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마음이 머무는 자리
생각지도 못한 계기로 첫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망설이며 보냈던 투고 메일. 사실 큰 기대는 없었다.
‘이런 글을 누가 읽어줄까’, ‘내가 무슨 작가라고’ 하는 마음이 더 컸으니까. 그런데 뜻밖에도 긍정적인 답장이 도착했다. 출판사 대표님은 다듬어야 할 부분이 많은 내 글에서 진정성을 느꼈다고 말씀해주셨다. 그 말은 어두운 밤에 건네받은 한 줄기 빛처럼 다가왔다.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오후 7시쯤, 아이들과 거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메일 알림음이 울렸다. 순간 나는 소리를 질렀고, 놀란 아이들이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얼떨결에 튀어나온 말.
“엄마 책 나온대!”
설렘과 믿기지 않음, 그리고 두려움까지 뒤섞였던 그때의 감정은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안에 살아 있다. 몇 백 곳의 출판사에 투고하고도 선택받지 못하는 작가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내게 주어진 이 기회가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 반가운 메일을 받은 지 7개월, 마침내 내 생애 첫 책이 세상에 나왔다. 계약에서 종이책 출간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겪어보니 결코 가볍지 않았다. 나는 원고라는 반죽을 수없이 주무르며 마음을 문장 속에 갈아 넣었다. 그렇게 완성된 한 권의 책은 단순한 인쇄물이 아니라 내 손으로 길어 올린 삶의 덩어리였다.
처음 책을 쓰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단 하나의 다짐이 있었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면 좋겠다.’
그 바람은 글을 쓰는 내내 내 곁을 지켰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고를 때마다 ‘이 말이 독자에게 어떻게 다가갈까’ 하고 생각했다. 퇴고의 시간은 고되고 더뎠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내 글과 동시에 나 자신을 들여다보았다. 결국 나는 내 책의 첫 번째 독자가 되어 있었다.
출간 후 2주쯤 지나자, 낯선 이름의 독자들이 SNS에 내 책에 대한 서평을 올리기 시작했다. 서평단도 아닌데 자발적으로 글과 사진을 남겨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신기하고 감사한 일이었다. 아는 이들이 보내온 축하 메시지와 댓글도 반가웠지만, 나와 아무 인연도 없는 사람들이 내 글에 공감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
‘그래, 출간하길 잘했어.’
그때 마음 깊이 그렇게 되뇌었다.
나는 책을 고를 때, 작가가 독자를 얼마나 생각하며 글을 썼는지를 본다. 문장의 말투와 호흡, 그 뒤에 깃든 온도까지 읽어낸다. 그래서 나 역시 글자 하나, 문장 하나에도 마음을 담으려 애썼다. 최종 원고를 제출하고 나서도 불안했다. 혹여 내가 쓴 문장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진 않을까. 나의 시선으로 다수의 삶을 단정 짓는 건 아닐까. 글을 쓴다는 건 결국 나를 들여다보고, 동시에 나를 조심하는 일이기도 했다.
마감일이 다가올 때마다 출판사에 시간을 조금만 더 달라고 부탁했다. 내 눈에는 여전히 다듬어야 할 문장이 많아 보였기 때문이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그토록 크게 와 닿은 적은 없었다. 표현 하나를 바꾸기 위해 수십 번을 고치고, 가장 정직하고 정확한 단어를 찾기 위해 애썼다. 그것이 작가의 숙제라는 걸 알게 되었다.
밤은 유난히 감정이 짙어지는 시간이다. 자정을 훌쩍 넘겨도 눈은 말똥말똥했고, 잠시 눈을 붙였다가도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고쳤다. ‘이러다 필력이 좋아지겠는데.’라는 생각에 피식 웃었던 순간도 있다. 누군가 내 모습을 봤다면 이상하게 여겼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시간이 글을 더 빛나게 한다고 믿는다. 고민하고 수정한 만큼 문장은 단단해져 독자의 마음에 가닿을 것이다. 그 생각에 마음이 뭉클해졌다.
‘작가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일까.’
‘아니면 글을 쓰고 고치는 시간이 나를 작가로 만들어주는 걸까.’
책이 출간된 지금도 답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퇴고의 시간을 통해 나는 나 자신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나를 이해해야 내 글이 독자에게 닿을 수 있다고 믿는다.
글을 쓰며 떠올린 수많은 얼굴들. 지친 하루 끝에 울음을 삼키는 이들, 아이가 무사히 학교에 다니길 바라는 부모, 가족의 안녕을 기도하는 사람들. 글은 그들의 삶을 일으켜 세우는 거중기 같은 힘이 된다. 나 역시 글을 고치며 예전의 나를 불러왔다. 아이가 내 말을 듣지 않아 괴로웠던 날, 경제적 어려움에 무력감을 느꼈던 날, 세상은 평온한데 오직 나만 벼랑 끝에 선 듯했던 날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알게 되었다. 누구나 비슷한 무게의 삶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다만, 그 고통을 언제, 어떻게 꺼내 바라보느냐는 사람마다 다를 뿐이라는 것을.
예전의 나는 늘 누군가를 탓했다. 상대에게서 내 고통의 원인을 찾았다. 그래서 무심한 말 한마디에도 깊이 상처받고, 그 말에 반격할 생각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변화가 필요하다면 나를 바꾸는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그러자 마음의 파도는 잔잔해졌다.
내가 쓴 글이 누군가의 밤을 덜 외롭게 만들어주길 바란다. 눈물 흘리는 누군가가 내 문장에서 위로를 얻기를.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다른 사람도 비슷하게 살아가는구나.’
이런 안도감이 전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작은 공감이 삶을 붙잡아주는 동아줄이 될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사소한 풍경, 끝없는 고민, 반복되는 하루들. 그 안에도 사랑과 회복이 깃들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그렇게 쓴 글이 누군가에게 해독제가 되고, 더 넓은 시선을 가지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사람은 저마다의 무게를 안고 살아간다. 그러나 타인의 글과 마주할 때, 우리는 그를 통해 자신을 본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마음, 꺼내지 않아도 느껴지는 진심. 나는 그 힘을 믿는다.
그래서 오늘도 생각한다.
글을 통해 누군가와 만나는 일.
그것은, 참 귀하고도 깊은 인연이다.