보니 빨래 바구니는 비어 있고, 세탁기가 돌아간다. 온 집안의 바닥은 뽀송뽀송하다. 나는 집안의 단정함을 사랑한다. 깔끔한 편이지만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다 보니 내 마음처럼 집안이 깔끔하지 않았다. 이런 사실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거의 매일 새벽까지 청소를 하기도 했다. 물론 이건 신혼 때 이후 포기한 부분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성장하고, 남편이 집안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달라졌다. 조금씩 깨끗함을 되찾는 집안. 또 이렇게 나를 위하는 남편의 모습을 느끼는 순간, 그저 그런 그에게 고맙다. 남편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도 어느새 따뜻한 커피 향처럼 내 가슴에 퍼진다.
이런 휴일 아침을 맞이하는 것은 10여 년째다. 지금은 평온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가 많았다. 아이들은 아침 6시면 눈을 떴다. 어김없이, 매일. 말이 트이기 전에는 울음으로, 말이 트인 후에는 칭얼거림으로 아침을 열었다. 그 작은 생명체들은 쉴 틈 없이 나를 부른다. 밥이 되지 않아도 배고프다고 하고, 내 눈이 떠지지 않아도 놀아달라고 울었다. 답답함이 내게 몰려오고, 초조함이 커질수록 마음이 아렸다. 울음으로 하루를 여는 아이를 보며, 나도 같이 울었다. 그것도 소리 없이.
하지만 시간은 모든 답을 안다. 아이들이 자라며, 나도 함께 성장했다. 지금은 나 대신에 언니가 동생의 밥을 챙기고, 동생은 이런 언니의 수고로움을 덜려는 듯 먹었던 그릇을 씻는다. 아무렇지 않게 서로를 위하는 자매의 모습에 대견함을 느낀다. 그런 평범한 일상이 소중하고 감사하다.
시간이 흘러도 자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남편이 내게 말한다.
“우리 카페라도 갈까요?”
“좋죠.”
휴일 아침에는 남편과 카페를 갈 때가 있다. 이건 한 선배의 말 덕분이다. 10년 전, 직장 선배가 내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우린 주말마다 남편이랑 카페에 가. 아이들은 집에 두고.”
당시에는 그런 말을 하는 선배가 부러웠다.
‘나도 아이가 좀 크면 꼭 그렇게 해야지.’
현재 우리는 10년째 주말 카페 데이트를 이어간다. 나는 카페에 가면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다. 남편은 동영상 강의를 듣거나 음악을 듣는다. 또 책을 읽기도 한다. 이렇게 우리 부부는 그 시간 동안 각자의 방식으로 여유를 즐긴다. 아무 말 없이 앉아 있기만 해도 좋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누린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처음 이 시간을 만들자고 제안했을 때, 남편은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런 작은 실천이 우리에게 얼마나 여유와 온기를 가져다주는지 알게 되었다. 집을 벗어나 외출을 하면, 서로가 낯설게 보일 때도 있다. 그 낯섦이 신선하다. 서로가 다시 궁금해지고, 호감을 얻는다. 마치 연애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하지만 우리 둘에게 주어진 이 시간도 그리 길지 않다.
“어디세요?”
“엄마 아빠는 카페야. 뭐 먹을래? 사 가지고 갈까?”
“네, 배고파요.”
“그래, 곧 갈게.”
이렇게 둘만의 시간은 자연스럽게 가족 외출로 이어진다.
모든 가족이 저마다의 주말 루틴을 갖는다. 누군가는 주말 농장에서 채소를 가꾸고, 누군가는 부모님을 뵈러 먼 길을 나선다. 어떤 가족은 주말마다 만나서 얼굴을 보고 시간을 보낸다. 방식은 다르지만, 주말이라는 이름 아래 모인다는 공통점이 있다. 함께 밥을 먹으며 소식을 나누고, 숨을 고른다.
오늘 우리 가족도 주말의 선물을 받았다. 주말 아침이라는 여유. 깨끗하게 정돈된 집, 따뜻한 커피, 말없이 오가는 배려, 그리고 늦잠을 자는 아이들. 모든 것이 나에게 편안함을 준다. 거실 창 너머로 햇살이 집안으로 들어오고, 식탁 위에는 따끈한 브런치가 놓여 있다. 내 앞에 앉은 남편과 대화를 나누고, 손에 쥔 책의 페이지를 넘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은 날. 그 자체로 충분한 주말 아침. 오늘 하루도 이렇게 시작되었다. 설렘이 녹아든 평범한 일상, 나는 그것을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